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부활하시던 새벽에 제일 먼저 부활의 현장에 증인이 되었던 사람들은 이름없던 여인들이었었다는 것은 늘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당시에 천박하고 가난하고 보잘것 없었던 여인들의, 예수님을 향한 순전한 사랑은 인류최대의 극적인 구원역사의 순간에 증인으로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요근래 한국의 믿음의 조상들, 특히 개화기의 여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어떻게 삶이 변화되고, 한국 땅에 어떻게 복음의 빛을 비추게 되었는지를 읽게되면서 많은 믿음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 낸시라는 분은 1875년도 평양에서 태어나 인천별감으로 있는 하상기라는 정부관리의 후처로 들어가 전처 소생의 1남 3녀를 돌보며 살게되었습니다. 당시 인천 항구를 통해 서구문명을 접하게 되면서, 서울에 이화학당이 생겼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학문의 세계가 무엇인지도 전혀 상상도 못하는 상태로 학교를 찾아가 입학을 원하였습니다. 학교에선 기혼자란 이유로 거절을 당하자 굴하지 않고 프라이 교장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한밤중에 들고 갔던 등불을 입으로 끄면서 “우리가 깜깜하기를 이 등불이 꺼진 것과 같으니 우리에게 빛을 줄 수 없겠느냐?”라고 간청 함으로 입학을 허락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이화학당의 입학을 깃점으로 하여 일본유학, 미국의 오하이오주에 있는 웨슬리안 대학에 입학하여 1906년에 한국 최초의 문학사를 받는 여성이 되었습니다.
신학문을 배우고 한국에 돌아온 하 낸시는 이화학당의 최초의 한국인 교수가 되었으며, 스크렌톤 여사를 도와 한국여성들의 의식 계몽과 육아, 가정의학들을 강연하였으며 최초의 한국 감리교 평신도 대표로 세계감리교 총회에도 참석케 되었습니다. 그녀는 미주지역을 돌면서 강연을 통해 1918년에 정동교회에 한국 최초의 오르간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1919년 일본인 스파이에 의해 독살되었습니다. 비록 짧은 여생이었으나 정부관리의 후처로 이름도 없이 이 땅에서 살다가 하직했을 터였으나, 복음의 빛이 비쳐진 이 여인은 캄캄한 암흑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으로 담대하게 일어서, 한국의 여성지도자로 서게 되었습니다.
1924년도 만주에 보내진 최초의 여선교사인 양로다(Rhoda Yang) 선교사는, 1877년 8월 16일에 서울서 출생했습니다. 그녀는 유복한 양반집안에서 살았으나 결혼을 통해 인생의 불행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19세에 출가하였으나 실패하여 집을 나온 후, 배재학당을 다니던 남동생의 권유로 상동교회에 출석케 되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스크렌톤 여사가 운영하던 부인 성서학원에 들어가 복음을 접하고 많은 교회들을 개척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미감리교 여선교회 총회서 만주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정을 하게되어, 여선교사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3년동안을 만주에 복음의 불모지에 여선교회를 조직해 주고 복음을 전하다가 한국에 돌아와, 한국여성들의 교육에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신광 여자 중고등학교를 설립하여 키우다가 1943년 3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집을 가면 그집 귀신이 되라는 사회의 통념을 깨고, 자신의 결혼실패로 인한 절망과 고통 속에서 복음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자신을 학대하며 사회와 가족들의 소외됨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 여인을 일으켜 세워 만주에 까지 가서 그 빛을 전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녀를 만나 상처를 치유하여주었고 전도의 많은 열매를 맺게하였으며 지금도 맺어지고 있습니다.
박치은- 그녀는 1921년 12월 평양복심원 법원에서 일본인으로 부터 받은 잔혹한 고문을 알리기 위해 법정에서 옷을 벗어 만천하에 일본의 잔혹성과 죄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싸웠던 분입니다. 박치은은 1887년 평남에서 양반집 딸로 태어나 17세에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대대로 모셔오던 신주와 귀신당적을 땅속에 묻어 버려 신앙의 순결을 지키는 가운데 민족정신이 투철한 곽치문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다, 3.1운동을 함께 주도하고 여성독립단체인 ‘여성독립 부인 청년단’을 조직하여 일하다가 남편과 함께 체포되어 갖가지 잔혹한 고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감옥 안에서 딸을 출산했으나 방치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수년후, 형기를 마치고 나왔으나, 남편도 감옥안에서의 모진 고통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막노동을 하다 식당을 차려 부랑자와 거지들을 도와주었으며 구제에 힘쓰었고 6.25피난 중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복음을 통해 힘센자가 연약한 자를 압박 유린하는 죄로부터의 자유함을 위해 목숨을 건 여생을 살았습니다.
이외에도 너무나 많은 여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그들의 삶이 변화되어 나라와 사회의 암흑세계를 향해 빛을 전달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하여 택하신 여인들을 볼 때마다 큰 위로를 받습니다. 그 여인들은 세상의 가장 낮고 천한 자리에서 사람들로 부터도 외면과 질타를 당하거나, 무엇하나 자랑 할 것이 없는 분들 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힘없고 낮은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통해 일으켜 세우시어 그분의 사역을 감당케 하신다는 눈물겨운 은총입니다. 이 눈부신 부활의 아침! 부활절을 보내면서 여인들에게 먼저 예수님의 부활의 기쁨을 전달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의미가 더욱 새롭습니다.
- – 윤 완 희, <1996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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