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의 외출

으로 오랫만에 열흘간의 한국 방문을 하였습니다. 이민온지 16년 만에 가족과 교회를 두고,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그리던 고향을 방문 할 수 있게된 것은 저의 이민의 삶 가운데 있어서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외출이였습니다. 진작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었던 기회도 여러번 있었으나, 그동안 16년이라는 세월을 미루게 되었던 것은 내 인생을 좀더 정리하고, 여인으로 신앙인으로 성숙한 다음에 고향 땅을 찾으리라는 마음 속의 신화 때문이였는지도 모릅니다.

막상 비행기 트랩을 내려 고향 사람들의 숨소리와 언어가 가득한 여의도 국제공항의 땅을 밟으니, 가슴이 설레이며 어느 것 하나 반갑고 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언젠가 교황이 한국 땅을 밟았을 때, 땅에 엎드려 키스하던 모습대로 당장 땅에 엎드려 키스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보고팠던 얼굴들을 만나 기쁨의 포옹을 하면서 당신들 때문에 난 최선을 다해 살 수 있었으며 내 생애가 더 부유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목화 송이들이 모이고 모아져 하나의 실타래를 이루듯, 서로에게 얼마나 귀한 존재들 임에도 불구하고 그 긴 세월을 서로에게 소원했던 것에 용서를 빌수 밖에 었습니다.

고향의 이곳 저곳을 방문하던 중,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는 우리나라에도 그토록 산천이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이 감격스러웠습니다. 탐스럽게 피여진 동백꽃들과 집집마다 담장 밖으로 허리를 내놓고 서있는 귤나무들, 노랑색의 유채꽃이 만발한 제주도의 아득한 벌판에서 내 영혼은 호사스런 외출을 나온듯 산바람을 벗삼아 한없이 날아 만 갔습니다. 인간에게 그리움이 있고 그리움을 달랠 수 있다는 위로야 말로, 사람을 얼마나 강하게 하며 아름답게 승화시키고 있는가를 엿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향의 산 언덕에 핀 분홍빛 진달래 꽃들은 그 고운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충만한 가슴으로 맞아주었지만, 곳곳에 매꾸어져가고 있는 논과 밭, 그 수려한 숲속을 스키장과 골프장등의 레저라는 이름으로 삭발당하고 뭉개진 채, 신음하며 몸살을 앓고 있는 땅덩어리들… 미래에 다가올 식량난을 어찌 대처 할 것인가 하는 염려로 나도 모르게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속죄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놀이와 산업 만이 아니라 영혼의 쉬임이 필요합니다. 자연으로 부터 공급 될 호젓한 묵상과 고요, 인생의 보석과 같은 고독, 자연의 정겨움과 위로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하고 안타까움이 스쳐갔습니다.

그리운 고향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고, 그동안의 삶을 뒤돌아 보며 왔던 길을 되돌아 가볼 수 있음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저는 거리에서 구워 팔고 있는 단팥넣은 붕어빵이 너무 반가워 입맛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첫눈이 오면 서울역 앞의 시계탑 아래서 정각 12시에 만나자고 약속했던 단발머리의 동무가 그리워, 일부러 기차여행을 고집하고 서울역 앞의 시계탑 아래를 잠시나마 서성거려 보았습니다. 시계탑 밑에는 여전히 짐보따리를 손에 쥔 사람들이 그들의 또 다른 만남을 위하여 초조하게 시계를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남북의 이산 가족들이 이 시계탑 아래의 만남을 위하여 그 긴 세월을 참고 참으며 그날을 기다릴까 생각하니 괜시레 묵었던 슬픔들이 왈칵 쏟아져 나왔습니다.

16년이란 단절된 삶 속에서 그토록 보고싶었던 얼굴들, 열심히 살아온 이들과의 해후 이상 더 큰 기쁨이 없었습니다. 투명하게 살았던 이들은 지금도 밝고 빛난 삶을 살고, 허황된 꿈을 즐기던 이들은 지금도 머리가 허연 채로 허황된 꿈 속에서 헤메이고 있었으며, 일찌기 철들었던 이들은 나름대로 삶의 다져진 터전 위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삶의 첫 단추가 끼여진 대로 사람들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여행 중, 가슴 속에 일어나는 또 하나의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빌딩 숲의 간판과 간판사이로 보이는 햄버거 싸인이 반가워지고, 그토록 먹고싶던 순대보다도 햄버거가 더 입맛이 댕기는 것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또한 가끔씩 길에서 눈에 띄는 노랑머리의 외국인들과 흑인들의 모습이 그토록 정겨워질때, 나는 이역만리로 부터 온 방문객이라는 사실에 잠시 혼란스러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곧 내 속에는 이곳 만이 고향이 아닌, 또 하나의 고향! 나의 자녀들이 태어났고 그들의 후손들이 살아갈 미국이라는 땅덩어리가 이제는 낯선 곳이 아닌 나의 고향이며 나의 땅이며, 고향사람들 임을 발견케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두 나라와 두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내 생의 터전은 그만큼 더 크고 넓게 열려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이런 삶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한 축복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16년만의 외출. 그것은 내 삶의 행적을 뒤돌아 볼 수 있는 귀한 기회였으며, 나의 현재의 삶의 위치를 객관화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빠르게 흘러간 시간의 존재를 보면서 시간이란 참으로 거룩 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 가는 날, 이 땅에서의 삶을 후회함 없는 그리움으로 더듬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의 또 하나의 신화를 위해, 오늘 하루도 맑은 꽃망울로 피어나야겠다고 소망해 봅니다.

— 윤 완 희, 10/16/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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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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