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아침에 화장실에 늘 놓여있던 뒷거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우리집에서 뒷거울을 사용하는 사람은 저 밖에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가족 누구도 사용할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한참 찾다가 포기하곤 아마도 제가 쓰고는 아무데나 두었기 때문에 찾지 못하는 것이구나! 생각하며 뒷거울을 한동안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랫층의 화장실에 갔다가 그토록 찾던 뒷거울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누가 내 거울을 쓰니?” 저는 호기심이 나서 큰 아이에게 물었더니, 올해 13세를 막 넘긴 둘째 딸 세림이가 언제부터인지 뒷거울을 사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아직도 어린아이로 생각했던 아이가 어느새 자신의 뒷모습에 관심을 갖고 모양을 낼만큼 성장했음이 대견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뒤 아침마다 뒷모습을 비쳐보느라고 눈을 옆으로 위 아래로 내려뜨고 치켜뜨며 거울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르는 아이를 종종보게 되었습니다.
막내 세준이도 아침에 잠자리에거 일어나면 머리에 새집이 있건말건 모자 눌러쓰고 학교에 갔었는데,
언제부터였는지 그 바쁜 화장실의 누나들 틈에 끼어 머리에 헤어스프레이를 잔뜩 뿌리고는 학교에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일년에 한번씩 있는 사진 찍는 날에 큰 누나가 머리 모양을 근사하게 해서 학교에 보냈더니만, 아이들이 “You look nice!” 하고 던진 그 한마디에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거울 앞에서 비쳐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 아이들이 동시에 외출이라도 하기위해 나설 때에는 거울 앞에서 서로가 더 오래 비쳐보느라고 불평들을 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서로가 “이 옷이 잘 어울리는가? 내 머리가 이상치 않는가?”하면서 자문을 구하면서도 못내 자신의 모습에 대해 못 마땅한 표정으로 집을 나서는 것을 보게됩니다.
저도 하루에 몇번은 거울 앞에 서보지만, 이제는 옷 모양이나 화장, 머리모양을 보기보다는 얼굴에 뭐가 묻지 않았는가? 옷섭이 터진 곳은 없는가? 단추가 바로 채워졌는가?등을 쓱 훌터보게 됩니다.
거울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임에 틀림없습니다. 혼자 볼 수 없는 것들을 거울을 통해 발견케 되고,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인 눈으로 비쳐 볼 수 있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외향적인 면을 볼 수 있는 거울이 있는가 하면, 우리의 내면을 가장 꿰뚫어 비쳐주는 거울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생명의 말씀, 성경이라고 부릅니다. 말씀의 거울 앞에 서면 우리는 내 영혼에 묻어있는 온갖 지저분 하고 추한 것, 좀 유치해 보이며 흉물스러운 것, 참지 못하는 것, 위선적인 것들을 금방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의 거울은 우리에게 세속적이고 외향적인 겉치례가 얼마나 가치없는 것인가를 볼 수 있는 내면의 눈을 밝혀주며, 영원을 향해 귀를 열어 줍니다.
말씀의 거울 앞에 늘 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들은 세상으로 나설때 담대합니다. 내가 입은 것, 말하는 것, 나의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가 사랑하는 것들이고 그가 이르시는 겸손과 희생으로 치장된 거룩한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도 말씀의 거울 앞에 서기를 게을리 할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한동안 거울보기를 게을리한 흐려진 영혼 안에는 서두름과 헛된 투기와 번민, 좌절, 우쭐댐과 무절제의 영낙없는 패잔병이 되어있는 모습을 대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비참한 나의 모습 안에 “그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연약한 존재이니라”고 말한 토마스 아 켐피스의 말을 기억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놀라운 일은 말씀 앞에 서기만 하면, 이 모든 불필요하고 지저분한 것들이 또 다시 흰눈처럼 깨끗해지고 투명해지는 경험을 갖게 됩니다.
조금 전까지도 청바지에 베이지색 스웨터를 입고 거울 앞에 섰던 애가, 어느새 검은 스커트에 붉은 티셔스를 입고 나와 어딘가 시원찮아 보이는 듯이 요리보고 저리보며 모양을 다듬는 것을 봅니다.
아이는 또 묻습니다. “이 모양이 어때요? 이상하지 않아요?” “좋아! 좋아! 괜찮아!” 건성으로 대답하는 엄마가 못 믿어운지 또 제 동생에게 재차 확인합니다.
“세준아! 이 옷 어떻니? 괜찮니?” 아이는 짖굿은 표정으로 말합니다. “응! 멋져! 그렇지만 할머니 같아 보여!” “뭐야?”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괴성으로 한차례 목사관을 소란스럽게 뒤덮을 때, 저 자신도 이제는 거울보기에 좀더 열심을 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윤 완 희, 6/16/19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