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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 차 세일이에요! 와우- 멋있다.” 몇 달 전에 차 사고로 고물 차를 잃어버린 큰 딸아이가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사랑을 나눈 지가 벌써 서너 달이 되었다. 보험회사로부터 차 값이라 하여 보상금은 받았으나, 그 가격에 합당한 차를 찾아내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아무리 다녀보고, 신문을 들여다보고, 세일딱지를 붙인 차들을 수없이 지나쳤지만, 끝내는 포기상태로 마땅한(?)차를 살 수 가 없었다. 너무 싼 차는 ‘보나마나 고물 차겠지!‘ 하여서 살 수 가 없었고, 마음에 드는 차는 ‘주머니 사정’에 도저히 맞지 않은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정비 소를 경영하는 집사 님에게 우리처지에 맞는 차를 한 대 부탁하였더니, 곧 연락이 왔다. 나는 딸아이를 앞세우고 정비소로 가보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차는 현대 엑셀로 진회색의 1989년형이었다. 나는 딸아이의 눈치를 살피었다. 평소에 날렵한 스포츠카나 찝차를 연상하던 아이는, 보기에도 처량해 보이는 엑셀을 바라보면서 얼굴이 단박에 찌그러졌다. “엄마! 이것 꼭 사야돼? …!” 낮은 음성으로 속삭이는 아이를 바라보며 “…집사 님이 소개한 차니까 우선 믿을 만 하겠지 뭐!” 하고 얼버무렸다. 아이는 앞뒤를 살펴보고 동네를 한바퀴 돌더니 두말없이 천불 짜리 첵크를 써서 내놓았다. 차라리 “난 이차 싫어!”하고 돌아서 나오기를 은근히 기대했던 나는 왠지 마음이 찡해왔다. 올해 21살된 딸아이에게 보란 듯이 멋진 스포츠카를 사주지 못하는 나와 남편은 자식 앞에 이토록 미안해 한 적은 없었다.

“여보! 내가 비록 당신생일에 진짜 보석 반지는 사주진 못하지만, 내 마음 전체를 당신에게 주고 있는 것 알고있지?” 수년 전, 남편이 내 손에 일불 주고 샀다는 가짜반지를 끼어주면서 하던 말이 불현듯 생각이 났다. ‘그래! 사람은 눈에 보이는 물건이 아니라 의미가 더 중요한 것이지!’ 나는 아이에게 정색을 하고 같은 말로 위로를 하였다. “세나야! 알지? 엄마 아빠는 세나에게 새 차는 못 사주지만, 정말 가치 있는 것을 주고자 애쓰는 것을 말아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실망에 찬 눈길을 어쩌지 못해하던 아이의 얼굴이 금방 활짝 피었다. “엄마! 이것 훌륭해요! 이것이면 어디든지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참 잘됐어요! 감사해요. 난 이 차를 갖음으로 인해, 괜한 죄의식에 시달리며 살 필요가 없어졌어요?” 하는 것이었다. “죄의식?” “그럼요! 이북아이들과 소말리아 사람들에게 말이어요!” 아이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핑 돌고 있었다. “…맞았어! 우린 언제나 각성하며 살아야겠지?” 어느새 어른스러워진 아이 앞에, 새 차를 사주지 못해 안쓰러워 하던 내 자신이 오히려 부끄러워지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위로는 아이와 또 한번 같이 하고 있었다. 자동차 관리국에 자동차를 등록하고 새 번호 판을 받아든 아이는 잠시 번호 판을 들여다보더니, 금방 얼굴이 환하게 빛나며 기쁨으로 펄쩍 펄쩍 뛰었다. “엄마! 이것보세요. W21 4GH- <Women 21, For God’s Helper!> 21살의 하나님의 동역자! 보세요! 얼마나 멋져요!” “…? 어디보자! 정말이구나! ” 딸과 나는 손과 손을 마주치면서 그토록 통쾌하고 기분좋게 하나님께 감사한 적이 없을 정도로 길거리 한복판에서 유쾌하게 웃어대었다.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이 우리의 몸을 녹일 것처럼 뜨겁기만 하던 그날, 21살의 아름다운 하나님의 동역자가 모는 <현대 엑셀>은 남태평양의 시원한 바람이라도 안은 듯이, 그렇게 신나게 목사관을 향하여 달려주었다.

— 윤 완희, 9/18/1998

New York State car license plate W21 4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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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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