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와 타종교인과의 갈등

얼마전 신문을 읽다가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충격을 받은 뉴스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신문의 기사는 교회에 다니는 어느 분이 “절을 교회로 바꾸기 위해 불상을 파괴했다”는 제하에, 제주도의 원명선원의 화강암 불상 750상의 머리를 잘라낸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분 나름대로의 신앙에 의해서 행동했다고 하겠지만, 이것은 신앙이전에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기본적인 예의를 망각한 일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를 접해보지 못한 불자들이나 타종교인들이 그러한 기독교인들의 행동을 보고, 주님을 영접할 기회가 왔을 때, 과연 어떤 태도를 갖을까요?

몇 년전에 한국의 무형 문화재 13호인 강릉 단오제 행사가 강릉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단오제의 중요한 행사인 남대천의 굿당에서 무당들이 500여명의 관객들과 한창 굿하고 있는 판에, 강릉지역의 기독교 신자들이 뛰어들어 “사단아 물러가라!”하면서 굿판을 뒤집었다고 합니다. 물론 거기에는 과격한 신자들이 주동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무당들이 교회로 찾아와 방해를 하거나 앙갚음을 하지 않아서 조용히 끝은 났다고 합니다.

저는 그런 기사를 대할 때, 우리의 전도나 선교가 이렇게 과격한 모습을 갖추고 단시간 안에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였다던가, “절에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 소불들의 머리를 ‘댕강댕강’ 잘라내야 만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이 기독교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점들이지만, 우리 속에도 행여나 타종교인들 앞이나, 타문화 앞에 우월감을 갖고있지나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저 자신도 오랫동안 믿음의 가족들 안에서 만 살다보니, 오랫동안 사회적인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끔 참석하여야 만 될 때가 되면, 그 자리가 견딜 수 없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경험을 하게됩니다. 어떤 중요한 행사에도 예배나 기도 없이 사람들이 나와서 서로 상을 주고받고 하는 모습이 무척 공허해 보이고 싱거웁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집에 와서는 다시는 그 재미없는 자리에 가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과 함께, 믿지 않는 사람들을 외면해 버리려는 성향을 갖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제 양심이 외치지요. ‘네가 죄인 되었을 때 주께서 찾아주지 않았더냐’라고요. 제 속에도 상대방이 나와 같아주기를 바라고, 같지 않으면 배격하고 마음 문을 열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는 것, 그것은 남을 나보다 높게 여기고 존경하며,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함으로서 종의 모습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임을 우리 모두는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와 무언가 같지 않을 때 마음 문을 닫아버리고,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행동을 함으로서, 형제 자매를 영원히 실족시키는 일을 행할 때가 있습니다. 삶을 통한 설득력을 같기보다는 감정적인 무례함으로 전도를 시도하려 할 때, 이익보다는 손해가 더 많음을 돌아봐야 될 것입니다. 특히, 타종교인들을 만나거나, 또는 결혼을 통해 신앙이 같지 않았을 때 기독교인들의 태도는 과연 어떻게 해야 좋을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가정에 예수님을 누군가 믿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부딪치는 문제가 한국의 전통문화와 기독교의 정면대치에서 우리는 혼동을 하게됩니다. 그 중에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행위로 인해 많은 갈등을 겪게되는데, 초기 한국의 기독교인들 사이엔 요즈음보다도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20년대에 박성녀라는 효부의 자결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인이 된 남편 권성화씨가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조석상식을 못하게 하고 제사를 드리지도 않고, 신주를 없앰에서 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유교적 가치관과 가문의 법도를 목숨으로 지켰던 것이지요. 그 때 동아일보 논설에 월남 이상재 선생님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부모의 신주를 가지고 한 말로 ‘우상’이라 부르며 부모의 혼령 앞에 절하는 것을 경솔히 ‘우상숭배’라는 이름 아래 매도하는 것이 어찌 반드시 옳겠다 할 수 있으리? …원래 조선 사람이 돌아간 부모의 영혼을 위하고 삼년 안에 조석상식과 혹은 평생을 두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오직 그 부모를 사모하는 효성에서이다. 이는 예수교와 아무 상관이 없으며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신 하나님의 가르침에 크게 적합하는 일일 것이다” (1920년 9월 1일)

이에 반박한 양주삼씨의 글이 며칠 후에 또 실렸습니다.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이 조선정신과 조선 혼을 보존한다 하면 그는 큰 오해이다. 도덕관념이 유치 할 때 쓰던 일종의 미신적 풍속이요 의식적 도덕에 불과하다.” (1920년 9월 4일) 이렇게 기독교인들 안에서도 이 문제는 갈라지고 지금까지도 어느 가정에서는 해결치 못한 문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믿음이 좋은 자매 님께서 연애를 하여 믿지 않는 장손가정에 출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유교를 철저하게 믿는 분이었습니다. 결혼 전에 두 집안이 서로의 양해 속에 결혼은 했지만, 막상 신부가 조상을 모실 제삿날이 오니 참으로 망막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새벽 2시면 정한수를 떠놓고 손을 모은 채, 장독대에 앉아 조상 님께 빌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분이었습니다. 자매 님은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나 제사상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찬송가를 콧노래로 불러가면서 부지런히 집안을 쓸고 닦고 음식장만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께 모든 지도를 받아가면서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상을 차려드렸습니다. 일가친척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자매 님은 그 분들을 정성껏 맞아들이며 진심으로 환영하였습니다. 막상 예식이 시작되려 할 때,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아가! 고맙다. 예수 믿는 네가 이렇게 정성껏 조상 님들께 음식을 해드렸으니, 조상 님들이 얼마나 기뻐하겠니? 우리 조상 님들께 예의 드리는 동안 너는 잠시밖에 있으려무나. 그리고, 우리 다 끝나면 음식은 같이 먹어주겠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제사상에 올려진 음식들을 먹지 않는다는데, 아가야 그래도 함께 먹자!” 시어머니의 조심스런 권면에 며느리는 명랑하고 공손하게 “예”하고 대답했습니다.

예수 믿는 며느리가 차려준 제사상을 일가친척들에게 자랑하며, 시어머니는 며느리 자랑을 쉬임없이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조상도 모르는 무뢰한 존재로 여기던 안 믿는 친척들도, 이 자매 님이 만들어 주신 음식을 아주 맛있게 들면서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도 있구나!”하는 생각 속에 그들의 마음 문이 열림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후 해마다 그 가정에서는 제삿날이 와도 서로를 반목하거나 배타적인 마찰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시 부모님과 며느리의 사이는 더욱 더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수년 후에 자매 님 친정가족에게 초상이 났습니다. 시어머니가 처음으로 기독교인의 장례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에고 데고!” 통곡이 들릴 줄 알았는데, 모두가 모여와서 찬송을 부르며 거룩하게 고별예배를 드리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장례라고 해도 술도 마시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위로하고 도와주고 하나님 말씀으로 권면 하는 것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시어머니는 “나도 죽으면 이렇게 예배를 드려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향에 내려간 시어머니는 그 길로 교회에 찾아가 “우리 며느리가 믿는 예수, 나도 믿겠노라”며 결단하였습니다. 집안에 있던 모든 위패와 신주도 치워버리고 하루도 새벽예배에 빠짐없이 다니는 진실한 기독교인이 되어, 그 많은 친척들을 다 전도하였다고 합니다. 비록 시간은 걸렸지만 사랑과 화해 가운데 대 가족을 구원시켰습니다.

요즈음에도 많은 분들이 한국의 전통문화와 타종교, 기독교를 어떻게 조화해야 좋을 지 갈팡질팡 할 때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안 믿는 일가친척이 제사를 드린다고 오라 하는데, 가야될지 말아야 될지, 우상에게 드릴 음식을 해 가야되는지. 등등. 저는 신학자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있는 우리만의 전통과 문화는 하나님이 우리 한민족에게 만 주신 귀한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 포로이후에 전세계로 민족이 흩어져 나갔어도, 문화와 전통과 종교를 어딜 가든지 오늘날까지 지켰고 이어왔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어딜 가나 풍요한 삶을 누리고 살고있습니다. 믿지 않는 친척들이 모였을 때, 오히려 음식도 더 풍부하고 맛있게 준비하여 가고, 그들과의 사랑과 화합을 우선적으로 여기며 마음의 문을 열 때, 어느 날엔가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에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 속에 있는 성급함은 영혼을 구하는 일에도 빨리 빨리 하려는 성향이 있지요.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와 복음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려고 하기보다는, 내 말과 내 이해 안에서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진 안는지요.

인도의 마하마트 간디는 민중과 함께 고난받은 지도자로 살았던 분 이였습니다. 그는 어떤 폭력 앞에서도 무저항주의로 살아갔으며, 변호사로서의 화려한 삶을 살 수 있었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빈자로 살다간 분이었습니다. 그의 생애를 보면 너무나 예수님과 닮은 생활을 했습니다. 그 자신도 예수님의 말씀에 감화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할 뻔 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인이 결국 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의 종교에 대한 독선적인 태도에 그만 그는 예수님을 알 기회를 영원히 차단 당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구원받아 기독교인이 된 것은 참으로 자랑스럽고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타 종교인들을 아무 때나 함부로 공격하거나 지배하려는 특권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되겠지요? 기독교인들은 종교인이기 전에 먼저 상식이 통하고 서로에게 예의가 있고 상대방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아량이 있을 때, 하나님 안에서의 다양성의 하모니를 이루며 살아가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남을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준다라는 것은, 남으로부터 우리도 인정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이들에게 마음을 여셨습니다. 로마병정과 창녀, 세리와 병자, 하물며 이방인들에게 까지도 대화하며, 저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우리의 이웃에 살고있는 타민족들과 타 종교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알게하는 것은 지배나 폭력이 아닌, 사랑과 섬김, 화해와 평화 속에 있음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 윤 완희, 9/20/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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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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