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가수 마돈나가 첫 딸인 루디아에 대한 모성애가 화제가 되어 신문에 대서특필이 된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여느 어머니들이야 제 자식 사랑하는 것을 당연지사로 알고 신문에까지 화재가 될 것까지 없습니다. 그러나 마돈나의 평소의 문란했던 사생활과 윤리와 도덕을 가차없이 파괴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과연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어찌 감당 할 수 있을까 하고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돈나는 오히려 세상사람들의 염려가 기후였음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딸에게 온갖 정성과 사랑을 쏟으며 여성으로서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녀는 딸에게 거의 T.V를 틀어주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행여나 아이에게 세상의 온갖 범죄와 폭력, 무분별한 것들이 어린 심령에 들어오지 안토록 온갖 노력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방종한 모습이 담긴 비디오 등은 절대 보여줄 계획이 없다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세상 모든 어머니들이 갖고있는 모성애의 본능인 것입니다. 비록 나의 과거는 어찌되었든지 간에 자식에게만은 세상의 악한 것들로부터 구별되기를 원하고, 착하고 선한 삶을 살도록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며, 특히 우리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입니다.
저는 가끔 저희 이웃에 있는 세탁소에 옷을 맡기러 들리게 됩니다. 그곳에는 중년의 부부가 일을 참으로 열심히 하시고 있습니다. 한국 분들이라 아무래도 옷만 맡기는 것이 아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그 분의 어려운 이야기들과 기도제목들도 함께 나눌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오랜만에 들리게 되면 너무나 반가운 얼굴로 기다렸노라며 맞아 줍니다. 그리고는 그 가정의 자녀문제를 나누다보면, 이 분이 감당치 못해서 이야기 중에 눈물을 흘리며 마음 아파하는 것을 늘 보곤 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세탁소의 카운터에 서서 함께 기도도 합니다.
그 분들은 한국에서 교편생활을 하신 분들이었는데, 큰 자녀가 이민 온 후에 영 자리를 잡지를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대학교도 다니다가 중퇴해버리고 계속 한국을 들락거리며 그곳에서의 삶을 너무나 그리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실수도 하여, 빚도 수없이 지는 등 참으로 부모님의 아픔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너무나 속상하시니까 계속 몸이 안 좋아지고, 하루종일 땀흘려 일하는데도 도대체 삶에 대한 소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부부간에도 그 자녀 때문에 늘 불화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어려운 고비를 넘기는 동안, 부인은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자식을 위해 눈물로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하루종일 일하면서도 오로지 아들의 안녕과 미래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아들을 누구보다도 신뢰하며 믿어주었습니다. 때로는 남편 몰래 돈도 보내야 되었고, 한국의 친척들에게 빌려 썼다는 빚도 갚아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아들에게 국제전화를 통해 신앙지도를 했습니다. 그녀는 늘 아들에게 눈물로 호소하며 ‘하나님을 찾아라! 그 분이 너를 도와주실 것이다’ 며 간곡히 권면 하였습니다.
그 아들은 수 많은 실패와 어려움 중에도 어머니의 눈물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에 감동되어 믿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또한 아주 지혜롭고 총명한 아가씨를 만나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자기사업도 자리가 잡힌 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여간 기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처럼, 어머니들의 자식에 대한 끈질긴 사랑은 참으로 위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의 눈과 귀는 언제나 자식을 향해 열려있습니다. 어린것을 침대에 뉘이고 잠시 잠이 들었다가도 ‘으앙’하고 우는소리가 나면 반사적으로 어느새 아기 곁에 가있게 됩니다.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사랑은, 자식이 아무리 성장하여도 쉬지 않습니다. 자신의 몸이 연약해져 가고 힘이 없을지라도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을지라도 그 육신과 영혼의 눈과 귀는 언제나 그렇게 활짝 열려있습니다. 비록 자식은 미래에 대한 절망 속에 붙들려 있을망정,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꿈과 소망의 날개는 잠시도 접지 않은 채 목숨 다해 창공을 차고 오르십니다.
저에게도 두 분의 살아 계신 어머님이 계십니다. 한 분은 82세의 시어머님이시고, 한 분은 올해 77세 되신 친정어머니입니다. 이 두 분들은 저희 삶에 기도의 대들보가 되어 힘있게 바쳐주고 계신 분들입니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늘 새벽제단을 쌓으시면서 자식들과 교회,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들입니다.
저희 시어머님이 80세 되던 해에 금식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동생 내외가 믿음생활을 등한시 하자, 며칠을 금식을 하시며 하나님께 부르짖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초에 온 가족이 모였을 때, 시동생 가족들로부터 세배를 받으신 후에, 두 내외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난 이번에 너희 가족들이 믿음생활을 제대로 하게 해 달고 하나님께 금식 기도했단다. 오늘이라도 하나님이 날 부르면 가야된단다. 이제는 힘이 없어 더 이상 금식으로 육신이 매달릴 수 없을 것 같구나. 내 살아생전에 온 가족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거라” 하시면서 굽어진 허리를 추수 리며 눈물을 닦으셨습니다. 저희 온 가족들의 마음이 숙연해 졌습니다. 저희들의 백마디 권유와 설교보다도 강하고 함축된, 참으로 비장한 한마디셨습니다.
그 후 시동생 내외는 믿음생활로 모두 돌아왔다는 소식입니다.
어머님의 소원은 자식들이 물질적으로 잘사는 것이 아니고, 믿음생활 잘하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십니다. 저희가 시부모님 댁에 들려서 함께 무릎꿇고 기도하고 나면, 그토록 좋아하시며 대견한 눈빛으로 눈물지으십니다.
또한 저는 때때로, 젊은 제가 기대기엔 너무나 연약하신, 저의 친정 어머니께 그토록 몸과 마음을 기대고 살고있는 것을 발견하곤 깜짝 놀랍니다. 마음이 연약해지고, 심한 상처로 몸부림치는 날에는 “엄마”하고 부르기만 하여도 벌써 마음에 위로가 되고 평정을 찾게됩니다.
저희 어머니는 전화통을 향해 전해지는 “엄마”라고 부르는 그 한마디에 벌써 저의 모든 근황을 알아차리십니다. 그리고 “너 너무 몸을 무리했구나! 쉬어야 한다. 기도해라. 사람은 몰라줘도 하나님은 아신다. 미워해선 안되다!” 하시며, 마치도 제 영혼의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순간 순간 권면 하십니다. 때로는 어려운 일이 있지만, 어머니에게 알려드리고 싶지 않아 연락을 하지 않으면, 어머니는 틀림없이 전화를 주십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너 아무 일도 없니? 어젯밤 꿈에 보니…” 하시면서 말씀을 꺼내시면 틀림없이 저의 어려운 일, 혹은 기쁜 일에 어느새 동참하고 계심을 발견케 됩니다.
이제는 어머니를 제가 돌보아야 되건만, 어머니가 아직도 저를 살피고 돌보고 있는 형편입니다. 어쩌다가 저희 집에 오시면, 집 안팎을 다니시면서 구석구석 살피시며 잠시도 쉬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집안의 물건 하나 하나까지도 윤기가 나며 달라지는 것을 봅니다. 정원의 나무나 꽃들조차도 어머니의 손길에 고마워 하며 활기를 찾습니다. 냉장고 안에서 수개월을 낮잠 자고 있던 냉동음식들이나, 시든 야채들이 어머니의 손길 안에서 멋진 요리로 변하여 상을 가득 채웁니다. 뚫어진 양말들과 찢겨지거나 실밥이 터진 옷들조차도 어머니 손에서 다시 치유받고 생명을 얻어 새롭게 쓰여집니다. 어머니의 생산의 축복은 자식에게 뿐 만이 아닌, 온갖 사물을 통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40세에 혼자되시어 6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11살의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40세 된 어머니는 무엇이든지 잘 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40중반이 넘고 보니 어머니의 당시의 심정이 얼마나 막막했을까 하고 이제야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그 망막한 터널과 같은 인생여정을 늘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시면서 걸어 나오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어머니와 함께 살고있진 않아도 어머니의 그 기도소리는 어디서나 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어디를 가든지 어머님이 잡고있는 그 사랑의 끈이 늘 저를 붙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아이는 문고리가 없는 문과 같다”라는 유대격언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따듯한 가슴의 정서를 먹고 자란 아이들은, 미래의 문고리를 잡고 세상 밖으로 힘차게 나갑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힘입어 저들의 사상이 건전해지고 창조적인 삶이 균형 있게 펼쳐집니다.
우리에게 살아 계신 어머니가 있다는 것은 삶의 가장 큰 소유를 갖고 있음과 같습니다. 또한 어머니를 먼저 보내신 분들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이 있고, “어머니”하고 부를 수 있음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요. 그리고 육신의 어머니는 가까이 있지 않아도, 우리의 이웃에 어머니들이 계시어 생전에 못 다한 우리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전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세상의 어머니의 마음은 모두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어머니날을 맞이하고 또한 보내면서, 제 자신이 어머니로서 여성으로서 참으로 부족하구나 하는 마음의 자책을 갖고있습니다. 저의 자녀들에게 육체의 생명은 관리하고 있지만, 저들의 영혼을 진정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확신을 순간 순간 삶을 통해 전하고 있는가? 분별력 있는 모성애 속에 얼마나 자녀들을 위해 애통하며 영혼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하나님이 나에게 한국인의 혈통을 이은 어머니로서, 주신 모국어와 풍습을 자녀들에게 얼마나 힘써 가르치며 전수하고 있는가? 라는 것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든 여성들에게 값없이 주신 모성애는 하나님의 사랑에 가장 가까운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어머니를 통해 자신의 본질을 보여주시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어머니를 보내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어머니 품을 통해 모두 안아 주셨습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꺼지지 않는 영원불변의 사랑을, 어머니의 가슴에 사랑의 불꽃으로 지펴주시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희생 양으로 오신 예수 님의 그 희생과 사랑을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영혼에 부으셨습니다. 우리의 보혜사 성령께서는 어머니의 심령에 양털과 같은 위로의 영을 주사, 당신의 자녀들을 교훈케 하셨습니다.
팜가수인 마돈나가 딸을 통해, 비로소 여성의 본질인 모성애가 움터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이 거칠게 살아온 사람에게도 자식을 통해 눈물의 샘이 터져 나오고, 사랑의 녹슨 문이 열려지고, 순결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것, 어머니들에게만 갖춰지는 이 사랑의 신비가 이 계절에 더욱더 새롭습니다.
— 윤 완희, 5/5/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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