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폭풍우 후에

안녕하세요? 한여름에는 가끔 찾아오는 열대성 폭풍우로 인해 다른 계절에 맛볼 수 없는 기후의 극렬한 변화를 맛보게 되지요. 얼마 전에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로 인해 인명피해가 있었고 거대한 나무들이 뽑혀지거나 가지들이 부러져 집을 무너뜨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폭풍우가 지나간 후의 아침의 태양 아래 널부러져있는 나뭇가지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삶의 폭풍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살아있는 모두에게는 언제 어느 때 불어닥칠 모를 이런 폭풍우들을 과연 어떻게 맞이할 것이며, 또한 어떻게 처리 할 것인지 함께 나눠 보는 창이 열린 숲속을 걸어 보겠습니다. 먼저 찬양을 듣습니다.

우리 삶의 기상 변화 속에서 좋은 날씨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요즈음 같이 뜨거운 태양 아래서 바다 물놀이를 즐기다가도 갑자기 만나는 비구름처럼, 모든 것이 잘 되어 가는 듯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감당키 어려운 일들이 몰려 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그것으로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초연한 태도는 폭풍우를 이길 수 있을 뿐 아니라 폭풍우 후에 더 아름다운 삶을 발견 할 수 있답니다. 우리는 곧잘 마음으로 염원하기를 제발 우리 가정과 우리의 삶속엔 폭풍우가 닥치지 않기를 바라는 연약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폭풍우를 여러 번 잘 견디었던 분들은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의 강렬함만큼이나 아름답고 신선한 인생을 살게됨을 봅니다.

마크 웰맨(Mark Wellman)이라는 청년은 22세의 나이에 캘리포니아에 있는 13,075- Foot 높이의 시에라 네바다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밧줄이나 어느 도구도 갖지 않은 채 맨손으로 48개의 산봉우리를 정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그는 그와 동반했던 친구와 함께 암봉과 암봉 사이를 산 염소처럼 다시 뛰어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가 온 몸을 의지하며 짚었던 바윗돌이 깨어져 나가면서 몸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위덩어리 위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순간 헝겊으로 만든 인형이 내쳐져지듯 암벽사이로 내쳐지면서 “아- 아, 이렇게 해서 죽는 거구나!” 하며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는 동반했던 친구의 긴급구조 연락 속에 헬리콥터로 구조되어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병원 침대에서 깨어나고 보니, 의사의 청천벼락 같은 진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말하기를 “당신의 등뼈가 심하게 다쳐 다시는 걷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반신을 못쓰는 불구자가 된 사실을 용납 할 수 없어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창문으로 기어올라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 속에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몸에 겨우 T. V 채널을 콘트롤 할 힘 외엔 없던 그였기에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가는 방법을 다른 환자들을 통해 다시 배워야 만 되었습니다.

사고가 난지 6년 후, 마크는 새로운 모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친구인 마이크 코베트(Mike Corbett)가 마크에게 자신과 함께 El Captain을 탈것을 권유했기 때문입니다. 마이크 코베트는 요세미트 국립공원의 3,600 Foot 높이의 El Captain 암벽을 50번 이상씩이나 오른 경험으로 마크를 위해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1989년 7월, 그들은 산행을 실행하게 되었는데 마이크 코베트가 먼저 오른 후, 그가 특별히 만든 장비를 이용해 마크가 오르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작렬하는 태양아래서 더위와 진땀으로 목욕하듯 하면서 7일 만에 정상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오로지 두 팔에 온몸의 무게를 의지하며 정상에 오른 마크의 팔은 떨어져 나갈 듯한 고통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새로운 인생이 산 아래 펼쳐져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일년 후에 그는 요세미트의 다른 유명한 바위들도 계속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1993년도에 그는 하반신 불구자로서 특수 스키를 만들어 시에르라 네바다 (Sierra Nevada)를 건넜는데, 10,000 Foot 높이를 뛰어넘는 매우 험준한 코스였습니다.

그는 오늘도 엘 캡틴의 산 정복을 잊지 못하며 미소를 짖습니다. 당시에 그가 산행을 마치길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의 질문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아니 왜 이토록 목숨을 건 모험을 하십니까?” “예. 이것은 단지 내 자신을 오늘의 한계에 두지 않고 또 다른 세계를 시험해 보기 위해 서지요!” 라는 것이었습니다. (From Boy’s Life, 1996)

일반인들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는 마크의 모습은 폭풍우 속에서도 살아남은 인간 승리의 표본이며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폭풍우 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신체장애가 있는 어느 두 가정이 있습니다. 한 가정은 아이의 신체적인 결함이 부부간에 서로에게 책임이 있음을 탓하면서 가정의 불화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가정에 들어와서 불구자인 자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상하였습니다. 더군다나 남에게 이런 자식을 보인다는 것이 창피스러워 외출을 온 가족이 할 일이 있을 때면, 아이를 방안에 가둬두는 일을 합니다. 아이는 부모에게조차도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하는 불행하고 어두운 삶을 삽니다.

그러나 또 한 가정은 부부가 마음을 다해 신체적인 결함을 갖은 아이를 정성을 다해, 온전한 삶의 기회를 주고자 전신의 힘을 쏟습니다. 아이를 통해서 이 세상에 꼭 이상적인 삶에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 쓸모 없어 보이는 삶 속에도 무한대의 가치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기적인 자아의 성이 무너져 내리고 이 세상 모두는 사랑할 가치가 있고 사랑 받아야 만 될 존귀함이 있음을 깨닫게됩니다.

오늘도 세상이 무너지듯이 아무리 엄청난 일이 오늘 닥친다 하여도 지내놓고 보면 별 것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삶은 물이 흐르듯이 나이에 따라 그 관점과 생각의 변화가 오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어딜 가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 은혜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자각은 우리 모두를 담대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내 자신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답니다. 사실 인생의 폭풍우는 삶의 거품들을 걷어내는 일을 하기에 우리가 온전히 성숙하기 위해선 어쩌면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성경의 시편 121편에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 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하시리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삶의 폭풍우는 언제 어느 때 우리의 삶을 뒤흔들어 놓을지 모릅니다. 아니 지금 우리는 폭풍우 속에 밤이 너무 길다고 한탄하며 방황하고 있는 가운데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새 아침에 떠오를 빛난 태양을 마음속에 사모하는 한 광명의 새벽은 언제나 우리를 맞이하러 달려오고 있음을 기억합니다.

윤 완희, <1997년 8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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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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