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 어제와 오늘은
서두르지 않는 같은 걸음으로
흘러간다.
시간은 우리를 위해
속도를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아내가 떠난 이 집에서는
모든 것이 늘 있던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같지 않다.
그녀가 돌보던 일들을
나는 손대지 않은 채 두었는데,
오히려 더 바쁘다.
마당의 자잘한 일들,
오후마다 이어지던 습관들마저
공중에 멈춰 달린 듯하다.
두 끼의 소박한 식사조차
자꾸 뒤로 밀린다.
한때 그녀를 따라
일터와 뒷 마당으로 나가던
두 마리 작은 개들은
이제 내 곁에 바짝 붙어
깨어 있고, 잠들고, 숨 쉬며
내 걸음의 박자에 맞춘다.
흐르는 의식 속에서 쓰던 말들은
이제 말라붙어
가늘고 산만한 음졸임이 되었다.
동네 공원,
야구장 곁에서
어제는 보지 못했던
세 가족이 나타나
옅은 겨울 햇살 속에
공 놀이를 하고 있다.
한 가족은 개를 데려왔고,
내가 떠날 즈음
또 다른 가족이 들어선다—
큰 개 한 마리, 유모차 둘,
새해 오후의 느린 행렬이다.
이 지구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누군가는 폐허 위에 서서
눈물조차 남지 않은 채
어둑해지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첫날이 닫히는 순간에.
또 다른 이들은
밤새 축제를 마치고 늦게 깨어
삶의 좁은 틈으로 들어선다—
불공정의 간극,
약자를 누르는 법의 무게,
일어서지 못하게 하는 경제의 압박.
그 말할 수 없는 압력 속에서
한(恨)이 모인다—
말 없는 슬픔,
영혼 가장 깊은 방에서 끓는
뜨거운 침묵, 참을 수 없는 눈물, 그건
빛으로 바뀌기 직전의 순간.
내일은 더 무거울지도 모른다.
그리고 해는
떠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신비 속에는 흐름이 있다.
자기 설명을 하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리듬은 남는다—
들리지 않지만
끝내 신실한 리듬.
모든 새벽이 빛으로 오지는 않는다;
어떤 새벽은 깊이로,
자신의 음정을 배우는 침묵으로 온다.
떠오르지 않는 것도
여전히 울린다.
지휘자가 들어 올린 손,
이마에 맺힌 땀,
현과 목소리가 참아내는 숨결 속에서
순간들이 모여
연주회를 흔들고
청중의 숨마저 멈춘다.
그 흐름,
모든 눈과 귀 속에서
떨리는 손짓,
오보에 주자의 손끝,
공기를 빚는 소프라노—
저마다 마음과 영혼을 실어
기적의 좁은 줄 위를 건넌다,
한 음, 한 쉼표씩.
그런 노동,
그토록 치열한 헌신 앞에서
아무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마음과 신경과 근육이 함께
위로 일어나
소리와 침묵이
춤추기 시작한다.
모든 심장은 아름다움 쪽으로 기울어
한 몸, 한 화음이 된다—
파문은 넓어지고, 원은 퍼져
열정은 이미
한 해의 첫날,
삼백육십오 일의 시작에서
어느 뒤안길에선가, 숨이 퍼덕이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어제와 오늘은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루를
전혀 다르게 빚어낸다.
어떤 이는 이를 영원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완전한 아름다움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 안에서
영원하신 타자, 침묵의 하나님은 좌정하신다.
– 윤 태헌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