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작품

Live on 9/3/1998 at KCBN

안녕하세요?

우리는 일상의 생활을 통하여 삶의 그림을 그립니다. 어느 누구도 나는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계획이나, 특별한 요구를 하고 이 땅에 태어나질 않습니다. 누구나 다 공평하게 주어진 부모의 사랑 안에서 성장하고 살아가면서 나름대로의 어느 정착지에 도달케 됩니다. 특히 한 사람이 성장하여 결혼을 통하여, 또 다른 단계의 삶으로 인도되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어 결혼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결혼은 무덤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결혼은 인간으로서 가장 온전해질 수 있는 지름길이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좌우간 결혼을 통해 인간의 희로애락은 더 깊어지고 사람은 철이 들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철없는 자녀들을 보고 “너도 시집 장가가야 안다!”라는 말씀들을 곧잘 쓰는 것을 봅니다. 결혼 전에는 형편없어 보이던 총각이 결혼하고 나니, 왠지 의젓해 보이고 책임감이 강해짐으로 인해 어른들의 마음에 위로를 받는 것 또한 주변에서 보게됩니다. 결혼이란 하나님의 창조 때부터의 계획이기 때문에 성장한 남녀가 결혼하여 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사회의 여러 가지 복잡성과 이권, 부부간의 부정, 또는 원치 않는 병마로부터 배우자를 일찍 잃게 되는 등의 결혼생활이 결국 모두에게 순탄한 것만은 아닌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원치 않는 이혼과 재혼이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복잡하게 얽혀져 가는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과정의 삶 속에서도 그에게 맡겨진 삶의 부분을 아주 아름답게 단장하고 사는 분들은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가 되겠지요.

지난 몇 주전에 전에 섬기던 미국인 교회의 교우의 딸 되는 분의 가정을 여행 중에 만나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Mrs. Alice Hawk이라는 분은 올해 60이 넘으신 되신 분입니다. 이 분은 뉴욕주의 Windsor라는 곳에 사시는 분인데, 가끔 저희가 섬기던 교회에 다녀가시곤 했는데 성격이 무척 쾌활하고, 특히 교회의 부엌에 들어가 일하시기를 즐겨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오실 때마다, 자신의 농장과 네명의 딸들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늘어놓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는 말과 소, 연못에는 푸른모자를 쓴 캐나다에서 날아온 수십 마리의 오리 떼들이, 늘 모여와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우리를 보면 언제나 자신의 농장을 꼭 방문해 줄 것을 신신당부하곤 했습니다. 저도 평소에 농장생활을 연민 하는 터이라,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 분의 농장을 방문하겠노라고 약속을 해두었습니다. 결국 수년이 지난 올해에 그분 댁을 방문하여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녀와의 약속이 비록 지체되긴 했지만, 조금은 흥분가운데 마음속에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장 위에서 뛰어 노는 말들과, 여기 저기서 풀을 뜯어 먹고있는 소떼들을 머리 속에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숫자가 늘어난다는 캐나다에서 날아온 오리 떼들의 날갯짓의 장관을, 해질녘에 바라본다는 것은 너무나 낭만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웬걸 막상 그녀의 집에 막 도착해 보니, 저의 상상은 단박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집은 숲속의 언덕길에 있었는데, 들어서는 드라이브웨이는 망가진 차들이 즐비하게 놓여있었습니다. 맑은 물이 출렁거리고 흰 연꽃들이 두둥실 떠다니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던 연못은, 차라리 구정물통이라고 표현 할 수 있는 더럽고 지저분한 조그만 웅덩이였습니다. 그것도 가뭄으로 거의 물 밑바닥이 드러나 있었고, 거기에는 서너 마리의 오리들이 흙탕물 속에서 쾍쾍거리며, 먹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마구간에는 말 두 마리가 있었는데, 한 마리는 늙어서 먹지를 못해 거의 기아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덟 마리의 소가 더위에 산등성이서 헉헉거리고 있었으며, 다 헐어빠진 닭장엔 너덧 마리의 닭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닭장 위에는 집없는 새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새를 잡으려고 올라가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집안에 들어가니 어둠침침한 곳에 고양이 네 마리와 개 두마리가 움찔거리고 있었습니다. 짐승들의 냄새에 문득 구역질이 솟아났습니다. 왠 파리 떼들이 환영이라도 하듯이 마구 덤벼듦 속에서 ‘괜히 왔구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욱 나의 몸을 움쭐하게 한 것은 고양이가 금방 물어다 놓은 작은 쥐 한 마리가 리빙룸 바닥에서 마지막 숨을 할딱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온 사방엔 일가친척의 가족사진들이 정신없이 걸려있는 사이에, 그녀의 남편이 잡아왔다는 뿔이 달린 사슴머리가, 눈을 부라리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잔뜩 흥분한 채, 손님 맞느라 애를 쓰는 엘리스의 모습 속에서, 저와 남편은 서로 눈치를 해가면서 리빙룸에 앉을 자리를 찾으려 했지만, 어디에 몸을 두어야 될는지 한동안 몸과 마음을 정리해야 만 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스는 “목사님! 우리 남편이 목사님 내외분이 오시는데 집안이 이래선 되겠느냐고 해서 사실은 지난 일주일 내내 청소했습니다” 라며 자랑스레히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스는 저희를 그 많은 벽에 붙은 가족사진 앞에 인도했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돌아가신 그녀의 어머니의 사진과 9명의 손자 손녀의 사진과, 4명의 딸들의 가족사진이 차례로 소개하였습니다. 그녀는 남편 도날드와 재혼 이였는데, 처음 남편을 만 났을 때, 큰 아이가 10살, 둘째가 8살, 넷째가 6살이었고 막내가 세 살을 막 지난 나이였다고 합니다. 첫 결혼에 실패하고 어렵게 살고 있을 때, 친구의 권유로 전문중매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먼저 편지로 한동안 서로를 타진해보다가 서로 합의가 되어, 엘리스가 도날드의 집을 방문하게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폭설이 어떻게 쏟아졌는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4시간이나 늦어지게 되었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날드는 엘리스를 그 추위와 폭설 속에서 4시간을 기다려 주었고, 그 일을 통해 서로의 신뢰성을 한껏 찾게 되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엘리스는 전 부인의 네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한 동네에서 살고있던 전 부인은 일일이 찾아와서 간섭하고 질투를 하고, 네 자녀들을 데려가겠노라며 위협과 동시에 이들의 결혼생활을 적극적으로 방해하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동안 이혼으로 아이들 혼자 양육하느라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도날드가 갑자기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어린 딸들은 감기로 열이 나고 남편은 병원에서 생사를 모르고 헤매고,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고지서들은 엘리스의 숨통을 조여들였습니다. 그녀는 몇 번씩이나 재혼한 것에 대해 막심한 후회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이길 수 없을 때마다 어머니를 향해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 매플은 2차대전의 공황가운데서 역시 홀어머니로서 많은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살아 남은 분이었습니다. “…얘야! 지금은 힘들어도 곧 좋아질 것이야. 조금만 참아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어머니의 이 짧은 격려가 어려울 때마다 그 긴 터널 같은 고통의 순간을 모면케 하였습니다. 그런데, 전부인과의 관계는 엘리스를 언제나 가장 큰 곤경에 빠뜨리는 것 중에 하나였습니다. 전 부인은 추수감사절이 되거나 크리스마스, 어머니날이 되면은 아이들의 사랑을 차지하려고 애를 쓰며 할러데이가 오면 벌써 가정에 긴장이 흘렀습니다. 어느 해에는 외출했다가 들어오니 아이들 네명이 짐을 싸 갖고 생모를 따라 다른 주로 떠나가 버리기도 했습니다. 비록 자신이 낳지는 않았어도 네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은 친모 못지 않게 강했던 엘리스는 변호사를 통해, 아이 넷을 끝내 찾아오고야 말았습니다.

엘리스는 어느 날, 전 부인에게 긴 타협을 요청합니다. 서로를 그대로 인정해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둘 이는 친구로까지 발전하게 되어, 서로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아이들 문제가 생기면 서로 의논하고, 부부가 여행을 하게되면 생모가 와서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배려를 하기까지 되었습니다. 결국 그 가정에는 평화가 자리잡게 되었고, 딸 넷은 훌륭한 사위들을 만나 출가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엘리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많은 가족사진 사이에 걸린 오래된 신문을 복사한 싯귀절이 걸린 사진틀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엘리스는 우리의 눈이 그곳에 닿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큰딸이 어머니날에 보낸 최고의 선물이었다”고 자랑하였습니다. 그 시를 읽어 내려가던 저희 부부는 엘리스를 향해 진정한 박수와 사랑을 보내며 눈물의 포옹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의 제목은 “계모의 사랑”이였습니다.

계모의 사랑

깨어진 결손 가정의 자녀들의 삶은 결국 쉽지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중에 가장 나이든 아이였습니다.

생모가 우릴 떠나간 후, 주말이면 그녀를 항상 만났어도

우리는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어느 여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그녀는 우리를 사랑할 줄 알았고 돌볼 줄 알았습니다.

그녀는 친자식이 없음에도 모든 책임을 질 줄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결혼 후, 어머니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와 동생들은 그녀가 어머니의 자리를 채워나갈수록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계모는 언제나 우리에게 엄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와 돌아보니 계모는 최선을 다해 좋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의 혼사 날이 다가왔습니다.

나의 생모는 수백 마일 떨어져있었으나, 계모는 바로 내 곁에 앉아

나의 결혼진행을 일일이 도왔습니다.

계모는 나를 데리고 신부집에 가서 웨딩드레스를 골라주고,

드레스에 맞는 아름다운 꽃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의 동생들을 위해 드레스를 밤새 만들어 입혔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길 바라는 웨딩드레스와 함께 어울린 아름다운 베일도 만들었습니다.

나의 생모는 결혼을 위해 아무 것도 만들어 주지 못했고, 참석도 못함으로 나의 마음은 아플 수 밖에 없었지만, 계모는 그날 누구보다도 자랑스런 눈으로 나를 지켜 봐 주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이 여인을 통해 얼마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는가를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음을 이 제사 가슴아프게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세 아이의 어머니로서 계모의 교육과 사랑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내가 오늘날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세월동안의 계모의 사랑과 헌신에 의한 것 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감사합니다.

– 당신의 큰딸로부터 –

이 한 장의 시는 엘리스의 삶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삶의 표창장과도 같았습니다. 재혼이라는 살얼음판과 같은 삶 속에서, 도시의 여인이 시골의 가난한 농부에게 시집가서, 그의 이미 파장난 삶의 조각들을 다시 맞춰내는 일은 가히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치도 스텐레스의 유리조각을 맞춰나가듯이, 순간순간 얽혀진 인간관계의 위험과 아픔 속에서 창조해 낸 그 아름다운 삶의 그림은, 그녀만이 창출해 낼 수 있었던 영구한 작품과도 같았습니다. 그녀의 내면의 강인함과 인내력을 통해, 한 가정을 일으키고 치유한 손길은 어느 성공한 여인의 삶과 비교 할 수 없는 진실된 성공이 거기에 숨어있었습니다. 저는 그 한편의 시를 통해 맑은 샘물처럼 솟아오르고 있는 인간의 정과 사랑이, 우리에겐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다시금 확인케 되었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그녀의 손님이 아니라, 너무나 가까운 한 가족이 되어 있음을 발견케 되었습니다.

그녀는 우리 부부를 위해 맛있는 저녁상을 포치에서 차렸습니다. 인근에 산다는 막내딸이 손자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하였습니다. 상에는 옥수수와 감자, 스테이크가 아주 맛있게 불에 구워져 있었습니다. 식사기도를 하 고나니 어디서 달려왔는지 파리 떼들과 여러 마리의 홈레스 고양이, 강아지들이 한 상에 모여들었지만, 저는 더 이상 그들을 관여치 않게 되었습니다. 식사 중간에 보니 지나가던 허밍버드까지 찾아와, 우리의 머리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통 말이 없다는 그녀의 남편 도날드도 아내의 즐거움에 참여하여, 연방 호탕하게 웃어대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는 비로소 엘리스가 그 보잘 것 없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던 농장을 그토록 아름답고 행복한 곳으로 늘 표현하곤 했는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사람다운 사람들이 서로 사랑을 아끼지 않고 살고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청취자 여러분! 우리가 지금 구중궁궐 같은 집 속에서 살아갈 망정, 그곳에 가족간의 사랑이 없고 인내가 없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이는 그곳은 가장 추하고 가난한 곳입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망정, 가족간에 사랑이 있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들이 있는 곳이라면, 아무리 비천하고 낮은 곳일지라도 그곳은 천국이며 이 땅에서 가장 부유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주간에도 삶의 아름다운 그림을 마치기 위해 더욱더 진한 사랑의 붓을 듭시다.

— 윤 완희, 1987

The current image has no alternative text. The file name is: image-54.png
Unknown's avatar

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This entry was posted in As I Am, Devotional Essay, Essay by WanHee Yoon, faith-column, Letter from the Parsonage, Live Broadcasting. Bookmark the permalink.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