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가위를 소개합니다

<창이 열린 숲 속에서> Live at 1480 AM Radio Korea, KCBN on 1/2/1998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 모두가 어떻게 해야 밝고 건강하며 진취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를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영혼과 육신의 건강한 삶이란 우리 모두의 소원입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으로부터 건강하게 만들어져 있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올수록 가정과 사회는 더욱더 복잡해져 가고, 온갖 질병으로 시달리는 현대인들을 위해 수백 종의 건강식품과 약, 운동 법 등이 나와있지요. 그러나, 이시간, 영혼과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 “용서의 가위”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찬양을 듣겠습니다. –

저는 어느 날, 아침 일찍 구두 수선하는 곳에 바로 전날 수리를 맡기었던 가방을 찾으로 갔습니다. 다음날 아무때나 와도 좋다는 주인 되시는 남자 분의 말씀에 아침 일찍 갔더니만, 아직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아마도 그분은 제가 그토록 일찍 가방을 찾으러 오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도 기분 좋게 들어서며, 팁이라도 좀 더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싹 사라지고, 뭐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이 있나? 이 분은 장사를 하면서 신용을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거기까지 달려간 일이 자꾸 아까워 견딜 수 가 없었습니다. ‘한 시간 후에 오라’는 그 분의 말을 귓전에 흘리며 돌아서 오는데, 갑자기 머리까지 아파 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기분이 풀리지 않아 투덜거렸더니, 남편이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당신같이 세상을 살다보면 병나요. 사람들이 다 자신은 실수를 안하고 사는 것 같은 착각 때문에 서로를 용서 못하고 사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괜히 기분이 나쁘고 머리까지 아픈 사실이 민망해져 왔습니다. 그리고, 문득 어느 두 남자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어느 절친한 남자 두 분이 함께 여행을 하게되었습니다. 두 사람 다 인생이라는 가방을 등에 매고 길을 가게되는데, 갑자기 상처를 받거나 아픔이 생기면, 등에 짊어진 가방의 한쪽 주머니에 집어넣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가다보니 한사람의 상처주머니는 점점 커져서 걷기조차도 힘들게 되었는데, 한 사람은 여전히 가방의 주머니가 빈 채 가볍고 홀가분하게 걷는 것이었습니다. 상처로 인해 걷기조차 힘든 남자가 물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당신은 인생 길에서 한번도 상처를 받지 않으셨습니까?” “천만예요. 저도 수없이 상처를 받아 저의 가방은 커질 대로 커져 도저히 걸을 수 가 없었지요. 그래서, 친구의 도움을 청해보았지요” “친구요? 아무도 각자의 상처를 대신 짊어질 사람이 없을텐대요?” “맞아요. 그러나, 그 친구가 말하길 용서의 가위로 제 무거운 가방 밑을 자르면, 모든 상처의 짐들이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알려주었어요.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그 날 용서의 가위로 가방 밑을 자르기로 결단했지요. 그날 이후엔, 어떤 종류의 아무리 큰 상처를 가방에 집어넣어도 빠져나가 버리니, 더 이상 그 무거운 짐들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었거든요!”

우리는 세상에 살아가면서, 자의에 의해서나 또는 타의에 의해 많은 상처를 받고 살아갑니다. 그 상처는 일상생활에 분노가 되기도 하고, 남으로부터 오는 오해와 비판일 수 있습니다. 또는 기대치 않았던 실망과 실의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분노와 미움의 감정들은 영혼과 육신을 병들게 하고 인간관계를 끊어버리는 대단한 파괴력이 있기에, 이것들을 오래 간직하고 있는 것은 마치도 독을 마시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우리는 이 상처들을 힘겹게 걸머진 채, 인생주머니 속에 차곡차곡 구겨 넣고 살지요. 분명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보석 마냥 간직하고 살아간답니다. 아내의 말 한마디, 남편의 말 한마디, 시어머니의 말씀 한마디, 이웃의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를 받게되면, 곧잘 잊지않게되지요. 오히려 그 말 한마디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자신을 볼 때도 있지요. 우리말에 한이 맺혔다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한맺힌 역사, 한맺힌 원한, 한맺힌 과거 등 등… 사람이 과거의 무언가에 맺혀 산다는 것은 그 삶 자체가 건강 할 수가 없겠지요.

불완전한 우리는 흔히 상처를 받는 것만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남에게 주는 상처 또한 이루 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주는 상처, 성숙하지 않은 인품과 급함에서 오는 말의 실수, 남의 말을 쉽게 흘려보내고 내 말만을 주장함에서 오는 상처들, 기대에 부응해 주지 못하는 상처들… 하루의 길을 가다보면, 남으로부터 오는 상처보다도 내가 남에게 주는 상처들이 더 많음을 고백케 됩니다. 그래서, 남을 용서하는 태도란 내 자신이 누군가를 이미 알고있어, 남의 잘못도 쉽게 용납해 줄 수 있는 성숙된 자기 표현이겠지요.

저는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며, 흘려보내지 못하는 자신의 힘겨운 모습을, 어느 날 구두 수선 방에서 문득 발견하고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향해 이 젠 제발 용서의 가위로 모두 잘라내 버려 달라고 조용히 간구하였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6장 14-15절)

이 말씀은 오늘도 최고의 삶의 컨디션을 보장해주는 주님의 말씀이기에 함께 나누어 보았습니다. 한 주간 사시면서 상처를 주고 받고 사는 일들이 없으리라고는 아무도 보장을 못합니다. 그러나, 이 용서의 가위를 아끼지 마시고 마음껏 사용하시면서, 홀가분한 우리의 삶이 되시길 원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 윤 완희, 4/12/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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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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