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마다 눈이 산처럼 쌓여졌고 바람은 몹시 불던 추운 밤이었습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남편이 들어오질 않아, 은근히 걱정을 하면서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차들의 불빛을 좇고있었습니다. 이토록 늦을 일은 없을 텐데 하고 안절부절을 하고 있는 찰나에 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남편이 하이웨이서 차의 엔진이 꺼져 서는 바람에, 토잉카를 타고 곧 집에 도착할거라는 연락이었습니다. 사람이 무사하다니 일단 안심이 되면서, ‘그러면 차는 어떻게 될까?’ 하고 불안감이 덮쳐왔습니다.
올해 나이가 10살인 고물 차는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는 가족과 마찬가지의 정이 든 차였습니다. 벌써 근 4년전에 10만 마일이 지났으나, 그 후로 마일 게지가 고장이 나서 몇 마일을 뛰고 있는지 조차도 알 수 없는 탓으로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차였습니다. 비록 ‘텅텅’거리는 숨이 차 오르는 소음과 문을 열 때마다 삐꺽거림으로 동네를 요란케했어도, 달리는 일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습니다.
10년전, 집의 드라이브웨이에 번쩍이는 회색의 승용차가 들어섰을 때 그 정경은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나이가 어렸던 세 아이들은 강아지 마냥 좋아하며 뛰어 들어가 저마다의 자리를 차지했으며, 남편은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어깨를 으쓱였습니다. 우리는 봄빛이 한창 무르익은 허드슨 강가를 행복하고 멋지게 달리며 새차를 환영했었습니다. 이웃에 살고 있던 미국인들도 “그 차는 좋은 차입니다!”하면서 함께 기뻐해 주었습니다.
비싸고 화려한 고급 차는 아니었으나, 우리 가족에게는 가장 값나가는 재산이었기에 참으로 소중했습니다. 아이들을 아침마다 학교에 데려다 주는 일과, 장보기, 심방하기, 픽업하기 등의 쉴 사이 없이 종일 달려주는 차는, 달리는 일 외에도 가장 허물없는 저의 친구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차안에서 큰 소리로 소프라노 가수를 흉내내며 노래 부르는 나 혼자의 독무대가 되어주고, 마음이 울적한 날에는 하이웨이를 목적 없이 달려주었으며, 아이들을 집밖에서 기다리면서 빨리 나오라고 조급하게 ‘빵빵’거릴 때는 인내치 못하는 저의 심정을 늘 침묵으로 나무랐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 가족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캐나다 여행의 추억도 그 차와 함께 하였었습니다. 우리는 그 연약한 사 기통의 승용차에 식구 다섯과 온갖 짐을 트렁크, 의자 밑까지 채우고도 모자라, 지붕 위에 가방 4개를 싣고 다니었어도 단 한번도 길에서 서 준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캐나다 여행 후에 차의 바퀴를 보고 놀랜 사실은, 그 먼길에 사람과 짐에 눌리어 바퀴 안쪽의 받침 쇠까지 다 달아 터질 지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는 견뎌주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 우리 가족은 차에 대해 더욱 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당시 국민학교 4학년이던 큰 딸아이가 대학생이 되어 그 차를 운전하고 다니니, 수명이 꽤 긴 편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가끔 늙은 차를 향하여 “제발 큰아이 대학 졸업 할 때까지라도 잘 달려다오!”하면서 무리한 요구를 은근히 하기도 했으나, 그 속마음 안에는 차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숨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한두 번의 접촉 사고로 인해 앞범퍼 부분을 갈아주기도 했으나, 엔진만큼은 별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 몇 년 사이에는 차가 늙으니 여기저기서 고장이 자주 났으나, 정비 소에서 자주 부속들을 말끔히 갈아주고 정성스럽게 손질을 해주어서 차의 노년은 그래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밤에 산처럼 쌓인 눈길을 헤치고 토잉카에 매달려온, 숨이 꺼진 차를 보는 일은 실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정비하시는 분의 손이 닿기만 하면 또 생명을 얻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되었으나 검사 결과, 엔진의 쿨런트가 세어 열을 받은 엔진이 못쓰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엔진이 못 쓰다니요! 그 차가 죽으면 안되는데요! 그 차는 우리 가족이에요!” 저는 고물 차를 살려달라고 애걸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으로 하나님께 10여년을 큰 사고 없이 타고 다녔음을 감사하며, 충성을 다하여 평생을 우리 가족을 위해 일했고 죽어 가는 순간까지 주인의 안전에 최선을 다하며 숨을 거둔 차가 고맙기 그지없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마음이 서운 할 수 있습니까? 고물 차가 사라진 빈 드라이브웨이를 바라보면서 캐나다 여행 때 너무나 무거운 짐을 싣고 다니면서 혹사시켰던 일이 가장 가슴 아팠습니다. 또한 괜스레 화만 나면 차 문을 힘껏 ‘꽝’하고 닫던 날들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이렇게 우리 가족들을 위해 평생을 받친 그의 삶을, 당연한 보상으로 여겼던 일이 자꾸 가슴에 맺히었습니다.
아니, 고물 차를 떠나 보내고 이토록 마음이 서운하고 아픈데, 사랑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生의 하이웨이서 불현듯 떠나 갈 것이 아닌가! 아! 다시는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겠노라고 약속해야지! 남은 우리들의 시간을 가장 아름답고 보람되게 살자고 말해야지! 서로 곁에 있어 마음과 마음을 의지하는 것 이상 무엇을 기대하고 괴로워한단 말인가? 떠나면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것을!
찬 겨울의 눈발을 헤치고 금방이라도 들려 올 것 만 같은 고물 차의 ‘텅텅’거리는 소음은 어느새 세월의 뒷장으로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 윤 완 희, 6/4/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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