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할 이유가 없다

선거 철이 다가오면 한인사회의 몇몇 단체에서는 “유권자 등록하라” “투표하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신문마다, 방송마다 한 두 번도 아니고 때로는 민망스럽고 거북살스럽기까지 합니다. 우리 애들이 한국신문을 읽지 않아서 그렇지, 만약에 뉴욕 타임 지를 들여다보듯이, 교포신문들을 읽는다면 이들의 반응은 어떠할까요?

과연 우리 기독교인들은 투표에 참여할 이유가 있을까요?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분들은 분명 투표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참여치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90세된 할아버지가 시민권을 받으면서 한가지의 소원이 있었는데, 그것은 돌아가시기 전에 이 나라 국민으로서 딱 한번이라도 투표를 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소원을 통역관을 통해서 인터뷰 때 말했더니, 정말 부랴부랴 이 할아버지를 위해 초특급으로 시민권을 발부했다는 예화가 우리 중에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투표는 무관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또는 이 땅의 마지막 소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선거 철을 맞이하여 투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사람은 관심에 따라 움직입니다. 교포들을 위한 무료건강검진을 실시한다고 할 때, 사람들은 열 일을 제쳐놓고 그곳에 갑니다. 평소에 병원에 가고싶어도 보험이 여으치 않아 가지 못하고 있다가, 무료 건강검진이다 하면 나설 수밖에 없겠지요? 몸 안에 치료받아야 만 할 고통과 아픔이 있기 때문에, 체면 불구하고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그리고 의사의 진단이 “별 문제없다”라는 말을 들음으로 인해, 그 동안의 자신의 몸에 대한 불신을 씻거나, 또는 “전문의를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약을 먹어야겠다”라는 조언 속에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이민사회는 “이민 자들의 권익”이라든가 “다민족과의 연대의 틀” “한인의 힘 과시”라는 등의 말에 아직은 익숙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민자지만, 우리들끼리 너무나 잘 지내고 있기 때문이지요. 교포사회에는 한인을 대표하는 단체들도 여기저기 많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헌신적으로 한인사회를 위해 밤늦도록 개인의 사업을 희생하면서, 땀흘려 번 돈을 자비로 충당하면서 까지 기쁜 마음으로 사회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노력과 수고와 봉사가 결국 헛되지 않고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기구로서 확고한 자리 매김을 하기 위해서는, 선거 때마다 부르짖는 “투표할 이유”를 최소한 불러 일으켜야 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한인사회 지도자들은 대한민국의 정치와 정치인들은 잘 몰라도, 이 나라의 정치와 정치인들은 좀더 알아야겠으며, 우리끼리 상을 주고받지 않아도 소수민족을 위해 공헌한 이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용기와 선구자적인 노력에 함께 박수를 보내야겠습니다. 우리도 후에 도착하는 이민 자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 해주고, 약소집단의 구성원으로서 공통분모를 찾아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정치인이 아니며 잘 모르기 때문에 깊은 정치얘기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왠지 소수민족중의 일원으로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변화, 불이익이 우리 앞에 너무나 빠르고 급한 속도로 달려들어 오고 있음을 직감합니다. 미국역사에 “중국인과 개는 들어오지 말라”라는 팻말이 공공장소에 붙었던 시대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너무나 기가 죽어있거나, 아니면 무관심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민 자들 때문에 사회보장제도의 돈이 말라가고, 이민 자들 때문에 미 주류인 들의 직업이 줄어들고 있다는 루머에 더 이상 휘말려선 안되겠습니다. 왜냐면, 이민 자들이 미 전역에서 받고있는 월폐어는 50억불이지만, 이민 자들이 내고 있는 세금은 850억불이나 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민 자들끼리 임금은 점점 낮아져도, 100명의 이민 자들은 46개의 직업을 이 나라에 창출해 내고 있습니다. 이민 자들이 이 나라의 경제, 문화등 여러 방면에 큰 공헌을 하고 있음이, 현실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1990년대 통계에 의하면, 이민자의 수는 전체 인구의 8%밖에 되지 않건만, 지금 정치인들의 모든 개정 이민법안들은 소수계- 그 중에서도 아시안 들을 가장 불리하게 만드는 반 이민법안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저는 몇 달 전에 제 여동생가족을 초청하는데 큰 애로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1996년 9월에 통과된 이민법 때문이었는데, 초청당사자인 제가 재정능력이 약해서 첫 인터뷰 때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초청인이 미국으로 오는 이민자수를 합해서 최저 생계비의 125% 이상이 되어야 되는데, 그 숫자에 미달이 되었던 것입니다. 새로 만들어진 이민법은 까다로워서 재정보증인이 새로 이민 온 사람이 시민권을 탈 때까지,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어떤 사회보장제도도 이용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제 자신도 여동생의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운데, 남에게 재정보증을 해달라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결은 되었지만, 이민정책은 높은 소득기준을 핑계로 가족의 결합을 실제로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화를 들겠습니다. 이것은 베트남 여인의 경우입니다. 그녀는 미군과 결혼해서 아이가 셋있는 여성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슈퍼마켓에 가서 물건을 훔치다가 발각되었습니다. 그녀는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과거에도 그와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 발견되자, 결국엔 본국으로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아이들과 남편은 영주권 자였던 이 부인을 법에 의해서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월폐어 법을 잠시 들어볼까요? L. A에서는 한인 노인부부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월폐어 예산삭감으로 더 이상 월폐어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불안과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실지로 월폐어 삭감으로 미전역에 있는 2만 6천여 명의 한인노인과 장애자들이 SSI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미 전역의 월폐어 수혜자 중, 이민 자는 5%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월폐어법 삭감된 5백 40억 달라 중, 이민 자들의 혜택을 박탈당한 액수는 2백40억 달라로 전체 삭감 액의 4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캘리포니아 주에서 주민들을 통해 발행한, 이중언어 교육을 없앤 법안이 지금 와싱톤에서도 문제가 되어 통과되리라는 소식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를 향한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인구 통계 국의 보고를 보면, 앞으로 50년후면, 백인들의 인구는 약 52.8%(1996년 당시 73.1%)로 낮아질 전망입니다. 그러나 히스패닉 인구는 10.7%에서 25%로 증가 할 것으로 보고있으며, 아시안-태평양계 인구는 3.5%에서 8.2%로 늘어날 예상이다. 반면에 흑인은 12%에서 14%로 낮은 증가폭을 예상한다고 합니다.

현재 미 주류사회를 이룩하고 있는 백인들은, 미래엔 소수민족의대열에 끼이고 말, 위협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동안 소수민족들에게 베풀어준 자비(?)와 특례법들이, 너무나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하나 둘씩 사라져감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것을 누리고 있던 소수민족들은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살기에 너무나 지쳐있고 바쁘기 때문일까?

우리는 자녀들에게 대부분 의사나, 변호사가 되라고 많이들 종용합니다. 그러나, 이 사회의 각 방면에서 소수민족의 아이덴티를 갖고, 우리의 권익을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공동체의 연대의식이 필요한 때입니다.

한국인을 제 2의 유대인이라고 늘 부릅니다.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들처럼 우리도 개인의 부만이 아닌, 공동체를 위하여 과감하게 투자 할 줄 알고, 다른 소수민족들과 끈끈한 연대의식을 안고 나갈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유대인들의 도서관과 회당을 중심으로 한 삶처럼, 우리에게도 자손들을 위한 공동의 투자가 머잖아 있을 것이고, 이미 교회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는, 개체 교회의 어떤 조직이나 복에 대한 이상만을 위한 이기주의로 더 이상 달려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종교의 울타리를 박차고 사회정의로 연결해야 합니다. 오늘도 “정치를 모르면, 이 나라 국민이 아니다”라는 신념 속에 눈을 부릅뜨고 국회 의사당의 입법정치를 조정하고 있는 그들의 태도를 우리도 머잖아 배우며 지켜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투표는 이 나라의 국민의 의무로서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선 여기에 참여를 시작함으로서, 아시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부터 내가 후원한 사람이 국회에 가서 과연 일을 잘해내고 있는지, 우리의 목소리가 들어 갈 수 있도록 자꾸 귀찮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한인들만의 힘으로는 약하기 때문에, 중국인, 베트남인, 필리핀 사람들과 함께 목소리를 모아서 정당한 요구를 해야 만 되겠지요.

투표 철이 다가왔습니다. 이번 투표도 해야만 된다고 여기저기서 큰소리로 외칩니다. 그러나 내가 한표 찍지 않았다고 하여 벌금을 내라고 할 사람도 없습니다. 여기는 자유의 나라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자유의 숨결을 50년, 100후에까지 우리 모든 자손들이 평등하게 누릴 것이라는 보장을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올해도 내가 투표해야 될 이유는 정녕 없는 것일까요?

청취자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사회의 희망이며 등불입니다. 이 땅은 하나님이 온 인류에게 공평하게 내려준 축복된 땅입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우리 안에 편만 해지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이번에 투표하는 것을 잊지 마시고, 국민의 한사람으로서의 주권을 찾는 것을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실행하시는 주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윤완희, 10/25/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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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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