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오면

6월이 오면, 우리 민족에게 잊을 수 없는 역사의 비극을 기억합니다.

올해로 한국전쟁이 휴전된지도 4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전쟁을 몸소 경험해 보지 않은 저에게 민족의 아픔인 6.25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은 주어져있진 않습니다. 그러나 선조들의 아픔과 재난 속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고, 이와 같은 일이 우리 세대와 후손들에게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기 위해 다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특히, 미국시민으로 자라나고 있는 이세들에게 한국동란의 역사적인 의미를 가르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비록 일세와 이세가 자라난 환경은 다를지라도 민족의 맥을 연결하고 동질성을 갖게 하는 역사의식을 갖게될 때, 우리의 세대차이는 그만큼 간격을 좁힐 뿐 아니라, 이 땅에서 Korean – American으로 살아가는 아이덴티티를 찾게 될 것입니다. 또한, 좋은 교육과 환경에서 자라 좀 출세했다고 하여, 자신의 뿌리도 모르고 선조들의 고난을 잊고 살 때, 인간은 누구나 방종의 길로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들이 얼마나 귀하며, 인간 생명의 존엄성, 한 알의 쌀의 귀함을 피눈물나게 경험치 못한 이세들에게 우리민족의 역사를 가르치는 일은, 미래의 행복을 더욱 더 귀하게 관리 할 수 있는 능력을 주기 위함입니다.

베링 하임이란 학자는 “역사를 바로 알자. 역사를 바로 알면 사회윤리라든지 도의교육이 따로 필요 없다” 라고 했듯이, 역사의식을 늘 갖고 산다는 것은 사람을 좀더 궁극적인 삶의 차원으로 이끌기 때문이지요.

“하나 둘 셋 넷 꼬마대장 나간다. 하나 둘 셋 넷 발을 맞춰서. 빨갱이야 나와라 김일성도 나와라. 하나 둘 셋 넷 우리는 국군” 이 노래는 이민 올 때 4살이던 큰딸 아이가, 미국에 살고있는 큰아버지 가족 앞에서 불렀던 신고식 노래였습니다. 당시에 이민오신지 10여년이 지났던 아주머님은, 처음 만나는 조카의 입에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동요 가사를 듣다가 그만 박장대소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야말로 정말 순 한국의 딸이구나!” 하면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어느덧 자라 22세의 처녀가 되었습니다. 이미 “꼬마대장”이라는 노랫말을 거의 잊은 채 말입니다. 저는 가끔 아이 앞에서 “꼬마대장” 노래를 불러봅니다. 그것은 너무나 커버린 아이 속에서, 내 민족의 고난의 향취가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할 때가 있습니다. 뉴스를 통해 들려지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부분 자랑스럽고 좋은 이야기보다는 부끄럽고 이해가 힘든 사건이나 뉴스를 전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이해하기 힘든 듯이 “왜 대통령이 감옥엘 가야하죠? 지역감정이 어떻게 그토록 처참할 수 있을까요? 정치인은 국민의 세금으로 살터인데 어떻게 그런 일들을 하지요? 어떻게 기업들이 폐수를 강에 함부로 버릴 수 있을까요?…”라는 등의 꼬리표를 달게됩니다. 그러면, 때로는 ‘괜히 안해도 될 이야기를 했구나’ 하는 후회도 들지만, 그래도 지내놓고 보면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비록 미국에서 교육받고 이곳 국민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이지만, 부모의 조국을 좀더 이해하고 앞으로 어떤 기회가 닿아 한국민족을 위해 일할 기회가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때 가서 오히려 당황하거나 실망시키지 않고, 차라리 나의 치부가 있으면 일찌감치 들어내 놓고, 거기서부터 출발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1950년 7월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맥아더 장군은, 크리스마스 전에는 다시 미 병사들이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당시 전사자 만 100만을 내었으며, 부상자 200만, 고아와 과부가 70만이었으며, 이산가족이 1천만이라는 아픔을 남긴 채, 45년이라는 긴 휴전 속으로 들어가고 만 것이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과거의 일을 과거에 있었던 일로만 생각하지 말고 현재에 기억하라”는 말을 통해, 인류의 반복되는 죄악을 경고하였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가장 불행했던 고지를 올랐던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를 향해 감사와 존경의 뜻을 당연히 표해야 합니다. 당시의 젊은이들은 때로는 인민군이 되어 국군을 향해 총을 겨누기도 했고, 때로는 국군이 되어 인민군에게 총부리를 겨누기도 했습니다. 산 속의 토굴 속에서 집안의 다락 속에서, 돼지우리 속에서, 겨우 목숨하나 부지하기 위해, 온 몸의 촉각을 새우고, 굶주림과 추위, 두려움과 절망의 터널 속을 그렇게 헤쳐 나오며 겨우 목숨하나 건진 세대였습니다. 한 동네의 한 우물을 길어 먹던 이웃이, 밤에는 빨갱이요, 낮에는 선량한 남한사람으로 변장하는 무서운 시대에 죽음과 삶의 순간을 오락가락 하며 살던 시절 이였습니다.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잿더미로 잃은 수천만의 피난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파괴된 인간심성을 부여잡고 “하나님! 목숨만이라도 살려주십시오!”라고 수없이 울부짖으며 전쟁의 포효를 뚫고 오늘로 달려오신 분들입니다.

우리는 이제 평화를 위한 노력을 전 한민족이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를 이민이라는 길을 통해 세계로 흩으신 하나님의 뜻은, 평화의 비전을 우리와 후손에게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마치도 AD 70년 전쟁을 통해 유대인이 전세계로 흩어진 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끝내는 세계의 지도자로 성장 한 것과 비교 할 수 있습니다. 이 세계평화를 위한 꿈은 어느 특정한 정치인들에게 만 의존 할 수 없습니다. 각 분야가 다 동원되어야 합니다. 기업인, 정치인 문학인, 음악인, 미술인, 언론인, 종교인, 학생, 교수, 주부, 노동자, 의료인 모두 나서야 만 합니다.

각 나라에 흩어져있는 이민사회가 서로의 다양성은 인정하되, 민족 통일에 대한 열망과 뜻을 하나로 묶어지기를 염원합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 손자가 추구하는 평화를 향한 눈이 함께 가기를 원합니다.

맹용길 교수가 쓴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하나님의 섭리: 목회와 신학 94년 6월호 P 94>의 논문에 “‘전쟁이란, 우리의 적대자로 하여금 우리의 뜻을 완벽하게 이행하도록 강요하려는 폭력행위이다’ 라는 클루우제비츠(Karl Von clausewitz) 의 전쟁론에서의 글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1. 전쟁은 공격적이다 2. 전쟁은 승리를 목적으로 한다 3. 전쟁은 목적론적 논리를 가진다 4. 전쟁은 폭력을 사용 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진다 5. 전쟁은 심리적인 위축이 일어나게 하고 전쟁에서 패배하도록 몰고가면서 항복

할 수밖에 없구나 하게 만들려는 속성이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지나간 인류역사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싸움을 하면서 살아왔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지난 5,600년 동안에 매년 26회의 전쟁이 발발했다고 합니다. 이 기간을 185세대로 나눈다면, 단지 10세대 동안만이 지속적인 평화를 경험한 세대라고 합니다. 또 다른 통계에 의하면, 1945년부터 1990년까지 전체 2,340주가 있는데, 전쟁이 없던 기간은 오직 3주에 불과하다 합니다. (이춘근: “세계전쟁의 원인 및 유형과 그 특징을 분석한다” 목회와 신학 1994년 6월호)

역사가에 의하면, 한국만 해도 단기 4331년(1998년) 동안 약 930번의 전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매 4-5년마다 전쟁이 있었는데, 우리가 남을 침략한 것이 아니고, 외세로부터 침략을 당한 것이지요. 지금도 휴전 중이니, 완전히 평화를 누리고 있는 시기는 아닌 것입니다.

<내 조국 대한민국> 이렇게 부르기 만 하여도 마음이 애절해지고 산 같은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조국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애정이 솟고, 안타까운 것은 내 생명의 근원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지요. 가장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알고 이해 할 수 있고, 나도 그 어느 누구보다도 조국을 잘 알고 있기에 서로 얼굴비비고 울고픈 만남이지요. 남한은 남한대로 어려운 IMF 시대를 지나느라고 진통을 치르고 있고, 북한은 북한대로 기근과 기아 속에서 뼈만 남은 아이들이 처참하게 울 힘도 없이 멍하게 누워있는 모습 속에서, 나의 초상은 왠지 더욱더 선명해집니다.

지금부터 약 8년전의 일입니다. 당시 만 해도 이북에 다녀오면 혹시나 간첩이 아닐까 하고 오해받는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미국 시민권 자로서 고향인 평양에 가서, 약 40여년 만에 형님과 친척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이미 수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아버지의 산소에 찾아가 강물같은 아픔으로 목놓아 울게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아버님의 산소 앞에서, 과연 장로님이셨던 아버님이 예수 님을 끝까지 믿다가 돌아가셨는지가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공산치하 사상으로 억눌림 당하며 사신 형님에게 직접적으로 물어 불 수도 없어, 애를 쓰다가 아버지의 말년의 삶에 대해 묻게되었습니다. 형님은 말씀하시기를 “집안에 문제가 있거나 어려움이 있으면, 아버지는 늘 산과 들로 나가서 명상을 하셨지!”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그 말씀이 무엇인지 짐작이 갔습니다. 아버님은 끝까지 주님을 배신치 않고 그 하나님을 붙들며, 공산치하의 압정 속에서 살아나신 것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형님 가족들이나 친척들이 예수 님을 믿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주야로 함께 동행하고 있는 안내원의 친절 속에 알아 낼 수 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여행의 흥분과 음식물로 인해 심한 배탈이 난 목사님은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이 식사하는 동안, 한쪽 방에서 잠시 누워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방문이 열리더니 조카손자 며느리가 가만히 들어왔습니다. 거친 피부에 앳된 얼굴의 손자며느리는 아무 말없이 목사님 곁에 와서 무릎꿇고 앉더니, 들릴락 말락하게 뭐라고 목사님 귀에 대고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꿈에도 기대치 않았던 찬송가였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손자며느리의 뜨거운 눈물이 목사님의 누워있는 얼굴 위로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찬송이 끝나자마자 눈물을 훔치며, 쏜살같이 방문을 열고 나가버렸습니다. 이 목사님은 숨이 멎을 것 만 같은 벅찬 감동으로 그 자리서 일어나 하나님 앞에 통곡의 감사 기도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그토록 수십년을 그리워하며 애타던 의문들이, 장마후의 개울물이 쓸려 나가듯이 모두 씻기움 당하는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하셨습니다.

6월이 오면, 우리 민족의 아픔을 다시 생각합니다. 남북 이산가족들이 나누고 있는 고통과, 민족의 숙원인 평화통일은 아직도 풀려지지 않은 숙제로 45년이라는 세월을 방치된 채 세월의 뒤안길에 내버려져있습니다.

“당신의 삶을 하나님께 바치라. 하나님께서는 그 삶으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라고 드와이트 무디의 말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든 세대가 이 풀려지지 않은 민족의 숙원을 향해 우리의 삶을 바치며, 후손들에게 가르칠 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위대한 일을 꼭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이듭니다. 과거의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현재의 삶에 더욱더 충실한 목적을 갖게 하고, 미래의 방종하는 마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에덴으로의 귀환하는 일입니다.

– 윤 완희, 6/24/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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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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