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이 닦아오면 멀리 떨어져살던 가족들도 서로의 피붙이들을 찾아 긴 여행을 하게 됩니다. 추수 감사절 저녁상에 올려진 노릇노릇 하게 잘 구어진 터키요리를 즐기며 올해도 하나님으로 부터 일년동안 받은 축복을 서로 나누며, 감사의 축제 시간들을 갖게 됩니다. 추수 감사절은 분명 인간이 감사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 속에 미래의 소망을 갖게하고, 감사하는 마음 속에 하나님 안의 나를 찾는 계절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는 주변의 주어진 악조건들을 순식간에 최고의 조건으로 바꾸는 마술과 같은 힘이있습니다. 우리가 감사를 계속 의식적으로라도 시인하고 훈련치 않으면 그곳에 자리를 틀고 일어나는 것은 불안과 초조, 불평등이 잡초처럼 수없이 자라나게 됩니다. 미국의 데일 카네기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이 지구상의 비극은 가진 것을 감사할 줄 모르는데서 온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느부부가 이민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일을 하는데, 90년대 초기부터 경제가 안좋아지면서 그 마음 속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자꾸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뿐만이 아닌, 세계가 경제불황의 기류에 덥혀 많은 기업들이 고전을 하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을 하는데도 예전처럼 신바람이 나지도 않고 재미도 사라지기 시작하자 가정엔 늘 가정불화가 끊임없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큰 아이가 교통사고로 큰 중상을 입게되어 생과사의 길에서 헤매이게 되자 갑자기 정신이 화들짝 들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평상시대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며 하나님의 큰 은총인가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국 교인 중에 누구에게나 부러움을 살 정도로 금실이 좋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남보다 잘사는 것도 아니고 많이 배운 엘리트들도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공장에 나가 손에 기름때를 묻히고 집에 돌아와야 되었고, 부인은 파트타임 비서로 살고 있었으며, 그들에게는 십대의 아들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이세상에 자기 남편처럼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 없다며 늘 남편에게 감사해 하고, 남편은 부인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며 늘 감사했습니다. 이유를 알고보니, 이 부인이 십대에 임신을 한 후 남자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여 자살을 기도하였다가 살아났는데, 이웃에 살고 있던 총각이 청혼을 하여 가정을 갖게 되고 아들을 잘 출산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후에 그들은 자녀를 하나 더갖고 싶어 노력했으나 임신이 되지 않아 검사를 해보았더니, 남편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자기 평생에 갖을 수 없었던 아들을 낳아준 부인에게 감사하며, 부인은 생면부지의 남자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키우며 사랑하는 남편이 고맙고, 아이는 자신의 불우한 출생을 복되게 이끌어준 아버지에게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을 보게됩니다.
감사할 줄 알며 사는 것은 삶의 비현실적인 욕망의 어두운 창문의 커튼자락을 활짝활짝 열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오감을 충족케 할 뿐만 아니라 소아(小我)의 내가 아닌 대아(大我)를 내 속에 담게 합니다. 감사 하는 마음은 불균형의 삶을 균형있는 삶으로 자리를 잡아 줍니다.
감사의 조건들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 불감증에 걸려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추수 감사절을 앞두고 가족들에 대한 감사의 명목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첫번째는, 가족들이 건강한 것에 대해 감사한 것입니다. 식구들이 건강하니, 제가 무슨 음식을 만들든지 간에 맛있게 식사들을 해주니 감사할 뿐입니다. 두번째는, 제가 무슨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질러도 제외시키거나 사직서를 쓰고 나가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으며 용납해주는 것에 감사 한 것입니다. 셋째는, 저의 취미를 인정해주고 용기를 주고 아껴 줌에 대한 감사입니다. 넷째, 무엇을 새롭게 계획하거나 배우려 할 때, 전폭적으로 박수를 보내주고 아낌없는 후원에 대한 감사입니다. 다섯번째, 가족들의 기도의 후원에 대한 감사입니다. 나의 모든 단점과 잘못, 실수를 알면서도 감싸주고 덮어주는 그들의 기도는 멀리 있으나 가까이 있으나 늘 끊임없는 고리를 만들어 넘어질 때, 붙들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철마다 갈아 입어야만되는 우리들의 옷을 위하여 당신이 열심히 재봉을 돌려주시며 한땀한땀을 정성스레이 꿰메이시어 웬만한 걸림에도 터지지 않고, 그토록 자주 세탁을 했어도 단추 하나 잃어버림 없이 든든히 달려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오늘도 땀을 흘리며, 모든 상념을 멀리하시고 충실히 만들어 주신 옷을 입으며 감사합니다.
– 윤 완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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