얼마 전에 아이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다가 옛 목사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잠시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이들 셋이 10살, 4살, 1살로서 한창 어리던 시절에 뉴욕의 퀸즈 빌리지에 있던 200여년이 족히 넘었던 목사관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었습니다. 그 목사관은 과거 퀸지지역의 대 농장주의 집으로 아이들이 앞뒤로 마음껏 뛰고 놀기에 충분하여 아이들에게 가장 많은 추억거리를 안겨주었던 곳이였습니다.
대학생인 세나는 옛 목사관에서의 고양이와의 추억을 제일로 꼽았습니다. 학교만 갔다오면 고양이와 함께 온 집안을 위 아래로 뛰어다니던 일들과, 그 철부지 고양이가 일을 치를라치면, 꼭 큰 아이의 침대 위의 밍크 이불 위에 올라와서 살며시 실례를 하고 말없이 나가던 친절함(?)에 날이면 날마다 그 독한 냄새로 온집안이 소동을 겪던 일을 잊을 수 없다며 탁자를 두드리며 배가 아프도록 웃었습니다. 그 철부지 고양이가 그래도 체면이 있어 식구 중에 제일 무서워했던 외 할머니 곁을 지나가려면 늘 꼬리를 밑으로 내리고 허리를 길게 뺀 채, 겸손하고 점잖게 걸었습니다. 외 할머니는 짐승을 집안에 키우는 것을 극구 반대하시며, 고양이를 당장 밖으로 내쫓지 않는 것에 대해 늘 불만이셔서, 까딱 잘못했다가는 사정없이 얻어 맞기가 일수였기 때문입니다.
중학생인 세림이는 두 마리의 잉꼬새의 추억이였습니다. 온몸이 초록색으로 멋진 꼬리를 갖은 잉꼬새는 종일토록 노래하거나 둘이 장난질을 무척이나 하였습니다. 모이를 먹으려면 온통 흩트러뜨리며 쪼아대어 새장을 어지럽히고 리빙 룸까지 더럽히니 세림이는 새장과 리빙 룸을 청결하게 청소 하는 것을 늘 자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3년을 애지중지하던 잉꼬새들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죽는 바람에, 빈 치즈 상자에 두마리를 한꺼번에 장사지내야 만 되었습니다. 아이는 정성스럽게 땅을 파고 비석을 만들어 새를 목사관 옆의 잔디 밭에 장사를 지내주었습니다.
그런데, 비만 오면 창밖을 내려다 보면서 치즈상자가 젖는다며 동생과 함께 발을 동동굴렀던 것입니다. 그리곤, 우리가 참으로 인정사정도 없는 매정한 가족이라면서 그래도 한번쯤은 새들의 묘지에 꽃이라도 갖다 놓는 것이 정상이 아니냐고 따지었습니다.
국민학생인 세준이는 어느 눈오던 밤에 온 가족이 대형의 눈사람 셋을 만들었던 기억을 꼽았습니다. 눈 사람을 얼마나 크게 만들었던지, 눈 사람의 머리를 얹을 때는 아빠가 사다리를 가져다가 머리를 올려주어야 만 했습니다.
그런데, 날이면 날마다 햇볕아래 녹아져 내려 며칠 후에는, 눈사람의 머리가 땅으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아이가 아연실색하며 놀랐던 일을 기억했습니다. 아이는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더 이상 그런 눈사람을 만들지 않지요?” 아이의 물음에 궁색한 대답으로 얼버무렸습니다. “그것은 아빠가 바쁘시기 때문이야! 이젠 너희들이 다 컸으니 너희들끼리 만들어봐! 엄마 아빠는 이젠 좀 어울리지 않지않니? 그렇지?” 아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추억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여러가지가 있었으나 그 중에 가장 기억나는 것들 중에 아이들의 이갈이였습니다. 큰 아이는 한창 어금니를 갈고 있었고, 작은 애는 앞니를 시작으로 하여 온 이를 온통 그곳 목사관에서 갈게 되었었습니다. 세림이는 이가 하나 빠지기라도 하면, 큰 수지를 맞은 것 처럼 벼갯머리 밑에 정성스럽게 싸넣어두고 요정에게 보내는 멧세지 속에 “요정 아가씨, 내 이빨을 잘 보관해주세요”는 부탁의 말을 꼭 써놓았습니다. 밤새 애가 잠들면 꺼내리라는 이빨을 그만 깜박 잊어버려 아침까지 그냥 두었다가, 새벽에 깜짝 놀라 아이의 벼갯 밑을 뒤지다가 손목을 잡혀 들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큰 아이의 이가 빠졌을 때는 너무나 신기하고 귀하여 보석함에 잘 보관해 두는 정성을 보였으나, 둘째 아이 때 부터는 처리 곤란이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이의 이가 빠질 때마다 이를 지붕 위에다 던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무심결에 “그 목사관 주변에는 세림이의 이가 온통 떨어져 있을거야!”라고 말하자 세림이는 피가 거꾸로 서기라도 한듯이 벌떡 일어나 외쳤습니다. “뭐라고요? 내 젖니들을 모두 지붕 위에 던졌다고요?” 아이는 이럴 수가 있느냐라는 표정으로 어이없어 했습니다. “… 엄마! 쯧쯧쯧!” 큰 애가 딱하다는 듯이 눈을 찡그렸습니다. 저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변명을 늘어 놓았습니다. “얘! 엄마가 어렸을 때는 까치가 헌 이빨을 물고가서 새 이빨을 갖고 오기 때문에 지붕 위에 던졌던거야! 네 엄마가 한국 사람인데 한국식으로 해야지, 알지도 모르는 그 서양 요정에게 네 이빨을 줘서야 되겠니? 않그래? 맞지? 너 같으면 어떻게 할래?” 아이는 한숨을 푹 쉬며 엄마의 행위가 자못 충격이었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래 흔들며 얼굴을 붉혔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또 다시 식탁에 둘러 앉아 옛집의 이야기를 나누며 울고 웃을 것입니다. 품을 떠난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이라는 세계를 향해 화살같이 날아가고 있음에 그 걸음을 감히 쫓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이들의 뒤를 헐레벌떡 쫓아가며 외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3:5-6) 옛집- 늘 정감이 솟는 곳입니다.
— 윤 완 희, <1996년 5월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