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느날 이사야서 43장 31절에 저의 영혼이 부딪치면서 전에 갖지 못하였던 새로운 영적인 신선감을 갖게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처럼 올라감 같을 것이며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눈으로 확인된 바 없고 손으로 만져본 적이 없는 우리 하나님을 앙망 할 때 얻어지는 새힘-
그 새힘은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체험 한바가 되었고, 또한 우리 자신이 경험한 것이기에 오늘도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바입니다. 우리는 수없이 지쳐있고 곤고하다가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은 영혼의 날개를 활짝 펴게하고, 삶 가운데 승리로 이끌곤 합니다. 인간의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늘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 그 원대하신 사랑의 품안에 우리가 거함은 참으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이 이 세상의 전부라면 우리의 삶은 어떠할까요?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 많이 있다고 생각치 않으십니까? 내가 없는 것들은 물론이요, 내 몸안에 있는 것들도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 심장을 꺼내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히 알기는 제 속에는 든든한 심장이 쉬지 않고 열심히 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손으로 저의 가슴에 대었을 때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느낄 수 있고, 혈압이 정상이기 때문이지요. 아, 그거야 누구나 아는 얘기라고요? 그렇습니다. 저의 몸의 체온이 정상이고 음식도 잘 소화하고, 눈 만뜨면 하고 싶은 것들을 대부분 하기 때문에 저는 늘 건강한 몸을 갖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몸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오장육부의 움직임이라든가, 생리적인 변화들은 별로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돌아가고 있고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나의 마음을 꺼내어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요. 특히 남들이 오해하거나 가족끼리 아무 것도 아닌 일들로 서로 마음이 상했을 때는, 지갑과 같이 당장 꺼내어 그 속을 보여주고 싶을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마음을 지갑처럼 필요할 때마다 눈으로 확인 할 수 없고 들여다 볼 수 없는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제가 한창 잠들어 있을 때, 누군가가 침입하여서 저의 마음을 훔쳐간다거나, 들여다 보거나, 어느 자리에 빼놓고 왔을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제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번민과 죄악된 생각과 마음 가짐이 천하에 들어 났을 때, 저는 얼마나 당황하겠습니까? 또한 이 세계는 남의 마음을 훔쳐서 이용하려는 온갖 악한세력들로 큰 혼란을 맞이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너무나 잘 창조하시어, 눈으로 보아서는 결국 만지거나 알 수 없도록 우리의 마음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의 몸을 해부하여도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찾아 낼 수 없도록 하신 하나님의 오묘하심이 생각 할수록 감사할 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눈으로 확인되지 않고 보이지 않기에 인간의 한계를 갖고 사는 우리로서는 방황도 하고 고민도 합니다. 만약에 제가 저의 심장을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기에 “나는 심장이 없어. 난 한번도 내 심장을 보지 못했거든!” 한다고 했을 때, 아마도 여러분들은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볼 것입니다.
이토록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들로 둘러쌓여 살아가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지 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눈으로 본적이 없어도, 삼라만상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고 알고 있습니다. 순간 순간 말씀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과 가까운 거리를 좁힐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셨음을 믿고 있기에, 죄 가운데서 다시 털고 일어 날 수 있는 용기가 있게됩니다. 소망을 갖을수 있고, 값없이 받은 은혜를 남에게도 전할 수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우리 안에 임재하신 그리스도를 무엇으로 느끼십니까? 우리가 알고있는 예수님, 성령님,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가 축소하거나, 제한하거나, 변질된 분이 아니십니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변함없는 분이십니다. 인간 만이 그 나약성 때문에 잘 변하고 넘어지고 토라질 따름입니다.
저는 이시간에 여러분들안에 있는 믿음을 영혼의 눈으로 확인해 보시기를 권유합니다.
우리의 믿음 안에는 ‘이 정도면 되겠어!’라는 “자위적인 믿음”이 있고, 자신의 믿음을 꾾임없이 개발하며 영적인 추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개발형 믿음”이 있습니다.
“자위적인 믿음”은 놀랍게도 많은 모태신앙인들 가운데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부모님의 신앙이나 교회안의 어떤 직분에 스스로 눌러 앉은채, 영혼의 유아기 그대로 갇혀있게 됩니다. 때로는 부모님으로부터 신앙의 구태의연한 자세를 본닫아 믿음 생활에 보이지 않는 걸림돌을 갖고, 믿음 안에서 성장치 못하고 있는 분들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태 신앙인들이 그 부모님의 신앙의 터 위에, 자신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 “개발형의 믿음”을 더 할 때, 신앙의 위대한 인물들이 그 가문에서 나옴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영적인 추구를 위해 “개발형의 믿음”을 겸비해야 되겠습니다.
렙비 나흐만은 “당신 자신 안에서 당신의 믿음을 확인하십시요”라고 권유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 나는 믿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내가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 나는 믿습니다. 아무리 멀리 길을 잃고 방황하더라도 내가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 나는 믿습니다. 내가 변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 나는 믿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참으로 헌신하고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는 자에게는 믿는 것은 보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심지어 진리조차도 믿지 않는 의심 많은 사람보다는 모든 것을 믿는 바보가 더 좋습니다” (빈의자 P126, 130. 도서출판 사람들)
— 윤 완희, 11/28/19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