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문제를 통한 위기, 시험은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시험과 문제들이 닥치게되면 우리는 당황하고 마음의 평정을 잃게되기가 쉽습니다. 평소에는 강한 것 같고 신앙도 좋은 듯하다가도 이 인생의 위기라는 파도에 부딪치게 되면, 그 동안 나를 가장하고 덮고 있던 신앙의 껍데기들이 모두 벗겨지고 나의 본성이 나타나게됩니다. 이럴 때, 로버트 슐러목사님께서는 ‘문제해결을 위한 5가지 제언’을 하셨습니다.
1. 모든 문제는 어떤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생긴다는 것을 상기하고
2. 성공이란 그러한 필요를 찾아내서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임을 상기하고,
3. 당신의 성공이 실제로는 문제로 변장하고 찾아온 기회라고 생각하고,
4. 당신의 문제를 하나의 지침이나 도전으로 생각하여 환영하고,
5. 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혹은 역이용하도록 당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나 일을 꼭 찾아내도록 하십시오. 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즉 문제와 시험이 생기면 하나님 안에서 먼저 기도로 마음의 평정을 찾고, 문제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문제에 개입하셔서 우리가 해결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해결점을 너무나 멋지게 처리해 줄 뿐 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대하신 계획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문제를 통해 우리를 완전케 하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저희주변에 형, 아우가 남이 부러워 할 정도로 우애하면서 사는 분들이 계십니다. 형님은 자라나면서 모든 면에 아우가 질투할 만큼, 모든 점에 앞서가는 분이었습니다. 이 동생은 언제나 형의 그늘 밑에서 살아오듯이 했습니다. 미국에 와서도 형이 먼저 예수 믿어 교회에 다니고, 동생은 형의 권면아래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형님은 교회 일에 열심을 내고, 신앙적으로 앞서가는 반면에 가정에 자꾸 어려운 일들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거의 십여년 이상을 형님 가정이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사업도 잘 되는 것 같다가도 생각지도 않은 문제들이 발생하여 형님을 잠시도 편케하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동생은 웬일인지 모든 일들이 너무나 잘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자녀들도 일류대학에 척척들어가 공부도 잘하고 있고, 사업도 번창하고, 건강도 좋고… 무엇하나 이젠 형님께 의존하거나 형님의 그늘아래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가만히 형님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신앙의 갈등이 생겼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우리 형처럼 성실하고 틀림없고, 신앙생활에도 열심인 분에게 왜 이렇게 어려운 문제들을 안게하실까?’라는 의문 이였습니다. 본인은 교회에 가긴 하여도 목사님의 설교 시간은 아예 낮잠 자는 시간으로 정하여 늘 졸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너무나 모든 일들이 잘되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 잘 믿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불 신앙의 마음이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서서히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하고 권면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으려면 여러 가지 문제를 통한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것은 왜 그럴까요?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중세기의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어느 날 대리석을 파는 상점 앞을 지나가다가 거기서 하나의 거대한 대리석을 발견케 되었습니다. 그는 이 정도면 가격이 꽤나가겠구나 하고는 주인에게 가격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 주인은 이 대리석은 너무나 커서 사가는 사람이 없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지가 꽤 오래되었으니, 그냥 가져가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즉시 그 대리석을 운반하여 영감 속에 조각을 구상하기 시작하여 완성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성모 마리아의 품에 안긴 ‘그리스도의 고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그 보잘 것 없는 대리석 속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창조해 낼 작품을 보았기 때문에, 그 대리석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예술가의 특유의 눈길 속에 발견된 그 돌은, 그후로부터 어떤 일을 당하게 되었겠습니까? 끌과 망치로 그 대리석은 다듬어지기 시작하였죠. 아마도 그 대리석이 말로 그 아픔을 표현했다면, 죽음 이상의 것이었겠지요. 그러나, 그 대리석의 존재는 완전히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이제는 가게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이 자리 만 차지하고 있는 걸림돌이 아니라, 예술가의 혼이 살아 움직이는 작품이 되어, 오고 가는 세대에게 영감을 주고, 박물관의 높은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는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문제가 없고 모든 것이 잘되어간다고 할 때,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곳에는 육적인 안이 함은 일을지 몰라도, 영적인 성숙의 길은 극히 연약해져 있거나 아예 잠들어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간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내가 하나님 안에서 마땅히 해야 될 일들을 애쓰고 찾아 감당해야 되겠지요. 또한 나는 과연 쓸모 있는 사람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 속에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그런데 왠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도 문제를 통한 인생의 위기 속에 있다면, 우리는 감사해야만 될 때입니다. 그 시간은 이미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다듬어지고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지요. “고통은 인간의 위대한 교사이며, 고통의 숨결 속에서 영혼은 발육된다”고 바하는 말했습니다. 고통과 위기에 처해보지 않은 삶이란 아직은 둥지 안에서 부화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은 언젠가 알에서 깨어 나와야 되고 영혼의 날개는 맘껏 창공을 날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인간을 다스리시는 모습을 독수리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독수리들은 둥지를 만들 때, 가시나무 가지를 깔고 돌멩이를 놓고 그 위에 새의 깃털을 얹어 포근한 둥지를 만들지요. 그리고 여기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다가 독립할 시간이 오면, 둥지의 깃털을 모두 거두어 버린답니다. 새끼들은 갑자기 가시나무가지에 찔리고, 돌의 거칠고 뾰쪽한 곳에 부드러운 몸이 닿게되니 여간 불편 한 것이 아니겠지요? 그리고는 이 새끼들을 물고 높은 절벽 위에 올라가 떨어뜨리니 더 이상 새끼들은 보금자리로 가지 않고 제나름대로의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새들보다도 강하고 명석한 것은 바로 이런 혹독한 훈련과 시련 때문에 새들의 왕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바로 이런 방법을 통해 그 사랑하는 자녀들을 훈련시키시지요. 그 거대한 독수리의 날개를 우리의 영혼에게도 달아, 이 아름다운 세계를 모두 관리하고 사랑할 수 있게 말입니다.
올해의 잊을 수 없는 사건 중에, 36년만에 우주선을 오른 존 글렌의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미국인으로 지난 1962년 2월 20일에 최초의 우주궤도에 올랐었고, 또한 77세라는 최고령의 우주인이 된 글렌의원은 지난 10월 28일,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노령화와 무중력간의 관계규명”을 위해 9일간의 우주선 탑승은 인간의 노화라는 한계를 깨뜨린 위대한 업적을 낳게 되었습니다. 존 글렌 의원이 이토록 극적인 우주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도 우연찮은 불운가운데 이뤄졌던 일이라고 하지요. 그것은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다치는 바람에 연방 상원의원 출마를 포기한 채, 혹시 장애자가 되지 않는가 하는 불안과 염려 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플로리다의 우주기지로 가서 의사들의 진단을 받아, 우주인으로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게되었습니다. 바로 그때의 정밀검사가 이번 우주여행을 성사시키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상원의원 제직 당시 상원노인문제위원으로 일하던 그는 노인 우주비행이라는 기상천외의 아이디어를 얻어, 끝내 그 일을 성사시키고 말았습니다.
글렌위원은 이번 우주여행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원대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라고 외친, 그의 경이로움이 저의 영혼 깊숙이 메아리쳐옵니다. 글렌위원의 한때의 위기는 그를 오히려 시대의 영웅으로 만드는 일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청취자 여러분! 우리에게 위기와 시험으로 변장하고 찾아온 또 하나의 인생의 기회를 결국 놓치거나 지나치지 않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저도 믿음이 연약하여서 어떤 삶의 위기나 시험이 닥치면 곧 잘 좌절하거나, 세상이 끝난 것처럼 당황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면 거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개입되어있고 진행되고 있는 전혀 기대치 못한 축복의 손길이 함께 하고 있음을 늘 발견하고하지요. 우리는 이제 좀더 넓고 큰 인내를 가지고 고난과 위기 가운데 다듬어지고 성숙되고 무르익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일뿐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 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함이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함이라’ 이 말씀이 마치도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처럼, 아름답게 단장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 주간에도 인생의 위기와 믿음의 시험 가운데 승리하시는 한주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윤완희, 11/17/19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