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을 찾습니다

저희 집에는 하루에도 수통의 전화가 울립니다. 언제 어느 때 누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올지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는 가능하면 전화의 메시지를 받아놔야 만 합니다. 오랜만에 소식 전하는 교우들, 누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 어느 집에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 누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결혼을 상담, 이혼상담을 해야겠다는 전화도 있습니다. 동네의 각 기관에서 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전화, 아파트를 찾는다는 전화, 신앙상담… 등 어느 것 하나 중요치 않고 소흘히 다룰 수 없는 전화들이 목사 관을 종일 울려댑니다.

어느 날, 그 많은 전화 중에 잊을 수 없는 전화가 하나가 있었습니다. 젊은 남자 분의 음성이 였는데, 전임자이신 피쉬어 목사님을 찾는 전화였습니다. 저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피쉬어 목사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음을 알려야 만 되었습니다.

“… 실례지만, 목사님은 3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는데요!… 어떻게 되시나요?” 가능하면 상대방이 놀라지 안키 위해 천천히 말을 꺼냈습니다. “ 제 이름은 케빈인데…뭐라고요? 돌아 가셨다고요? 왜요?” 그는 당황한 채 절망적으로 외치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은퇴하시자 마자 곧 중풍이 왔어요. 그래서 그것으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지요!”

피시어 목사님은, 일생을 독신으로 보내신 분이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평소에 지병으로 늘 고생을 하셨으며, 여름 휴가 때는 전 유럽을 무전여행하고 다니셨으며, 또한 , 목사 관에는 유럽에서 만났던 지우들의 휴식처로 쓰여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방이 무수히도 많은 목사 관에는 불량청년들을 선도하는 목적으로 몇몇 청년들이 기거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인 케빈이라는 청년의 짐이 지하실에 있어서 언젠가는 짐을 찾으러 올 것이라고 하셨던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청년은 무언가 할말이 있듯이 자꾸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더듬거리며, “…저 혹시, 제게 줄 유산을 남기지 않으셨나요?” 저는 한동안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 유산? 누구 에게요?” 저는 잠시 생각에 젖었습니다. 어쩌면 피시어 목사님이 생전에 그에게 유산을 주시기로 언약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뇌리에서 스쳐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피쉬어 목사님께서 은퇴하시어 플로리다로 떠나가실 때의 초라한 봇짐이 생각났습니다. 다 낡은 책들과 설교집, 몇 개의 취사도구, 그리고 황소 만한 누런 개 한 마리가 그의 고물자동차 뒤칸에 앉아 더위로 헐떡이던 모습을 결국 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전화기에서는 한동안 침묵의 기대감과 긴장이 팽팽하게 전율처럼 흘렀습니다. “… 케빈씨! 유산이라고 했지요? 유산! …있죠! 틀림없이 남겼어요!” 그의 귀가 화들짝 하게 열림을 직감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있죠? 그분은 저를 생전에 무척 사랑했거든요! … 무엇이죠?” 그는 금 방 감격 어린 음성으로 목이 메어옴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유산이란 때로는 기대치 못했던 곳으로부터 받게 될 때가 있기도 합니다. 어느 부자 노인이 양로원에서 여생을 지내고 있다가, 친절한 청소부에게 자신의 유산을 남겨준다든가, 어느 가난한 여인이 어느 돈 많은 사업가를 만나 일확천금의 유산을 물려 받는 예를 가끔은 우리는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실제로 전에 섬기고 있던 미국교회 교인중의 한 여인에게 기대치 않았던 유산으로 인하여 큰 택시 회사의 여사장이 된 실화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삼십대 후반의 여인으로써, 일찍이 십대의 가출 소녀였었습니다. 첫 결혼생활에서 아들을 하나 낳았지만, 실패하였고 두 번째 남편과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는 터였습니다. 어느 날, 먼 친척을 통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거의 이십여년 만에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발길은 지나온 험난한 세월이 꿈만 같았습니다. 십대에 떠나온 집은 조금도 변함없었으나, 수북하게 자라난 풀 더미와 낡은 페인트 자국만이 세월을 말하였고, 변한 것이 있다면, 집앞의 떡갈나무가 이십 년의 풍상 속에서 거목으로 자라나 두팔을 벌리고 그녀를 맞이해 주는 것 이였습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만 같은, 강아지들의 낑낑거리는 소리와, 오래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초록빛 원피스의 옷자락이 눈앞에 선히 보였습니다. 어디선가 아버지의 성큼 거리는 발자국이 금방이라도 들려 올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마치도 조금 전에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었습니다. 그러나, 문을 여는 순간 모든 것이 굳게 잠겨있는 사실 앞에, 세월의 장벽을 갑자기 느끼며 서럽게

통곡을 하였습니다. 이십여년 동안의 참았던 아픔과 고통의 눈물 이였습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나니, 변호사로부터 편지 한 장이 날아왔습니다.. 그것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딸에게 남긴 유언장 이였습니다. “ 사랑하는 너를 위하여, 이 아버지는 평생을 아끼고 절약하며 땀흘려 일하였었다. 사랑하는 딸아! 너를 위하여 이 아버지의 땀과 수고로 맺혀진 현금이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 벽난로 곁에 있는 네가 어릴 적 쓰던, 흔들의자 밑을 뜯어 보아라. 그리고, 이층에 있는 네방의 카펫트 밑을 들쳐보아라! 그것이면, 네가 지금 어떤 상황에 살아가든지 너는 일어 설 수 있으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 나의 사랑하는 딸! 그 동안 너는 나를 잊었을지 몰라도 난 하루도 너를 잊지 않고 그리워했단다. … 여기 나의 사랑을 모두 너에게 주고 가노라. 사랑하는 아버지로부터”

그녀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어릴 적 그녀가 쓰던 흔들의자 밑을 뜯어 보았습니다. 거기엔 은행에서 금방 찾아온 듯한 거액의 지폐가 깨끗이 보관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층의 과거 그녀가 자라났던 빈방의 카페트를 들쳐보니, 역시 거액의 지폐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였습니다. 수십만 불의 현찰이 언제부터였는지 어둠 속에서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차가운 묘지 앞에서 그녀는 또 다시 통곡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그토록 날 사랑하셨다면, 왜 일찍 나를 찾지 않으셨어요? 왜 진작 사랑한다고 말씀하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먼발치에서 저의 아픔과 고통을 보시면서 왜 곁으로 부르지 않으셨어요? 제가 원하는 것은 현금이 아니었어요. 아버지의 그 푸근한 사랑의 축복을 듣기를 저는 원했던 것이어요! 아버지와 내가 잃어버린 이십여 년의 세월을 우리는 어디 가서 보상을 받지요!”

그 후, 그녀는 영업용 택시를 몇 대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더니,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사업기반을 구축하여 지금은, 뉴욕, 롱 아일랜드 14군대 기차역을 관할하는 택시회사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가끔 말합니다. 그녀의 삶가운데서 영원히 잃어버린 아버지와 그녀의 삶을 영원히 보상 받을 수 없는 일 이였다고.

“케빈! 잘 들어요! 목사님은 케빈을 위하여 분명히 엄청난 유산을 남겼어요!” 저는 숨을 죽여가며 일확첨금을 상상하고 있을 케빈의 모습을 떠올리며, 당당하고 근엄한 목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야!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케빈의 삶을 변화시키기를 원하고, 케빈의 삶에 놀라운 일을 행하시기를 원하고 계셔요. 케빈! 에수님을 영접해야해요! 그것은 물질의 천만금보다도 큰 영생의 선물이에요!” “….” 적이 실망한 그의 한숨이 땅이 꺼지듯이 수화기를 통해 들려 왔습니다. “… 알고 있어요!” “알기만 하면 뭣해! 유산을 받은 사람은 상속인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다해야지요!” 멀리서 들려오는 전화기의 소음이 그의 힘없이 돌아서는 발걸음 마냥 무겁게 들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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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가끔 경제적으로 힘이 들고 어려울 땐, 일확천금의 유산을 얻는 행운을 한두 번쯤 그리어 본적도 있습니다. 나의 삶가운데서 경제적인 면 만 해결된다면 모든 것이다 잘되고, 잘 할 것만 같은 착각을 갖게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기루임을 저는 압니다.

얼마전에 T.V에 어느 젊은이의 하루를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는 롯토에 당선이 되어 하루아침에 거부가 된 피자집 종업원이었습니다. 그는 꿈에 만 그리던, 외국 여행과 각국의 유명한 음식점을 돌아다니며 식도락을 즐기다가 끝내 지루함 속에 더 이상의 삶의 기쁨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피자집으로 돌아와, 노동의 신성함과 수고의 열매 속에서 보람과 기쁨을 다시 찾았노라 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유산은 진정 무엇일까요? 유산엔 정신적인 것, 물질적인 것, 문화적인 것, 신앙적인 것들을 들 수 있지요. 저는 그 동안 살아오면서 그 중에 가장 귀한 유산은 신앙 유산임을 발견하였습니다. 시대와 환경, 그 가치관에 정신적, 문화적, 물질적인 것들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유산은 시대와 가치가 변하여도 우리의 영혼과 삶을 부패케 하지 않고, 마치도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와 같이 우리의 삶을 싱싱하고 푸르고 아름답게 가꿔 줌을 보게됩니다.

그날, 케빈과 나누었던 대화는 저에게 진정 어떠한 유산을 찾아야 하며, 또한 자녀들에게 물려줄 유산을 어떻게 준비해야 된다는 것을 생각게 하였습니다.

“부모의 성결한 삶은 자녀에게 가장 풍요로운 유산이 된다”고 스펄전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어떠한 유산을 찾기를 원하시고, 또한 물려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육신과 영혼이 지쳐있으십니까? 영혼에 기쁨이 없으시고, 어둠만이 삶의 언저리를 차지하고 있으십니까?

창을 여셔요! 그 험난한 삶의 숲속은 빛으로 충만 할 것이며, 당신 속에 숨어있는 언약의 씨앗은 싹을 터뜨릴 것입니다.

– 윤완희, 3/2/2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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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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