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복을 위하여

새해가 오면 가장 많이 쓰는 말 중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덕담을 한다. 그 인사는 동양사람 만이 아닌, 만국인들이 다 즐겨쓰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미래를 향한 두려움이 있기에 복을 서로 빌어줌으로 인해, 위로와 평안을 얻기를 원한다.

우리 가족도 년초면 아이들을 대동하고, 친정 어머니와 시 부모님께 큰 절을 드리며, 새해에 하나님 안에서의 평안과 복을 간구하였다. 그런데, 올해는 시어머니께서는 다른 해와는 달리, 자손들의 세배를 정중하게 거절하시었다. 이유는 연로하신 시 아버님이 지난 해에, 중풍과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병원과 양로원을 오가며 계시기 때문이었다. 시 어머님께서는 아버님이 병환 중에 계신데, 당신 혼자서 자손들이 드리는 인사를 받을 수 없다며 팔순의 주름진 얼굴에, 눈물을 글썽이셨다. 아버님이 곁에 계시지 않은 만복은 어머님에게는 어쩌면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시 아버님이 늘상 세배 후에는 당신보다도 덩치가 큰 11명의 손자, 손녀들을 힘겹게 포옹하시며 자랑스럽게 너털웃음을 지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여 온 가족이 숙연해지는 순간을 맞이해야 만 되었었다.

수년 전에 어느 성도님의 가정을 새해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리빙룸에 한자로 쓴 복(福)자가 큼지막하게 붓글씨로 써 있은 채, 벽에 거꾸로 붙어있었다. 아무리 이민생활 오래했을지라도 한자의 복자가 어디가 위고 아래인지 분명히 분별 할 수 있는 분 같았기에 “아니, 왜 복자를 거꾸로 붙이셨습니까?” 하고 의아해 하였다. 부인되는 집사님이 남편에게 눈을 흘기며 말하였다. “저이가 그렇게 붙였어요. 복이 쏟아져 들어오라고 했다나요!” 나는 실소를 금치 못하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 복을 원하는데, 복의 근본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모르는구나!’

복은 무엇이며 근원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이 진정한 복이련가? 일반인들이 말하는 복에 대한 이해는 조금씩은 다를 것 같다. 그 중에 사람에 따라 건강이 복이 되기도 하고, 또는 물질이 복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혹자는 자녀들이 많아, 이곳 저곳의 사회 지도자로 살아가고 있음을 복받은 사람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동안 목회현장에서 일반인들이 흔히 말하는 복받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보기도 하고, 한 교회에서 섬겨보기도 하였으나, 그들이 정녕 성경에서 말하는 복 받은 사람들이었다고 볼 수 없음을 또한 발견케 되었다. 대부분 속빈 강정처럼

어느 분은 건강을 너무 믿고 그 복을 너무 과대하게 의지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였다. 또한, 어느 분은 그 많은 물질을 자신의 것으로 만 여겨, 호화롭고 사치하게 살며, 사람을 물질의 가치로 가늠하다가 단 한번도 진정한 마음의 교제를 나누지 못하고 살아감을 보았다. 세상이 부러워하는 자녀들이 부모의 노후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외면한 체 살아감을 보아 오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의 진정한 복이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맛보고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죄인인 내가, 우리가, 공동체가 어떻게 거룩해지는 경험을 갖겠는가? 그것은 주일날 성전에 모여,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그 분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성도들 간에 하나님이 명하신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성도간에 사랑의 교제를 차마 누릴 수 없는 순간이 있을지라도, 인내하며 포용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자꾸 흉내 내며, 그 본성 안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에 이르는 길임을 확신한다.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발견된 이웃의 약함과 부족함, 삶의 결함들이란 바로 내것임을 인정하며, 함께 다독이고 감싸줌에서 만이, 하나님의 복 주심과 거룩하심에 온전히 동참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복주시며 거룩하게 하시는 날에 다람쥐 도토리 까먹듯이, 주일을 잘 빼먹는 성도들이 눈앞에 서려 가슴이 저려온다. 주일-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창조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정하신 날, 성전에 모여그 분을 찬송하며 경배하는 성도들이 어찌 그리 아름답고 귀한지! 복받은 성도들이여! 오늘따라 겨울비의 노래가 태초에 떨어지던 첫 번째의 빗방울처럼, 매마른 내 심령 깊은 곳에 주룩주룩 떨어져 내린다.

짖굿은 겨울비가 무던히도 오던날, 창세기를 읽어가면서 여느 때보다도 깊은 말씀의 열림을 경험하게 되었다.

창세기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란 말씀은, 언제 어느 때 읽어도 장엄하고도 경이로운 전율이 영혼을 덮어온다. 그리고 창조의 하나 하나의 과정을 짚어가며 묵상 할 때, 진흙덩이인 나 자신을 돌아보며, 당장 땅에라도 엎드려 하나님 앞에 경배를 드리고픈 충동을 늘 얻곤 한다.

그런데, 일곱째 날에 대한 말씀인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라(창2:3)”를 읽으며, 새로운 신앙고백을 갖게 되었다. 나는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는 창가를 통해 하늘을 우러러보며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옳습니다. 이 날 때문에 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았고, 이 진흙덩어리 안에 거하고 있는 생령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오늘도 당신의 거룩한 사랑의 법안에서 양육되고 있는 피조물임을 고백합니다. 일곱째 날의 특별한 복 주심과 거룩하심을 베풀어 주시고 나서야 비로소 안식 할 수 있으셨던 그 세밀하시며 광대하신 사랑을 나는 믿습니다. 아멘.“

– 윤 완희, 1/15/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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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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