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書的 敎會 生成을 향한 變形 演習 (制 5 章 )
制 5 章
韓人 家庭의 機能 痲痺
1. ‘나’와 ‘너’의 問題로서의 少數民族性
소수민족성을 중심한 주제는 아주 깊이 잠재한 감정을 일으키고, 서로의 대화나 의논을 양분화 시키고, 더 나아가 판단적인 태도를 갖게하는 원인이 된다. A.M. Greeley에 의하면 ‘나’와 ‘너’를 정의는 일반적인 출생 근원이 바로 인간 정신 속의 원초적이고도 어떤 기본적인 것을 다루게 되는 것으로 짐작한다.1 또한 Irving Levine은 말하기를, “소수민족성은 대부분의 사람들 속에 대단히 깊이 자리잡고 있는 무의식의 감정을 다루는 주제인 성과 죽음의 주제와 같은 것이다.”2
참으로 인간 존재의 일반적인 경향은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거절을 한다. 다시말하면 인간은 통상 새로운 것에 대하여는 공포(Xenophobia)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희랍인들이 사용하던 말중에 “야만인”이라는 말은 문화가 없는 민족을 일컫던 말이다. 희랍인들이 자신을 중심으로 다른민족을 볼 때 그들의 문화가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또한 러시아 사람들도 “침묵하는 자, 벙어리”(NEMETZ)라고 타 민족을 일컬으면서, 그들은 알아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것들 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문화의 차이와 언어의 문제가 소수민족 차별의 근거가 됨을 보여준다. 즉 다르고 차이가 있는 것을 ‘나쁘다’ 혹은 ‘미쳤다’로 보는 것이 차별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좋은 예로 독일 사람들이 이태리 사람들을 보통 일컬어서 ‘신경질적인 사람’들이라고 부른다면, 이태리 사람들은 독일 사람들 향해서 “강박감에 사로 잡힌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경우와 같다.
2. 少數 民族性의 正體
소수민족성은 정체를 결정하는데 강력한 영향을 말한다. 소속감과 역사적 연속감이 바로 기본적인 심리적 욕구인 것이다. 우리가 이름을 바꾸고, 우리의 가정에 속하기를 거절하고, 더나아가서 사회적인 배경를 부인하고 떠나거나 무시할 수는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건강하고 안정된 삶에 손상을 주는 것은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Siegmunt Freud도 정체 형성에 있어서 문화의 역할을 취급했고, 문화 정체의 특별한 원칙들을 사용했다고 E.H. Erikson은 보았다.3 Freud가 가지고 있는 깊은 소수민족성의 정체감은 바로 분명치 않은 감정적 힘으로서 그것은 오히려 부족한 자를 좀더 분명히 진술할 수 있게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는 것이다.
E. H. Erickson은 1950년에 이미 개인이 어떻게 수수민족과 사회에 연결이 되는가를 이해하려는 기본구조를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정체성을 정의하기를, 이는 개인 속의 응어리에 의치한 것으로 한 과정을 정체로 보았는데 이는 상관적인 문화의 응어리 속에도 있다고 보았다. 우리의 문화 정체를 논하는 인간발전의 마지막 단계라는 주제 속에 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오직 한 문화 정체의 세습속에 안전하게 닻을 내린 정체성 만이 작동할 수 있는 사회심리적인 평정을 양산할 수 있게 된다.”4
유대인 소수민족을 연구한 J. Klein5나 흑인 소수민족을 연구한 P. Cobbs6 에 의하면, 만일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안정되여 있으면,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더욱 개방하고 융통성이 있고, 자유로움을 갖고 행동하며 대할 수 있다고 보고있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다른 소수민족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굴곡된 모습을 받아 들이거나 가정에 갈등을 갖고 있는 더 큰 사회로 부터 다른 가치들을 배우고 나면, 다른 소수민족들을 향하여 차별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이끄는 열등감과 자신을 미워하는 것등이 내면에서 성장하게 만든다.
3. 少數民族과 治療의 樣態
고통을 대하는 소수민족의 차이들은 다음과 같은 양태에서 볼 수 있다.
(1) 고통의 경험
(2) 고통의 징조를 명명하는 것
(3) 어떻게 그 고통과 징조에 대하여 말하는가
(4) 그 고통의 원인에 대한 믿음들
(5)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향한 태도
(6) 바라고 기대하는 치유 방법7
따라서 아픈 사람을 진단하는 일도 소수민족의 배경을 참작해야 되는 것이다. 치료의 과정에도 정돈된 의료술과 더불어 많은 문화적 치료 즉 신앙, 고통을 같이 하는 사람들 끼리의 도움을 주는 단체들, 술, 요가, 물리치료등등이 필요된다. 사실은 일반적으로 90%가 몸에 이상을 느끼는 사람들 가운데서 70-80%가 의사를 찾지않고 소수민족의 민속적인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8 그리고 의사를 찾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50%가 아픈 진단을 찾아낸다는 것이다.9
이렇듯이 심지어 백인들 가운데 유대인, 이태리인, 아이리쉬, 앨글로 색슨등 소수민족간에도 아픔에 대한 반응들이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10 유대인과 이태리 사람들은 아픈 것을 주로 불평하는 경향이 있지만, 아이리쉬나 앵글로 색슨은 불평을 안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픈 것을 설명할 때에는 앵글로 색슨과 유대인은 정확한 반면 아이리쉬나 이태리 사람의 설명은 의심이 갈 만큼 부정확하다는 것이다. 이태리 사람들은 아픈 것을 확대 극적인 표현을 하지만 아이리쉬 사람들은 아픈 것을 숨기거나 거절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치료결과에 대한 반응도 또한 놀라우리 만치 대단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태리 사람들은 병을 통해서 오는 결과가 미치는 직접적인 상황들 즉 직장, 경제, 그리고 가족등을 염려하나 일단 치료가 되면 갖었던 고통을 쉽게 잊어버린다. 유대인들은 병의 근본 치료보다는 통증을 멈추게하는 치료는 절대로 받아들이지를 않는다. 즉 통증을 멈추게 하는 약들을 두려워 한다. 오히려 병의 근본을 치료하지를 않고 미래의 오랜 동안의 건강을 해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적이고 근본적인 설명을 원하며 이에 따른 치료를 원한다. 아이리쉬 사람들은 부양을 위해서 치료 받기를 원치 않는다. 생명의 위험을 주는 치명적인 병에도 그 고통을 불평하거나 심지어 언급도 하지않는다. 오히려 그 고통을 그들 자신의 죄됨의 결과이며 자신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반면 앵글로 색슨 사람들은 병을 치료하는 과학과 기술의 능력에 대하여 낙관적인 미래지향적 관습이 있어 안심을 한다. 그리고 일의 윤리에 따라 일을 할 때, 그들 자신의 노력으로 그들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자신의 조정능력을 찾는다.
소수민족들 보다는 감정표현을 지배문화의 감정표현보다는 낮추어 보는 경향 때문에, 감정 표현 또한 문제들로 유도될 수 있다. 미국화된 이민자들은 유대인이나 이태리 사람들에게 나타난 고통의 억제되지않은 표현들을 신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반응을 지나친 엄살로 보는 것이다.11 반면 어떤 의사들은 이태리 환자를 정신병이 있다고 판단했으나 정신분석 결과 정신 사회적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는 수가 많다.12
인종차별과 빈곤과 정치적인 무력의 해로운 효과들에 촛점을 두는 것이 전통과 회복 시술과 신용 형태 등의 소수민족의 긍정적인 견해들을 종종 무시하고 있음을 말한다.
자연적으로 문제를 보이는 행동도 다 다르다. 앵글로 색슨은 의존과 감정적인 것을 문제로 보나, 아이리쉬는 “남에게 보이는 일을 벌리는 것”을 문제로 본다. 이태리 사람은 가정에 불충성한 것을 문제로 보나 그리스 사람들은 그들의 자존심을 경멸하는 것이 문제로 삼고, 유대인은 그들의 자녀가 ‘성공’하지 못한 것을 문제 삼는다.
문제해결 방법에도 차이가 있다. 앵글로 색슨은 최고의 해결책을 스토익주의(사념)와 이성과 일로 보았고, 유대인은 자주 의사와 치료전문인을 찾으며 원인과 해결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아이리쉬는 신부를 찾아가서 고해성사를 하면서 자신의 고통을 기도 속에 바치고, 남자인 경우에는 술을 마심으로 위안을 받으려 한다. 이태리 사람은 가족의 도움에 의존하며 먹고 함께 대화나누며 자신을 토로한다. 서인도 사람들은 일에 빠져버리거나 떠돌아 다니고 혹은 노인으로 부터 해결을 위한 지혜를 찾는다. 노르웨이 사람은 수술을 원하고 맑은 공기와 운동을 택한다.
문화의 차이를 종종 소수민족의 차이로 보지 않고, 계층의 차이로 보는 수가 종종 있다. 거의 모든 이민자 가정이 이민으로 부터 오는 복합적인 정신적인 압박들을 경험한다. 이민자들이 마치 장사지냄을 당한 사람들 같고 잊혀진 사람들 같으나, 그러나 이민자들은 그들의 삶을 계속할 것이며, 영향을 끼치며, 결국에는 이 땅의 주인으로 함께 도우며 살아 가아갈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들이나 청소년을 대동하고 이민오는 가정은 부모가 이들과 가정에서 지내는 시간이 극히 제한이 되여 있기 때문에 이들이 성장해서 결혼해서 나가기 전까지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그것은 새 문화에의 적응에 필요한 복합변형과 세대갈등을 동시에 겪게되는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조부모님이 편찮으시거나 돌아가실 때 가지못할 경우에는 아이들의 부모가 조부모님과 함께하지 못한데에 대해서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져서 심한 심리적 압박에 사로 잡히게 된다.
성인이 되어서 떠나는 사람들에게 이민은 더욱 어렵다. 뒤에다 너무 많은 협조의 배경을 두고 떠나기 때문이다. 또한 영어로 수월하게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이민자는 쉽사리 그의 삶이 아주 극심한 소외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이민 제 1 세대의 대부분은 새로운 공동체 내의 한인언어 군을 형성하고 그 곳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경우에는 거쳐야된 이민의 단계인 문화적 갈등이 자연히 연기가 되고 마는 결과를 낳는다. 다음 세대들(1.5세나 2세)은 ‘미국화’를 위한 부단한 적응 노력으로 인해 부모가 갖고 있는 소수민족의 가치를 반대하게 된다. 세대간의 갈등은 흔히는 미국에 이민 온 가정 속의 가치 혼란의 문제이다.
이혼, 병, 직장을 잃음, 죽음, 퇴직등의 상황적인 위기들은 소수민족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의 갈등을 일으킨다. 다시 말해서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는 정체성 위기의 원인이 된다.
4. 韓人의 文化意識
문화는 생존적이지만 또한 언어, 지도력, 혈족관계 및 종교등의 특별한 구조를 갖는 환경, 역사, 그리고 사회과정에 의해서 형성된다. 문화는 또한 대화, 신조, 가치가 동원된 행동들의 과정과 정책인 것이다.
문화가 발생하면서 모습이 전혀 다른 특수한 무리와의 만남과 또한 서로가 흡수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이러한 과정은 아마도 충돌될 때에 일어난다. 다른 문화가 보는 한 문화는 익숙하지 않고 혹은 자신에게 해준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에 대한 문화개념은 아마도 굴곡된 것으로 본다. 한국인의 수천년의 역사 속에 종교와 정치를 통해 형성된 깊은 가족제도와 특별한 전통과 관습의 복합적인 문명을 ‘아침의 나라’라고 그 위대한 지혜와 신선한 모습으로 칭찬을 하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이민 한국인을 비인간적인 무리로 몰아부치면서, 정체되고 외고집이고 덜깬 문화인이라고 불러대는 인종차별을 본다.13
다른 아시아인이 겪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인도 미국에 이민 올 때 문화적인 변화로 대단히 힘든 과정을 겪는다.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건너온 이후, 일제하에 정치적 피난민으로 이민의 수가 늘었고 6.25이후에 꾸준한 이중문화 가정여성들, 그 후에 의사 간호사 유학생들 그리고 가족 초청의 수가 날로 더해가고 있다. 이민가족이 갖는 가장 큰 부담은 생존과 경제적 안정이라고 보겠다. 이러한 생활’변경’은 성공과 함께 이루지만 이 성공은 대부분의 이민가정이 ‘갈등과 소외’를 함께 낳는 결과를 가져온다. 왜냐하면 한국가정의 언어, 습관, 신조, 구조를 바꾸기 시작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의 감정적, 심리적 댓가로 주어지는 것을 이민자가 이 땅에서 살악는 동안 계속해서 지불해야만 하는 고통을 갖고 살게된다.
1) 韓人家族 構造 理解
이민 한인가정의 문제가 어디서 비롯되는 지를 알려면 먼저, 전통적인 13. Park, R. E., Race and Culture. New York: Free Press, 1950. 한인가족의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고 본다. 전통적인 한인가족의 개념은 시간의 제한이없다. 대가족의 개념은 전후로 연장이 된다. 즉 한 개인은 가문의 시작으로 부터 모든 세대의 조상으로 인한 결과로 본다. 이 개념은 종교의식과 관습에 남아 있어서, 조상에 예배하고 족보를 귀하게 여기고, 조상 몇대 까지 기억하며 심지어는 수백년 전까지 거슬러 오르는 경우도 없지 않다. 따라서 한 사람의 행동은 그 개인과 핵가족과 연장된 대가족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가문의 시작 부터의 모든 조상을 반영하는 폭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인격적인 관심을 초월하는 책임의 짐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것이 이민가정내에 숨겨진 자녀문제와 부부의 갈등을 촉진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2) 韓人의 結婚 理解
한인이해의 가장 빠른 길은 결혼과정을 보는데 있다. 결혼상대자를 선택함에는 양가의 영향이 크다. 이러한 전통이 사라진 오늘에도 개인들이 고른 상대라도 부모의 허락을 받는 것을 상례로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부모와 가족의 축복이 없이는 결혼을 하지않았고, 하더라도 사회에서 인정도 하지않았다.
이러한 전통관습 속에는, 결혼이란 새로운 가정을 창조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한 가문을 연장해 간다는 말이 옳은 표현이 된다. 여인은 자신의 가문을 떠나 남자의 가문에 흡수되여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가부장적 제도 아래서는 아내의 위치는 매우 낮았다. 남편 보다도, 시부모 보다도, 남편의 어떠한 조상보다도 낮은 것이다.
유교적인 전통 속에서 보면, 여성이 걸어가야할 세가지 길이 있는데, 이모두가 남성들에게 복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는 여성이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에게 무조건 복종해야하고, 둘째,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셋째로, 나이든 훗날에는 장남의 의사를 따라야만 한다.
3) 父母의 役割 理解
가족의 하부구조인 핵가족 속의 부모 역할은 분명하다. 아버지가 가족의 지도자다. 그의 권위는 빌문의 여지가 없다. 모든 것을 아버지가 결정한다. 그의 권위가 큰 만큼, 의무도 크다. 한인사회의 눈으로 볼 때, 그 가족의 개인이나 전체의 성공과 실패의 여부는 아버지의 영향에 달려있다. 아버지가 경제적 복지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음식, 옷, 집을 제공하는 것이 아버지의 어깨에 달려진다. 따라서 그 아버지는 가정의 규칙을 세우고 가족들로 하여금 지키게 한다. 아버지는 훈육자가 된다. 이것 때문에 아버지는 굳은 사람, 거리가 있는 사람, 그리고 어머니보다 대하기가 힘든 사람으로 평가된다. 자녀와의 대화부족의 원인이 되리라 본다.
전통적으로 어머니의 역할은 남편과 자녀들을 돌보고 양육하는 사람이다. 근대에 이르기 전에는 여성은 가정의 중심에서서 또한 세상에 나가 남성들과 같은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모든 힘과 창조성은 모두 자녀 교육에만 쓰도록 해왔다. 어머니는 분명히 감성적으로 헌신하고, 아이들을 먹이고 아플 때 돌보고, 어려울 때 들어주고 하는 양육과 돌봄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아이들의 소리를 아버지에게 전달하는 중간 다리 역할도 했다. 아버지와 자녀 사이의 대화 상실의 분리를 연결하는 유일길이 어머니를 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녀들은 어머니에게 감성적으로 부착되여 있다.
이러한 역동성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장남이 집안을 인도하게 될 때, 어머니의 삶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머니의 장남을 향한 감성적 부착으로 인해, 장남의 충성이 헌신했던 어머니를 향함으로, 어머니의 소원과 기대감은 장남에 의해서 존경되고 충족되여진다. 그러므로 장남이 가문을 다스리는 자가되였어도 흔히는 어머니가 장남을 다스린다. 이러한 모습이 한인 여성의 말년의 모습이라 하겠다. 부인과 어머니의 남편과 아들을 향한 은밀한 영향은 집안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주는 은밀한 영향보다 큰 것이다.
4) 子女 理解
전통적인 가정에서는 아들이 딸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과거의 한 시절에는 아기가 여아이면 낳자 내다 버렸다고 한다. 가문의 이름을 아들에 의해서 전해진다. 이제는 한국내의 법도 여성의 의해서 가족의 성(姓)이 계승될 수 있고, 가문을 창출할 수 있다. 요즈음은 장녀가 맏아들의 의무를 노부모에게 다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한인 사회의 통념은 여성은 아무리 결혼 상대자 선택의 자유가 있고 남성처럼 일을 한다할 지라도 기본적인 역할은 가정을 돌보는 주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5) 義務와 體面 文化 理解
한국문화는 높은 의무감이 그 삶을 다스려 나가는 의식으로 차 있다. 체면을 말하는 ‘면목이 없다’는 표현은 사전에 정해진 의무를 암시하고 있다. 서양사고는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책임지고 결정하고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자신의 발로 홀로 서서 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서 평가를 받고 대접을 받는 문화이다. 아니면 스스로 독립해서 자신 사업을 홀로 역사하며 홀로 사는 것이 인정되는 사회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한국인의 의식은 한 개인은 그 모든 일들과 사람들의 노력으로 인해서 한 개인은 그들의 모습처럼 되어야 인식해주는 철학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적당한 태도와 다스림으로 조화를 지켜나가는 것을 바라면서, 다른 이들과 관계를 갖고 양육한다는 관습으로 인해서 나온 생산품들이 자신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인의 의식속에 의무의 개념은 대단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미국의 상호의존관계를 향한 경향은 개인과 단체에 자유롭게 동의하는, 상당히 계약적인 의무라고 사려된다. 한국인의 문화 속에서도 계약적인 의무가 존재하고 또한 주요하지만,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즉 말로 표현되지 아니한 상호의존 관계가 개인의 인간적 삶에 지대한 충격을 가져온다. 이러한 의미에서 의무는 두가지 면에서 일어나다고 본다. 첫째는 진술된 역할과 지위가 같고 있는 관계를 통해서 일어난다. 즉 부모가 자녀를 향한 관계, 선생이 학생을 향한 관계, 고용주가 고용인을 향한 관계등이다. 이러한 관계의 상하 성격 혹은 계층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 된다. 둘째번 한국문화 속의 상호의존관계의 발생은 그들의 친절 혹은 도움을 받은 것 때문에 생기는 의무로 인한 행동들이다. 이러한 같은 의무가 각각 다른 개인을 향해서 갚아야 할 경우에는 갈등의 원인이 되며 대단한 걱정의 원인이 된다.
한인 자녀들의 가장 큰 의무는 저들의 생명을 이 세상으로 데려오고, 무력할 때 돌봐 준, 부모를 향한 것이다. 그들이 지닌 빚은 결코 다 갚을 수 없다고 믿고 있다. 부모가 무슨 일을 자녀에게 하던 자녀는 그래도 부모를 향하여 존경과 복종을 드릴 의무가 아직 있다고 보는 것이다.
6) 體面
체면은 사회적 기대와 알맞은 행동을 전통적으로 지켜 나가도록 돕는 장치이다. ‘면목 없습니다’라는 말은 체면의 사회개념을 형성한다.
자녀가 이불에 오줌을 싸면 키를 머리에 씌어 동네의 집집이 다니 소금얻으러 왔습니다’를 외치며 다니는 것으로 벌을 대신했다. 자녀는 속으로 무척 챙피하나 사람들이 자신이 보이지 않도록 키로 뒤집어쓰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은 부모의 심부름으로 소금을 얻으러 다니는 것으로 볼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며 다닌다. 다녀온 후, 자녀의 보고는, 아무도 소금을 주지 않고 키 위에다 뿌리며 키 위를 두드리더라는 것이다. 이는 토속적으로 어린아이에게 챙피와 놀람을 주어 무의식적으로 누는 이부자리에서의 방뇨를 방지해보자는 의도였던 것 같다. (필자의 기억)
이것은 또한 한 자녀의 실수를 온동네가 책임지는 전체의 의무로 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공공에게 공개하는 것은 고백의 행위를 훈련함으로 자신은 전체를 향해서 지는 의무가 있음을 훈련하는 민속 사회 속에 숨어 있는 사회개념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모습은 무수히 한국인의 삶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체면을 잃었다는 개념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됐다는 것 만이 아니고, 가정과 공동체와 사회의 자신감과 협조를 잃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사회구조 속에는 상호 의존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즉 실질적인 협조를 잃어버리거나 그러한 징조가 올 때 이는 개인의 기본적인 신뢰가 흔들리게 되는데, 이는 다른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기본 신뢰가 사라졌기 때문이고 또한 이로 인해 본인은 삶을 진정 홀로 지탱해나가야하는 실존적인 두려움을 대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얼굴을 잃어버리는 것’은 가정과 사회의 기대들을 채우기 위한 대단히 강한 동기유발의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체면을 잃는 일이 일어나면, 사람들로부터 협조를 잃고, 의무적인 관계로 부터 권리정지를 당하게 된다. 이러한 의무의 복합적의 그물과 체면의 두려움으로 인해서 한국인 가정이 이민 생활에 문제가 가속화되면서, 문제가 생긴 후에 그 치료와 해결 과정에서도 어려운 문제점으로 드러난다.
7) 對話의 課程 理解
미국 사회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가치있게 본다. 즉 개방과 정직이 최고의 덕목이요 정책이라고 믿는다. 구화(口話)적 개방과 표현이 문제 해결의 기본적인 좋은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한인의 의식과 감정 속에는 이러한 개방과 자유 대화를 향해서 다른 태도를 갖고 있다. 조화된 인간관계를 아주 높은 가치를 두고 있는 이유로, 직접적인 대항은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대화 방식이 간접적이고 핵심 주위를 도는 대화 방식을 택한다. 직접적인 표현은 결국 동의를 얻어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더나아가서 대항과 체면을 잃기 때문에 양자가 피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대화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대화 속에서 그 사람의 말하려는 핵심을 건져내는 예민성에 의존한다.
요즈음 한인가정의 젊은이들이 결혼 상대와 선을 본 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사자와 그 가문의 체면을 위해서 간접적인 방법으로 거절하느라고 부심하는 이유가 여기에 기인한다고 보겠다. 한인 가정의 문제가 폭발되여 사회문제화되기 전까지 가정 내부에서 만 심화되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청하는 것은 집안의 일을 밖으로 알리는 체면문제에 걸려 가정내에서 해결하려 노력하는 이유로 통계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 결과로 치료과정에서도 문제의 은폐성향으로 진전이 완만하거나 왜곡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5. 移民生活의 變化過程 속의 家庭
먼저 스스로 선택한 새문화에의 적응하는 상관 관계의 문제를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한인가정은 두가지의 변화의 차원을 대하게 된다고본다. 첫째는 경제적 안정, 교육, 언어등의 가족이 넘어야할 장애들 속에 신체적 혹은 물질적 변화이며, 둘째는 심리학적으로 볼 때 새로운 환경의 다양한 모습들과 협동을 시도함은, 친숙과 조절할 수 있음과 협조적으로 변해서 자신감과 안정을 늘릴 수 있도록 하는 인식적, 구조적, 정서적 변화이다. 변화의 감정적인 부수(동반)적인 것들을 극복하는 일이 명백히 깨닭아지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로 인해서 깨달아지지 않은 가정의 이러한 문제가 가정의 기능장애를 가져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민생활의 변화에 첫 단계에서 먼저 삶의 기본적인 요구들(처소, 음식 그리고 옷)을 충족시키기 위한 경제적 안정이 우선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이민 온 직후 부터 가정의 모든 성인은 즉시 일자리를 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 수입으로 집을 사고, 식당, 세탁소, 야채상, 봉재공장등의 소기업을 시작하는 것을 소망한다. 한편으로 아주 값싸고 작은 아파트에서 이민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부모들의 일하는 시간은 주로 매일 10-12시간씩 6일을 노동한다. 그러나 최저 임금이 주어지고, 다른 혜택(건강보험, 연금등)은 생각도 못하고 만다. 언어의 장벽으로 일자리가 제한 되여있고, 진급에도 지장이 있다. 성장하는 자녀들의 부모들이 노동을 오랜 시간하기 때문에 시간을 내어서 언어를 공부할 수가 없다. 언어문제는 취직과 사업의 어려움 뿐아니라 장차는 자녀들과의 대화의 장벽이 된다. 시간이 없어서 자녀와 대화를 할 수없을 뿐 아니라 언어가 담고 있는 문화를 용납할 수 없어서 오는 자녀와의 단절은 심화되는 것이다. 이로서 자녀와 부모 또한 부부사이에 극심한 소외가 이민 가정 내에서 형성된다고 보겠다.
장기적인 가정의 안정을 목적으로, 자녀를 좋은학교에 보내서 설계사, 의사, 변호사등의 전문인을 만드는 것이 성공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자녀 자신을 위해서 만이 아니고 부모와 가문을 위해서 해야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재정과 희망을 제공하는 부모와 자녀사이에 눈에 보이기 않게 형성되여 있는 긴장은 대화의 횟수를 감소시키고, 대화의 내용을 단순화 시키고 긴장되게 하여, 결국 서로를 소외시키는 원인이 된다.
단기적인 희생에도 문제는 있다. 처소와 음식 및 의복을 제공하기 위하여 부모는 첫째 사회할동과 친교를 희생하고 둘째로 장기적 물질적 생활 안정을 위해서 자녀양육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중요한 기능들을 희생시키고 있다. 더욱이 단기 희생이 10여년 이나 그 이상까지 연장이 되는 경우가 흔히 보이는데 이는 다소간 혹은 거의 얻는 것이 없이 자기희생의 연속적인 순환이라는 깊은 늪에 가정이 빠져버린다. 친숙한 환경의 상실과 사회적 협조 연결망의 상실은 가정의 기능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실질적으로 육체적 조정과 필요한 적응을 넘어서, 가정 기능의 인식적인 구성 성분들이 극심한 마음의 상처(정신적 외상)를 겪어야만 한다. 친구, 좋아 하는 취미/놀이, 직업적인 기회등의 상처받았을 때 그 회복을 도와주는 장치를 잃어버린 것을 포함해서 문화적인 소외 과정을 모든 가족이 겪게되는 것이다. 언어와 미국문화의 익숙함없이 도착하면서 이민가족을 어리둥절케 만드는 생활 양식과 문화에 도전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한 반응이 매우 복합적이지만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형태의 모양을 보인다.
반응(反應)의 첫 인식(認識)적 단계는 다음의 7 가지 단계를 거쳐간다:
(1) 기대했던 것과 실체로 존재하는 것 사이의 불일치에서 오는 놀람과 문화적 충격이다.
(2) 그 실재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실망
(3) 뒤에 두고 온 것에 대한 상실과 분리로 인한 슬픔
(4) 이기적인 이유로 인한 노염(화냄)과 분개
(5) 현 가정의 형편에서 오는 우울증
(6) 현 상황을 수용하는 태도의 한 형태
(7) 가정의 자원과 힘을 운용 유통14
이러한 구성은 각 가족이 겪으면서 보이는 반응을 일반화된 개요로 보려는 시도가 숨어 있다. 분명히 거기에는 각 가정마다 많은 차이가 있고 그 순서에도 바꾸어지리라 본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가정의 반응이 문제가 생기면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방법을 사용하는 자원들을 동원하여 운용한다. 이러한 반응은 각 가족이 하고 있는 역할에 있어, 문제 해결에 더 큰 요구와 기대를 강조한다는 뜻도 된다. 모두가 굉장한 효력과 힘을 발휘할 것을 서로가 기대한다. 이미 압력을 주는 한인 가정의 계층적 가정 구조가 이러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가족이 의지하는 근거를 제공하리라는 기대를 다시하게 되는 역설적인 순환을 겪게된다. 그러나 분명히 이 가정은 확장된 가정의 얼개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새로운 환경 속에 있지를 않다. 이 때에 가정이 가장 의지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사라져 있는 것이다. 즉 한인이 가지고 있는 협조와 도움의 근거인 확장된 얼개(THE EXTENDED NETWORK)를 이민생활에서 잃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정을 기능 마비로 이끌어가는 가정구조의 파손 (와해)인 것이다.
6. 機能痲痺의 創出
계층적 권위와 남성 지배와 물질적인 것과 감전적인 것으로부터 양산되는 것을 분리함등의 전통적인 문제해결 방법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문화 전향 가운데에 있는 가정이 흔히들 필요한 변화를 채택하지 못한다. 이러한 채용 비능력은 앞에서 진술한 새 문화에 대한 인식적 반응의 단계들을 악화시킨다. 더욱이 가족들이 특별히 어느 적응 단계를 잘 다루지 못하고 실패를 하면 전체 가정의 체제를 기능마비로 이끌어 가게 된다.
가정의 구조가 가지고 있는 심각한 기능들 하나 하나가, 식구들이 서로의 협조에 의존하듯이 상호 의존적인 뼈대(얼개, 하부구조)를 제공한다. 그러나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옮겨갈 대에는 이러한 이러한 가정구조를 상실하게 마련이다. 예를 들자면 가정의 변화는 확대된 가정의 얼개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고 만다. 친족과 가까운 친구들은 이러한 핵가족에게 도움을 더이상 줄 수가 없이 떨어져 있다. 이러한 얼개는 전통적으로 ‘모든 것을 가족끼리’ 해결하고 처리하도록 속으로 지켜나가지마는, 결국 뭉쳐진 핵가족 밖의 도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문제들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가까운 친구들과 친척과 확대된 가족이 없는 핵가족에게는 상호인간관계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가족의 역할들이 대단히 엄격히 굳어 있는 한인 가정에서는 문제들을 가정안으로 지키기 때문에 문제의 표현과 해결을 위한 대외적인 연결의 줄이 미약하거나 전혀 없는 경우가 많다. 긴장들과 압박들이 상기의 인식 기능의 단계들이 하나 혹은 복합적으로 합친 가운데 일어나며, 일반적으로 뒤의 단계인 슬픔과 분노와 우울증에 이르면서 기능마비의 더욱 강한 빈도를 대하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변화의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 중 다른 하나는 특히 권위, 성별 그리고 선택의 자유를 향한 서양의 개인주의, 독립성 그리고 자기주장 속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이와같은 미국문화의 태도가 과거에 계속되던 자신의 격하와 새 문화 속에 적은 수용되기 위한 욕구에서 젊은 이들에게는 대단히 환영을 받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한인 이민자 자신들이 갖고 있는 문화로 부터 각 개인을 더욱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가정의 기능 마비는 가정 생활의 모든 면에서 식구들 스스로 거리를 두거나 마음을 거두는 일을 만든다. 따라서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전보다도 더욱 강요하게 되고, 맞지않는 자신의 주장과 감정을 감추게 된다. 그 자신의 두려움과 분노의 감정들을 자신의 역할을 빼앗은 자녀들이나 아내에게 쏟아놓게 되는 것이다.
이민 한인 가정의 기능마비를 살펴보면서 이민가정에 쌓여가는 긴장과 압박을 살펴 봤다. 인간관계가 부서진 가정으로 인해 한인 사회가 확대된 가정으로서의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는데 어려운 장애가 많음을 보았다. [표 1]에서 보듯이, 가족 성격으로본 한인 이민자들의 비교율 통계에 의하면 한국내의 한인 이혼율보다 미국에서 사는 한인들의 이혼율이 남성의 경우 약 4배, 여성의 경우에는 6배에 이르고 있는 높은 이혼율을 보이고 있다.
[ 표 1 ]
Comparison of Korean Immigrants and Koreans in Korea by Family Characteristics
| Category | Korean Immigrants | Koreans in Korea |
|---|---|---|
| Average family size per household | 3.48 | 4.63 |
| Average number of children per household | 1.88 | – |
| Non-nuclear family members in household | 0.41 | – |
| % of single-person households | 3.6% | 4.8% |
| % of extended families | 16.9% | 23.1% |
| Divorced for 14+ years (per 1,000) – Men | 15.0 | 3.6 |
| Divorced for 14+ years (per 1,000) – Women | 36.8 | 6.2 |
| % of female-headed households (no husband) | 9.6% | 9.7% |
| % of married-couple households | 86.0% | – |
| % of working households | 53.5% (age 16+) | 28.8% (age 14+) |
| % of married women in employment | 56.0% | 18.8% |
| Children born to women aged 35–44 (per 1,000) | 2,097 | 4,036 |
그러면 여기서 진정한 가정 공동체 형성을 방해하며 진정한 인간화를 방해하고 있는 또 하나의 중대한 잘못된 의식이 한인의 개인과 사회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살펴봐야 하겠다. 그것은 우리가 평소에 의식하지 못하고 생활 속에 그리고 무의식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 여성차별의 문제이다.
이민 공동체가 이러한 자신의 정체성 분열로 인해서 가정의 기능이 마비되고 더 나아가서 이민공동체의 분열과 계층의 분화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목표하는 생성 공동체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이민 소수민족 내의 분열 현상과 원인을 살펴 보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본다.
7. 移民 韓人 社會 問題의 現實16
1) 問題提起
1994년도 뉴욕시 한인 밀집지역인 후러싱에 소재한 Korean Family Counseling Center (한인 가정문제 상담소)의 보고에 의하면, 뉴욕 뉴저지를 근거로 미국과 한국과도 연결된 상담경우들: 총 상담 수가 1625건으로, (1) 가정문제 897건의로 55.2%, (육체학대, 정신적학대, 배우자부정, 직계존속 가족과의 불화, 가축, 외박, 위장결혼, 이혼, 재산문제, 성적불만, 가출여인 숙소제공, 기타 가정문제) – 10가지, (2) 자녀문제 335건으로 20.6%, (등교거부, 부모와 자녀 갈등, 교우관계문제, 이성관계문제, 조직범죄연류, 가출, 외박, 성폭행 피해, 강도 도둑 피해, 십대 임신, 미혼임신 및 성관계문제, 기타 자녀문제) – 10가지, (3) 보건문제 217건으로 13.4% (마약 알콜 도박, Aids, 정신질환, 임신 중절 및 부인병) – 4가지, (4) 기타문제 176건으로 10.8% (사회보장특혜 신청보조, 구인 및 구직, 결혼 상담, 기타 보조 요청) – 4 가지, (5) 가정문제는 주로 부부간에 일어나는 일들로, – 배우자의 부정으로 인한 불화가 201건으로 22.4%로 단연 1위이며, – 그 다음이 배우자를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가정불화가 197건으로 22%를 차지하나, – 정신적인 학대의 131건인 14.6%를 합해보면, – 가정내 폭력은 328건으로 36.6%의 단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한인이민자의 제일의 집중 지역인 로스 엘젤레스(L.A.)의 가정폭력 상황을 (1995년 2월27일자 뉴욕한국일보 A7면)도 살펴보면, O.J.심슨 재판과 관련, 가정폭력 문제에 대한 한인사회 안팎의 관심이 날로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한인들의 배우자 폭행사례가 여전히 높게 나타나 우려되고 있다. 남가주 검찰청 집계에 의하면 남가주내 최대 한인 밀집지역인 LA 및 오렌지 카운티의 경우, 16. 1995년 3월 2-3일동안 뉴욕신학교가 주최했던 ‘빛속에 걸어감’이란 주제하에 가정 안에서의 폭력사용에 대한 교회의 대응책을 위해서 있었던 행사에 필자가 신학과 성서부분의 한국어 모임 웤샆을 담당하고 발표했던 필자의 논문의 일부를 발췌하여 싣는다. & 부록 [D-6] 배후자 폭행혐의로 인한 한인체포자수가 한달에 평균 2명 꼴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인종별 분류가 가능한 가장 최근 수치인 93년도 한해를 근거한 것으로 이 기간동안 LA카운티에서만 총 16명, OC에서는 총 7명의 한인이 배우자 폭행혐의로 체포된 것으로 나타났다. LA 한인 가정 상담소의 형성재씨는 “지난 해 가정폭력 행위와 연관되여 법원명령을 받고 상담소 측에 의뢰된 케이스만 70여건에 달하고 있다”며 정식 기소는 되지 않았더라도 예상외로 많은 한인들이 배우자 폭행문제등에 연루되어 경찰서를 드나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형성재씨에 의하면, 지난해 상담소가 접수한 내방 상담건수(반복상담제외) 총 2백58건 가운데 21.4%를 차지하는 61건이 배우자 폭행문제로 분류되었다고 보고하면서 이는 전년도에 비해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이라고 했다. 남가주 검찰청의 집계 결과 배우자 폭행으로 인한 가주 전체의 한인 체포자수는 93년 한해 동안 총 49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인종별로는 히스페닉계 1만9천6백1명, 백인계 1만2백42건의 순으로 밝혀졌다. 검찰청에 의하면 기소사건은 지난 91-93년 사이 연 30%나 증가하고 있으며 지난 93년의 경우, 무기 및 흉기를 사용한 가주내 가정폭력 신고 케이스만 총 17만3천2백60건에 이르고 있다.
가정폭력의 종류로는 (1) 육체적 학대, (2) 정신적 학대, (3) 강간, (4) 구타, (5) 태만 – 소홀함, (6) 굶주림, (7) 불에 태움, (8) 할례 등이 있다.
뉴욕 가정 상담소 보고에 의하면, 자녀들의 문제 335건 중에 (1) 가출 외박이 95건으로 28.4% 로 1위를 자치하고, (2) 성폭행 피해, 십대의 임신, 미혼임신 및 성관계 문제가 16.7%로 2위이고, (3) 교우관계 문제와 이성관계 문제가 13.1%를 3위를 차지하는데, (4) 조직범죄연류가 12.8% 와 등교거부가 11.4%로 4위와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모두 부모의 가정 불화로 자녀들이 부모와의 대화가 끊어진 외로움과 부모의 잘못된 모습을 모방하는데서 오는 결과이라고 본다.
1995년 2월27일자 뉴욕 한국일보 A7면에 실린, 워싱턴 한인 YMCA 보고에 의하면, 워싱턴지역 10대 한인 청소년의 40%가 성 경험을 하고 있고 또한 낙태하는 한인 10대가 급증하고 있다는 심각한 보고이다. 이는 성문란의 정도를 넘어 가정과 사회 문제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워싱턴 한인 YMCA가 밝힌 94년도 한인청소년문제와 실태에 따르면, 헤어팩스 카운티 거주 한인 10대 청소년(15세이상) 중 약 40%가 성경험을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해 10대 임신 및 낙태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이같은 통계는 훼어팩스 카운티의 클리닉, 공립학교 카운셀링과 조사원의 자료, 한인 YMCA의 자체조사 등을 통해 밝혀진 것으로 일반 미국10대 학생들의 성 경험 실태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자녀교육을 최우선시하는 한인부모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이는 타 지역 한인 사회에도 비슷하게 적용 될 것으로 본다. 워싱턴 한인 YMCA의 종준영 총무는 “사회적인 환경에 영향을 받아 10대 청소년들의 성 경험이 높아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으나, 한인사회나 학부모들이 너무 방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YMCA자료에 따르면, 훼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의 경우 한인 중고교학생들의 퇴학율도 급격한 증가를 보이고 있는데, 93년도에는 전체 학생중 되학당한 학생이 0.3%에 불과했으나 94년에는 2%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워신턴 지역의 한인 청소년(18세이상) 중 마약복용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은 30여명에 달하고 있으며, 지난해에 만도 10여명이 마약복용(소지)혐의로 카운셀링(18세 미만)을 받거나 격리치료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 對話 斷絶의 한 表現인 家庭內의 女性虐待
미국내에서는 일년에 여성은 3.5백만명이 학대를 받고, 250,000의 남자가 학대를 받는다고하나, 한국인의 경우는 모든 경우가 여성이 학대를 받는 경우이다.
가정내의 여성학대가 일어나는 상황들은 (1) 장소는 가정의 침실이나 리빙룸, (2) 침실일 경우에는 여성은 많은 경우에 살해 당했다. 대부분이 오갈대 없는 밤에 일어난다. (3) 목욕실에서도 자주 일어나는데 이곳은 무방비 장소이며, 집안에서 유일하게 늘 잠겨있다고 생각되는 곳이다. 즉 도망하는 장소로 자주 사용된다. (4) 신체적 학대는 대부분 저녁 6시 이후부터 자정 사이에 일어난다. (4) 부부가 직업이 없던지 아니면, 일하는 시간이 서로 다른 부부에게서 자주 일어 난다. (5) 저녁 식사시간은 하루종일 불안이 쌓여서 노출되기 쉬운 위험한 자리가 되기 쉽다. 부인은 자녀에 대한 불평과 남편은 직장에 대한 불평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아이들은 소리지르고, 울고 우유를 엎지르는등 혼란을 준다. (6) 싸움은 대부분 부인의 아이들에 대한 과잉보호와 재정에 대한 의견대립이 두번째로 큰 원인이 된다. (7) 주중보다 주말이 위험하다. (8) 휴일인 크리스마스 때나 새해 전 날 저녁등이 특기할 날들이다. (9) 따듯한 여름 동안이 더욱 심하고, (10) 부인이 아기를 가졌을 때, (11) 자주 부부 싸움이 일어나면, 더욱 심화된 싸움이 된다.
3) 虐待者의 性格
그 인격적 요인을 살펴보면: (1) 분노를 다스릴 능력의 부족, (2) 표현 능력 부족, (3) 감정의존 (질투), (3) 자존심의 부족과 자기 주장의 부족 (우울증), (4) 전통적인 남여 성에 대한 생각의 굳은 마음의 지배, (5) 마약과 알콜 중독 등을 들 수가 있다.
4) 彼虐待者의 性格
학대를 받는 여성들의 흔한 태도는 (1) 낮은 자존심, (2) 비 현실적인 희망, (3) 고립, (4) 감정적 그리고 경제적 의존성, (5) 결혼에 대한 강한 전통적인 관념등을 들 수가 있겠다.
5) 家庭 暴力의 段階
제 1 단계로는 상기의 여러가지 상황에 의해서 긴장 고조된다. 주로 자녀문제와 경제적인 이유가 감정을 가장 예민하게 만든자. 일종의 촉진제가 된다. 제 2 단계는 예민한 폭력의 사건이 작게 시작해서 결국에는 그 빈도수와 그 냉의 정도가 증가해 간다. 제 3 단계는 언제나 폭력자가 사과를 하고 다시는 않하겠다고 약속하며, ‘사랑한다고 말을 한다.’ 이러한 후회의 단계는 본인이 후회하기 보다는 상대를 붙들어 놓는 방편으로 쓰는 도구일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1 단계로 접어든다. 그 빈도수가 잦아 질 수록 그 정도도 비례해 간다.
한인공동체 내에 이제껏 방치되여 왔던 가정내의 폭력의 문제는 이제는 한인사회문제로 대두되어야 하고 일반적인 오해나 통념도 시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폭력은 가정내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매 맞는 여성들을 우리들의 통념으로는 피학성으로 보아 그들이 학대 받기를 즐기며 학대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이 문제는 근절하기가 어렵다거나 여성들이 공격을 충돌질 함으로서 발생하는 것이니 만큼 언어적 공격을 중지하면 없어질 것이라는 사회적 신화는 앞으로는 사라져야만 한다. 폭력자는 어떤 근본적인 면에서는 상실자일 것이다. 주로 남편에 의해서 발생하는 가정내 폭력은 가부장적 제도와 사상 및 관습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결국 전 한인 공동체의 문화적 이해가 이 문제성을 심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폭력으로 인한 자녀의 갈등과 가출 그리고 발생하는 각종 모방 범죄들은 한 가정의 파괴로 발생하는 인간성의 말살과 공동체 및 국가적 손실은 이제 더 이상 가정의 폭력을 남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결혼은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만남이 아닌 것이다.
구타하는 남편의 사회 적응도를 살펴보면 대인관계나 직장에 어려움을 느끼고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더우기 창의력은 결핍되어서 별로 자신과 사회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가정 내에서 남편의 아내 구타가 계속되어 왔으나 한인 이민사회적인 문제로는 소홀히 여겨왔다. 아내 구타는 사회적인 폭력과는 대조적으로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현상 내지는 가정에서 하나의 도구나 방편으로 쓰여지는 것으로 당연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형편이다.
가정에서의 폭력은 곧 사회의 폭력을 만든다. 결코 가정에서의 폭력을 너그럽게 그대로 묵과해서는 않된다. 개인의 문제로 삼기 보다는 사회적인 인권보호 차원에서 대책이 있어야하고, 부인을 한 인격적인 동반자로서 존중하는 의식구조가 요청된다.
[Notes]
1. Greeley, A.M., Why Can’t They Be Like Us? (New York: Institute of Human Relations Press, 1969.
2. Levine, Irving, Personal Communication, (Monterry, Calif.: Brooks/Cole, 1981.
3. Erickson, E.H., Childhood and Society, (New York: Norton, 1950)
4. Ibid., p. 412.
5. Klein, J., Jewish Identity and Self-Esteem: Healing Wounds through Ethnotheraphy. (New York: Intitute on Puluralism and Group Identity, 1980)
6. Cobbs, P., Enthnotheraphy in Groups. In L. Soloman & B. Berzon (Eds.), News Perspectives in Encounter Groups. (San Francisco: Jossey-Bass, 1972)
7. Zseng, W.S. & McDermott, J.F., Culture, Mind and Theraphy: An Introduction to Cultural Psychiatry, (New York: Brunner/Mazel, 1981)
8. Zola, I.K., The Concept of Trouble and Sources of Medical Assistance. Social Science and Medicine, 6, 1972, p. 673-679.
9. Kleinman, A.M., Eisenberg, L., & Good, B. Culture, Illness, and Care: Clinical Lessons from anthropologic and Cross-Cultural Research. Annals of Interals Medicine, 88, 1978. p. 251–258.
10. Zola, I.K., Cultire and Symtoms: An Analysis of Patients’ Presenting Complains.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5, 1966, p. 141-155.
11. Zborowski, P., People in Pain (San Francisco: Jossey-Bass, 1969)
12. Zola, I.K., Culture and Symptoms: An Analysis of Patients’ Presenting Complains.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5, 1966.
13. Park, R. E., Race and Culture, New York: Free Press, 1950.
14. McGoldrick, Monica, John K. Pearce, Joseph Giordano, edited by., Ethnicity and Family Therapy, New York: The Guilford Press, 1982, p. 218.
15. Source: Data on Korean immigrants is based on U.S. Bureau of the Census (1984). Data on Koreans in Korea are based on Korean National Bureau of Statistics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