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4세로 평생을 처녀로 살아온 Gloria Perkins는 바이올린 연주자이며, 저희 가정의 오랜 친구 중에 한분입니다. 세상풍조에 전혀 때묻지 않은, 순전한 그녀의 영혼은 바이올린의 잘 다듬어진 선율만큼이나 아름다운 분입니다. 선생님은 평소에 젊은이들이 락뮤직에 빠져 그 아름다운 바하, 베토벤, 모짜르트등의 고전음악을 접해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몹시 안타깝게 여기고 있습니다. 또한 요즈음 부모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자녀에 대해 불성실함을 크게 분노 하시기도 하며,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선배가 되기도 합니다.
아이의 렛슨때문에 일주일에 한번씩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는데, 작년 어느 겨울저녁에 선생님은 몹시 상기된 얼굴로 기다렸다는 듯이 숨이 차게 말을 쏟아 놓았습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만하탄에 있는 영화제작 사무실에 가서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고 신청해 놓았어요! 그뿐만 아니라 캘리포니아에 있는 헐리우드에도 전화문의를 했었답니다!” “영화배우라고요?” 당황한 나는, 젊은나이도 아닌 할머니가 뒤늦게 영화배우 지망생이 되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아직도 연세에 비해 젊어보이긴 해도, 눈가의 늘어진 살과 굽어진 등의 군살이 붙어있는 할머니가 어떤 용기로 그러한 결단을 내렸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듣고보니, 며칠전 퍼킨스 선생님의 골목길에서 영화촬영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게 모여진 촬영장을 가만히 보니, 젊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서 “우루루” 몰려갔다가 몰려오는 엑스트라들을 본 순간, 자신의 삶에 대해 회의가 물밀듯이 온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결국 삶의 주인공 아닌 엑스트라의 역할 속에, 이제는 다달이 숨통을 막히게 하는 온갖 청구서들을 처리하기에 안간함을 쓰며 살고있음이 참으로 처량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닥아오는 미래에 절망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퍼킨스 선생님은 4살때,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바이올린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하루 6시간 이상의 강훈련 속에, 바이올린의 영재로 뉴욕 타임지에도 여러번 소개되기도 했었습니다. 또한, 어린나이에 유럽과 전세계를 다니면서 훌륭한 오케스트라와도, 수도 셀수 없는 공연 속에 많은 갈채를 받은 경력이 있습니다. 그녀의 가장 큰 추억 중에 하나는, 소녀 시절에 루즈벨트 대통령 앞에 가서 연주를 한후, 영부인으로 부터 어여쁜 인형을 선물 받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젊은시절에 쥴리아드 뮤직 스쿨에서 교수 초빙을 받기도 했으나, 자신의 자유로운 연주생활을 위하여 그녀는 거절했던 것입니다. 세월은 흘러, 세계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영재들에게 서서히 세계무대를 빼앗기기 시작하여 교회의 예배와 결혼식, 장례식 안으로 그녀의 무대는 좁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그녀가 뉴욕타임지에서 격찬한 ‘세기에 보기 드문 가장 완벽한 천재 연주가’라는 것과, 루즈벨트 대통령 앞에서 연주한 사실을 기억치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사립 중학교에 파트타임 음악교사로 일을 보면서, 후진들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가, 학교마져도 나이로 인해 은퇴해야 만 되었던 것입니다.
“영화사의 비서에게 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쓰레기 통을 비우는 일, 레스토랑의 손님으로 앉아 있는 일, 무대 위에서의 춤, 원한다면 바이올린 연주도 할 수 있다고 했지요! 난 평생을 연주했으니, 영화라고 해서 조금도 어려울 것이 없을 거예요!” 그녀는 벌써 영화의 주인공이 되기라도 한듯이 꿈꾸는 표정으로 얼굴을 붉혔습니다. 저는 왠지 슬픔이 나의 깊은 가슴에 한꺼풀 내려앉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젊은시절에 음악이 좋아,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 속에 독신으로 평생을 보낸 익숙한 외로움과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낡은 집과, 그녀의 삶을 담보로 한 200년이 족히 넘은 바이올린 만이 그녀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퍼킨스 선생님! 후회하지마세요! 선생님의 삶은 값싼 품꾼의 삶과 결국 견줄 수 없는 귀하고 아름다운 삶이셨어요! 선생님의 연주생활은 이제 시작이어요! 지금까진 사람의 박수를 기다렸지만, 이제 부터는 하나님 만을 위해 그 기쁨의 연주를 할 시간이 왔어요!” 선생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사람이 의미있는 한 길을 걷기란 얼마나 처절한 싸움을 해내야 되는지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두손을 잡은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선생님의 삶을 다듬으시고 인도하신 당신의 손으로 직접 선생님의 삶을 연주해주세요. 내일을 위해 근심하고 걱정하다가 우리 본연의 삶의 모습을 잃지 않토록 도와주세요! 두렵고 고통스런 삶의 현장에서 “부라보!”를 외치시는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아멘.” 하나님의 위로 밖에는 드릴 수 가 없었습니다.
어둠의 기슭에 웅크리고 있던 한 마리의 학이 날개를 털며 푸른 창공을 향해 일어서듯이, 선생님은 바이올린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음률의 바다로 서서히 항해를 시작하였습니다. 드디어 200년을 잠들어 있던 바이올린은 거대하고 깊은 숨결을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세련되고 단아한, 생명이 폭죽처럼 터질 것 같은 아름다움 숨결 속에 긴 세월을 명기를 다듬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 윤 완 희, <1996년 2월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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