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날”

돌무덤의 돌이 굴려진 지
오십 일이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문들은 아직 잠겨 있었고,
거리에는 여전히
군화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예루살렘은
수많은 언어로 떨리고 있었다—

세상 모든 방향에서
강물처럼 밀려오는 순례자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는
망명을 뼛속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검문소를 아는 사람들.
점령을 아는 사람들.
역사가 어떻게
한 조국을 세대에 걸쳐
상처 입히는지 아는 사람들.

작은 한 방 안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부들.
과부들.
잠 못 이루는 눈의 여인들.
두려움과 장례 향품의 냄새를
아직도 몸에 지닌 젊은이들.

그때 갑자기—

한 소리가 들려왔다.

제국으로부터가 아니었다.
탱크나 전투기로부터도 아니었다.
정복한 언덕 위에 세워진
궁전들로부터도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문들을 지나
밀려오는 거센 바람 같았다.

집은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 자체가
가난한 자들을 기억해낸 것처럼.

그리고 불이 나타났다—

도시들 위에 쏟아지는 불이 아니라,
아이들을 삼키는 불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마 위에
부드럽게 머무는 불이었다.

두려워하는 사람들 위에
혀처럼 갈라진 불꽃.

그리고 침묵당했던 이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한 언어만이 아니라,
수많은 언어로.

아랍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아람어.

난민들의 언어.
슬픔에 잠긴 어머니들의 언어.
오랫동안 조국을 빼앗긴 이들의 언어.

각 사람은
자기 어머니의 말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들었다.

아—

어쩌면 오순절은
결코 권력에 관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해방에 관한 것이었다.

민족들 사이의 오래된 벽들을 허무는 것.

잊혀진 자들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것.

어떤 나라도
다른 민족의 인간됨을 부정하면서
영원히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인류에게 가르치는 것.

성령은
안전한 자들에게만 내려오지 않는다.

쫓겨난 자들 위에.
점령당한 자들 위에.
이제는 사라진 집들의 열쇠를
아직도 품고 있는 자들 위에
내려오신다.

그리고 어쩌면
팔레스타인에도
새로운 날이 올 것이다—

복수를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민족의 굴욕을 통해서가 아니라,
피의 강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의와 상호 인정이라는
고통스러운 탄생을 통하여.

아이들이 머리 위 드론의 공포 없이
잠들 수 있는 주권의 땅.

올리브 나무들이
다시 오래 늙어갈 수 있는 곳.

기억이 더 이상
지하에 숨어 있지 않아도 되는 곳.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마침내 서로를
적이 아니라,

하나의 연약한 지구를 함께 살아가는
상처 입은 인간 존재로 바라보는
거룩한 어려움을 배워가는 곳.

오순절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모든 고통의 언어로 말씀하신다는 것을.

그리고 교회는
제국을 축복하도록 부름받은 것이 아니다.

상처 입은 자들과 함께 숨 쉬고,
억압받는 자들 곁을 걸으며,
어두워진 역사 속에서
희망의 불꽃이 되도록
부름받은 것이다.

어쩌면 가장 위대한 기적은
불의 혀가 아니었다—

인간이 다시
서로의 말을 듣게 된 것이었다.

부활 후 오십 일이 지나,
두려움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바람이 들어왔다.

그 바람은 지금도 들어오고 있다—

국경을 넘어,
벽을 넘어,
슬픔의 역사들을 넘어—

새로운 날을 찾아서.

— 윤태헌, 2026년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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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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