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의 꿈

새해, 새천년이라는 이 거창한 단어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나름대로의 굉장한 소망을 올해의 삶의 벽에 걸어보고자 두리번 거리었다. 그런데, 새천년이라고, 특별하게 떠오르는 어떤 단어하나 없이, 문득, 유년의 꿈 만이 다시금 살아오른 것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이었다. 담임선생님이 신상명세서를 적으며,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적이 있다. “너는 이 다음에 무엇을 할래?” 나는 주저함 없이 선생님께 말하였다. “목동이요!” “목동?”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 여선생님이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깔깔거리는 바람에, 반 아이들이 어리둥절해 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그 여선생님이 왜 그토록 웃었는지 이해가 지금도 되지 않지만, 나의 꿈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목동이 되는 것이다.

내가 어린시절에 목동이 되고자 결심한 동기는, ‘대니보이’라는 유행가 한창 불려지던 유년시절 부터이다. 그 노래는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려퍼지고…”로 불려지는데, 그 가사 속에서, 자연에의 귀로에 눈이 화들짝 뜨이게되었다. 그리고, 어린소녀의 꿈은 단숨에 산골짝으로 날아가 둥지를 틀고 만 것이었다. 나는 이 새천년의 아침에도 목동이 되고 싶다는 그 변함없는 작은 소망 속에, 내 모습을 찾아 가고 있는 나를 만나가고 있는 것 만은 사실 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들이 가나안 정복 이전에, 가나안 사람들의 토속 종교는 일년에 한번씩, 인간의 모든 불의를 짊어진 염소를 광야에 내보내, 악귀를 몰아내는 예식을 갖은후, 열흘 후에 염소를 되찾아오곤하였다. 그것으로 삶의 평화와 복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었으며, 모세가 가나안 정복을 한 이후에, 이와 비슷한 염소몰이 예식(레위기 16: 20-22절)이 행해지곤 한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있다.

요즈음 이민교회에도 염소몰이가 한창이며, 역사가 오래된 기성교회 일수록 심각한 상태이다. 교인들이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새롭게 변화하여 기쁨과 성령이 충만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교인들이 가면서 괴로움과 아픔을 더한다는 현실이다. 교회의 영적인 몸들이 앓고 있어, 어딘가에 악귀를 몰아낼 희생물들을 찾아 갈등하고 있다. 이미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에서 영원한 번제물로 드려졌음에도 불구하고, 현대교회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희생물을 찾고자 방황하고 있다. 21세기의 문명의 극치 앞에서, 왜 이러한 염소몰이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신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사실 목동의 일은 별로 좋은 일은 아니었기에, 염소떼를 몰고 이산저산을 헤매이고 있는 한 인간을 상상해 보자. 더군다나, 쌔까만 똥을 흑진주처럼 빠뜨리고 다니며,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목청을 돋구며 “매애, 매애”하며 엄살을 부리는 동물들과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만도 않은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목동의 꿈을 꾸는 것은 무엇일까? “목동“의 꿈을 당당하게 말하던 소녀를 향한 담임선생님의 웃음소리가 이 새천년의 아침에 들려지는

철없는 소녀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웃으셨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노래는 애창하는 가운데, 성스러운 기쁨과 평화를 만날 수 있는 성서가 자연 속에 있음을 긴 세월 속에서 발견케 되었다.

자연 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들과 빗소리, 눈이 쌓이는 산골짝을 헤집고 떠돌아 다니는 바람과, 개울물 소리, 얼음깨지는 소리들. 봄이면 돋아오르는 새싹들의 노래가 들려지는 자연을 흠모하며, 나는 자신을 “목동”이라는 이미지 속에서 찾아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선생님은 목동이라는 이미지 속에, 소와 말똥 냄새에 절어 살아가며, 새벽잠을 설치며, 소죽을 끌이거나, 염소떼와 파리 떼를 몰고, 다니는 가난한 소녀를 생각하며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신앙생활도 자연 속에 들어 갈 때, 영혼이 끝없이 열려지는 경험을 수없이 발견한다. 저녁노을이 붉어져 오를 때, 떠나가는 태양이 서운하여 얼굴을 붉히며 눈물을 글썽이거나, 호숫가의 오리들의 물장구 속에서 기쁨과 자유함을 발견하는 것, 나무를 타고 오르내리는 다람쥐들의 발걸음 속에서, 하나님의 또 하나의 성품을 만날 수밖에 없어, 웃어대던 시간들- 학교공부에 매이는 것을 가장 큰 고문으로 여겨, 공부를 그토록 싫어하던 학창시절. 모든 물체의 색깔에 예민하고 그림으로 표현하기를 즐기며, 손 놀림을 좋아하여, 종이를 오리고 만지고 리본을 매는 것을 좋아하지만, 기계공학과 수학의 모든 부호엔 머리가 아파, 아예도 보기도 원치 않던 나.

새 천년에는 모든 곳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되는 세상 모든 이들이기를 기도해본다. 온 땅위에 평화, 조국 대한민국에 정의, 자연과 조화된 지구상에 빈곤이 사라진 그날 모든 가정 속에 사랑이 가득하길…

— 윤 완희, 2000년 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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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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