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약
‘聖書的 敎會 生成을 향한 變形縯習'(THE TRANSFORMING PRAXIS TOWARD ECCLESIOGENESIS)이라는 제목은 필자가 다음의 몇권의 책을 읽는가운데 붙여지게 돼였다: Leonardo Boff’s Ecclesiogenesis, T. Richard Snyder’s Once You Were No People, Byung-Moo Ahn’s Christ in the Minjung Event, John Bradshow’s The Family & Home Coming, Paul f. Knitter’s No Other Name, Orlando E. Costas’ Christ Outside the Gate, Joe Holland and Peter Henriot’s Social Analysis, and Fred & Anita Prinzing’s Mixed Messages – Responding to Interracal Marriage, James H. Cone’s God of the Oppressed, Quentin Lauer’s Hegel’s Concept of God, Richard M. Zaner’s the Context of Self, Donald Dorr’s Intergral Spirituality, Sallie McFague’s Metaphorical Theology & Models of God, andrew Sung park’s the Wounded Heart of God, H. Richard Niebuhr’s the Responsible Self, Walter Brueggemann’s Finally Comes the Poet, Roger G. Betsworth’s Social Ethics.
변형 연습(變形縯習, TRNASFORMING PRAXIS)이라는 개념은 필자에게 23년전에 한국 서울에 소재한 감리교 신학대학을 다니면서 본훼퍼 목사의 신학과 신앙에 심취하면서 시작이 되였다. 그 후 청계천 빈민지역에서 도시산업선교회의 훈련생으로 ‘변형연습’ 즉 의식화, 인간화, 조직화에 몸을 담은 것이 신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됐다.
그 이후의 모든 사역이 한국과 미국에서 어디에서든지 변함이 없었다. 장소과 교인은 한국사람에서 미북부 백인으로, 다시 백인에서 이민 한국인으로 바뀌였을지라도, 변형연습에는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꾸준히 이 발걸음을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길이요, 내가 걸어왔고 앞으로도 가야할 길이다. 특히 이길위에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다. 그것은 인종의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이민자들이요 둘째로는 그 여성들이다. 이중에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동시에 받아야하는 사람들이 한인 이중문화가정의 여성들이다. 이들 중 많은 여성들은 미 주류 사회에서 놀라운 일을 담당하거나, 이상적인 가정과 자녀 양육에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은 고무적이다. 한편 사회 저변에 방관 되여있는 이들을 위한 선교기관으로 한미여성연합선교회를 세우고, 소외되여 비인간화된 이들을 만나고 섬기고 있다. 특히 본 논문의 한 부분에서는 소외의 극심한 예로 가정이 이민가정의 기능상실이 표면화되는 가정폭력을 위한 변형전략과 여성차별을 넘어 비인간화에 이르러 전 사회를 병들게하는 매춘부를 향한 변형전략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교회들이 사람들로 가득했으나, 사회가 전쟁의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경제적 안정이 되어감과 더불어 사람들은 다른 신들(gods)을섬기려고 교회를 떠났다. 마치도 히브리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후, 주위의 이방신에 저들의 마음을 내어준 것과 비교가 될 것이다. 이것은 이 시대를 결국 두가지의 벙어리 모양으로 만들고 말았다. ‘나’밖에 모르는 극도의 주관주의에 빠진 개인주의는 자신 속에 갇혀 극도의 소외의 심연에 빠져 버렸고, 반면 하나님 밖에 모르는 극도의 객관주의에 빠진 맹신주의는 극도의 분노와 두려움의 심연에 빠져 버렸다. 이 모두가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양쪽 모두 대화를 잃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삶’을 잃은 그들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은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들의 존재 근거 즉 ‘관계적 실체’를 잃어버린 까닭에 오늘의 교회는 성서적으로 볼 때, ‘변형’의 내용인 대화의 형태를 지니고 있어야하며, 그 대화로 인해서 공동체는 비로서 현재 속에 실재하는 실체가 되는 것이다. 교회의 현재가 바로 공동체적인 인간 자아의 정체성인 것이다. 회중이라 함은 바로 공동체의 삶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계속적인 관계룰 통한 변형적 생성을 말하는 것이다.
1970년 이후 한국인 이민자의 급증으로,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한인 이민 사회 속에 이중문화가정이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내에서 미군과 결혼해서 미국으로 건너온 여성들만이 아니고 한인 이민 2세, 1.5세 그리고 간혹 1세 사이에서 까지도 이중문화결혼을 하는 수가 날이 갈 수록 늘어간다는 말이다. 이민 생활의 어려움으로 인해 파괴되고 삐뚤어진 가정이 늘어가고 있다. 분명한 것은 한인 이민 사회는 이제 생성 공동체로 저들의 고향을 삼아야하는 때를 맞은 것이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외국 땅에서 평등의 가치와 참 자유의 삶을 누릴 생성 공동체를 역사적인 안목으로 볼 때, 분명히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본 논문은 엠버리교회 미국인 회중으로 연구반이 시작되었고, 저들에 의해서 한인 교회가 창립되였다. 그 이유는 미국인 교회에 남편 따라 나오던 한인 여성들에 의해서 한인교회가 시작되였고, 그 후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한미여성연합선교회가 설립되였다. 따라서 본 논문은 소외되고 변두리 인생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인간화를 위한 변형연습을 위한 시도로 보아야할 것이다. 크게는 이민 한국인 전체의 소외당한 삶으로부터 평화 (Shalom)의 삶에로의 생성을 위해서, 기초 공동체에로의 변형연습 의 노력이 요구되는 때라고 믿는다.
단절되고 소외된 변방(邊方)적 삶으로, 싫던, 좋던 삶의 정황 속에 던져진 이민자들 가운데 이민자의 여성 특히 이중문화가정의 한인 여성들에게는 생성을 위한 변형연습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라고 사려된다. 변형연습은 3가지의 단계를 갖고 있다.
첫째 단계는 개인의 의식화(意識化)의 단계로서 바로 인간의 고귀한 평등한 가치를 깨닫는 정체성(正體性)의 확인단계(確認段階)이요, 이는 관계적 생성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필자는 이것을 ‘출애급생성’ (出埃及生成, EXODUS-GENESIS) 이라 부른다. 둘째단계는 이렇게 정체성이 확인이된 개인들이 모여 대화(對話)를 이루되 평등(平等)하게 이루어질 때, 비로서 교회적 변형을 일어난다. 이렇게 비인간화의 인간화(人間化)에로의 변형은 ‘관계적(關係的) 자아(自我) 정체성(正體性)’에로의 변형으로 가능한 것으로, 이를 십자가 생성(CROSS-GENESIS)이라고 필자는 부른다. 의식화(意識化)는 인간화(人間化)의 기초요, 인간화는 생성화(生性化)의 기초이다. 생성화는 영원히 쉬임없는 내용이요, 책임적(責任的) 자아(自我) 속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宣敎)는 생성(生成)공동체가 다른 공동체를 향한 공동체 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익사회가 잃어버린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자원봉사(自願奉事)를 통해서 공동체롤 생성이되는 것이다. 누룩이요 빛으로 서는 것이다. 성육신 이후에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간을 위하여 자원하시며 관계 맺으시고, 봉사하고 계시지 않는가? 이러한 새 생명을 향한 공동체적 부활이 바로 삶의 생성이다. 책임적(責任的) 자아회복(自我回復)을 필자는 삶의 생성(LIFEGENESIS)이라고 부른다.
관계는 하나님의 본질이요 인간이 실존할 근원이다. ‘더불어 삶’ (COMMUNION)은 소외와 분노 속에 대화 잃은 이민자와 여성에게 생성으로 서는 교회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 성서적(聖書的) 교회(敎會) 생성(生成)을 향한 변형연습(變形縯習)은 하나님의 선교(宣敎)자체(自體)이다.
2. 발견
첫째로 성서는 아담에서 상실된 인간의 원형을 예수에게서 회복하고 있다.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는 이것을 인식함으로 시간의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서 의미로 살아난다. 그리스도 안에서 치료받은 자아가 회복하는 것을 정체성을 찾는 다고 말할 수 있다. 모세의 정체성은 3번 바뀐다. 바울도 사울이였다. 이민사회내에서의 자아 변형은 교회의 정체성 분열과 가정의 분열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혼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노름 술 매춘등에 중독자와 가정내의 폭행자들은 표면으로 드러나는 보고가 크게 없어 드러나지 않는 무서운 자기분열의 모습으로 증가하고 있다. 자기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의식화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을 연구를 통해서 깨달았다.
둘째로 교회의 모습이 자신과 가족의 사업과 성공을 위해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기중심의 신앙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타자 중심의 맹종의 양극단에 빠져서 사실상 인간으로서의 대화를 잃고 있다는 점이다. 예배를 보고, 교육을 하고, 찬양을 하고는 있는데, 이것도 기능주의와 이익사회의 연장된 모습으로 보일 때가 있다. 행사가 커진 것은 복받은 것이고 작은 것은 믿음이 부족한 것으로 보는 기복신앙이나, 물질만능주의적 교회내에의 신앙의 태도와 실천에는 막상 대화를 잃은 소외된 모습을 보게된다. 대화를 잃고 자시 속에 갖힌 교만한 사람들은 부족함 없이 행동하기 위해서 늘 피곤한 삶을 살아가며, 더우기 부족함을 인식하는 겸손의 힘의 부족으로 서로를 위하여 중보기도할 수 있는 영적 대화 능력도 부족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자기의 정체를 잃은 분열된 모습 중에 하나이다. 이러한 분열의 극대는 철저한 대화의 상실이다. 따라서언제나 지배와 피지배의 원리가 대화의 자리를 차지하고 공동체 대신 이익사회의 모습을 교회 내에 자리를 피는 보습을 보게 된다. 교회가 일반 사회보다 더 지배와 그 희생자가 많음도 발견의 배용이라 할 수있다.
셋째는 사회 속에 선 교회의 모습이다. 교회가 사회의 다른 단체와 경쟁 상대가 되어서는 않될 것이다. 오늘날에는 기업체가 그 이익금 중의 얼마를 사회에 환원을 한다. 교회가 사회 단체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술 담배를 않하기 때문에 다른가? 아니면 주일 날 운동경기를 않함으로 다른가? 교회가 다른 것은 ‘먼저’ 찾아가고 되돌려 받는 것 없이 ‘거저”주는 ‘더불어 삶’을 살아 감으로 ‘자원 봉사적’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나누는 일을 책임으로 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고 이것 때문에 교회가 교회일 수 있고, 이것 때문에 교인이 그리스도인 일 수 있음을 발견했다.
3. 제안
첫째로는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 앞에선 진실한 인간을 말한다. 즉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찾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 본래 창조하신 인간의 모습은 에덴동산의 아담인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원형을 찾을 수가 있다. 체면문화는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나 정체성 확인으로 하나님께 어떻게 보이느냐를 더욱 관심을 갖게 되어야하리라 본다.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늘 대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바로 거울이 되는 것이다. 자신을 찾아야 한다. 자신을 찾아보지 않은 사람은 자신과 남을 학대한다. 잘못된 상상의 모습을 가지고 지배고 누른다. 자기 정체를 아는 사람은 무리가 없다. 한국인이며 동시에 미국인으로 그 특징을 자랑하며 행복해질 수 있다. 이중문화가정한인여성은 한국인으로 미국인으로, 그리고 이미 한단계 앞장선 인종화해의 선구자로, 여성해방의 기수로 그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열증이 있을 수가 없다. 창피의 근거가 아니요 오히려 특징이요 자랑 거리가 된다. 자아 정체성의 생성이란 하나님과 대면한 끊임없는 자기성찰로 끊임없이 자기해방(출애급)을 체험하는 의식화이다. 이것이 시어머니를 따라 고향 땅을 떠나 새로운 이국의 땅에서 정착했던 룻의 정체성로 다윗 왕의 조모가 되였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둘째로는 교회가 교회일 수 있는 것은 더불어 사는 모습이다. 교회는 관계의 탄생지이다. 죽음과 탄생이 만나는 장소요.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장소이다. 교회의 주인인 예수로 인해서 시간의 과거와 미래가 재 해석된다. 인간과 하나님이 만나는 장소이며 시간이다. 사회는 교회로 인해서 그 존재의 의미가 재 해석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회가 재 해석될 수 있는 근원을 상실하면 세상은 그 표준을 잃고 어두움의 깊은 늪으로 빠진다. 그 곳과 그 시간에는 철저한 단절을 상징한다. 어둠의 실체는 단절이다. 그러나 빛의 실체는 관계이며 대화이다. 그것이 십자가의 생성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는 장소와 시간이며, 인간이 다른 인간을 평등하게 만나는 장소와 시간이 된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대화 속에서 그 자아의 정체를 발견할 때이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만나는 곳이 교회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기초생성공동체를 이루어야한다. 법보다 사랑으로 지배하는 곳이 가정이라면 교회는 가정의 확대된 모습이다. 대화는 서로의 위치를 평등하게 인정하고 서로 존경할 때에 성립된다. 몸의 피의 순환은 마치 대화와 같은 모습이다. 사회 속에 가장 모범된 대화의 모체가 교회이다. 예수가 대화 자체이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예수는 관계 자체이다. 태초에 관계가 있었고 관계가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셔서 단절되고 왜곡(병든)된 관계를 변형하여 참된(건강한) 관계를 생성코자 오신 것이다. 교회는 세상에 모범된 관계의 형식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 끊임없는 관계의 훈련을 서로 해야할 것이다. 개발도 해야할 것이다. 잘 듣는 훈련과 말하는 훈련을 해야할 것이다. 물론 하나님과 이웃과 더불어. 이것이 인간화를 이루는 십자가의 생성이다. 이중문화가정에 대한 새로윤 인식으로 이중문화가정한인여성과 교회의 관계가 새로와지고 한인사회의 통념의 변화롤 한인이 바라보는 이중문화가정의 미래를 향한 공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셋째로는 온전한 관계를 이루는 교회가 교회내의 사업에 만 머무르면 그것은 이미 폐쇄적인 친교단체에 불과하고, 이 땅위에 존재하며 확장되가는 하나님의 나라는 아닌 것이다. 교회가 교회로서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내적인 관계 자아의 개발과 더불어 교회가 처해 있는 사회 속에서 생명세포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대내적인 교회 사업에 만 신경을 쓰면, 교회는 닫힌 사회로 전락 과거의 실체가 된다. 그러나 그 문을 열고 ‘먼저’ 그리고 ‘거저’ 생명세포로서의 손을 내밀면, 이익사회는 교회의 내용인 공동체로서의 관계를 모방할 것이다. 그 관계의 원형인 하나님이 말씀과 복음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이다. 대외적인 관계를 지니는 것은 교회의 책임적 자아의 회복이며, 이것을 다른 말로 선교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생명을 유출되고 비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개인의 새로운 자아 정체성이 확인되며, 관계적 자아가 완성되는 책임적 자아로 서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미래의 부패(腐敗)나 발병(發病)을 예방(豫防)한다. 이 생명은 인류의 죄악인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문제를 해결하며 넘어갈 것이다. 하나니의 나라 확장은 하나님의 목적이고, 예수의 본질인 것이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니고 교회의 존재의 근거이다. 따라서 이중문화가정을 향한 사역을 필수적인 선교라 하겠다.
이로서 성서적(聖書的) 교회(敎會) 생성(生成)을 향한 변형연습(變形縯習)의 방법은 의식화(意識化), 인간화(人間化), 생성화(生性化)이고, 내용물은 관계(關係)의 사건(事件)인 것이다. 이것은 기존 교회와 교인 가운데서 일어나야하는 사건이다. 여기에서 시간(時間)은 영원(永遠)해진다. 그것은 현재(現在)의 거룩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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