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민들과 세계이주

요즈음 한국의 경제적 사정이 악화되는 가운데, 많은 분들이 캐나다와 미국으로 경제피난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뉴스입니다. 어느 분은 캐나다와 남미를 통해 열악한 환경 속에 생사를 건채, 미국으로 들어오셨다는 분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고향과 나라를 떠나, 타국으로 정처없는 피난생활을 해야 만 하는 일이란, 한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참으로 충격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오직 한국인들에게 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에게와 현재 뿐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이런 일들은 일어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와 고향을 떠나야 만 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이민일세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하여 고향을 떠나왔거나, 경제적으로 잘 살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기에 피난은 될 수 없지요. 그러나 지금 세계의 50억의 인구 중에 1억이라는 숫자의 사람들은 배고품과 전쟁, 정치적 압박, 신앙, 자연재해, 내분,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그 삶의 뿌리를 몽땅 빼앗긴 채, 세계를 떠돌고 있는 실정입니다. 즉 50명 중에 한명이 그런 피난의 이유 중에 처해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피난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세계 교회연합회가 정한 “피난민과 연합하는 해”로 정했기 때문에 오늘은 “피난민과 세계이주”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피난민 하면, 우리는 6.25의 참혹한 전쟁을 기억할 것입니다. 생존의 기본범위인 집과 논밭을 버리고 고향을 등지며, 떠나야 만 했던 처절한 상황은 인간으로서의 가장 극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세대에 와서는 또한 “피난민”하면 생존의 마지막 방법으로 조국을 떠나야만 하는 국제고아들을 두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성서의 주제를 보면, 피난민의 삶의 이야기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만큼, 떠도는 이스라엘 민족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에덴으로 부터의 피난 당한 아담과 이브, 자연재해로부터 피난한 노아의 이야기, 아브라함과 사라, 모세, 릇, 요셉의 이민, 예언자들의 도망이야기, 아기 예수님의 이집트로의 피난등…. 이 있습니다.

요즈음엔 지구의 온난화로 인해 허라케인이 곳곳에 시도때도 없이 불어닥쳐 갑자기 피난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얼마전, 중미 지역을 핡코간 미치라는 이름의 허라케인으로 인해, 중미 지역의 나라전체가 70%-80% 이상이 쓸려내려가는 대단한 큰 피해를 갖고있습니다. 이 기후의 변동으로 인한 자연재해는 갈수록 심해져갈 전망이라고 합니다. 또한 제 3세계 국가에서는 인구증가, 경제악화, 자연피폐 현상들로 가난은 폭은 더욱 깊어지고 사회긴장이 고조되며, 피난민의 상황은 계속 악ㅎ화될 전망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안전하게 잘 살고 있는데 세계에 떠돌아다니고 있는 피난민들에게 왜 관심을 두고 그들을 도와야 할까요? 돌이켜보면 인간의 역사 속에는 언제 어느때 다가올지 모르는 여러 가지 재해들로부터 피난하며 사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그러나 요즈음의 피난민의 규모가 대규모라는 것이 어느 과거의 역사보다도 심각하게 문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럴 때 우리 기독교인들로부터 어떤 것을 원하고 계실까요?

교회역사를 보면, 세계 연합기구인 유엔이 생기기 전부터 이방인들은 교회안에서 보호를 받았으며, 영접하였습니다. 구약의 레위기 19:33-34절에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레위기 10:19절에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 이니라”

우리도 과거에 6.25전쟁을 거쳤고, 나그네의 삶을 이미 살아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더욱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요근래의 피난민들은 대개 본국의 정치적인 내분전쟁의 피해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정부는 국민 모두를 위한 정치를 하지않고, 소수의 특수층을 위한 정치를 하기 때문에 자국내에서 분쟁을 유발시키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보니, 정부의 비민주적인 정책에 대항하여 싸우게 되며 게릴라 전을 펴게되고, 많은 나라의 경우 외국의 원조를 받아 반정부 전쟁을 지속케 됩니다.

— 윤완희, 12/10/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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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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