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란의 첼리스트가
불길 앞에 서 있다.
그의 뒤에서
발전소 하나가
이란의 어두운 하늘 속으로 폭발한다.
사이렌이 떨리고,
연기는 상처 입은 기도처럼 피어오른다.
그러나 그의 첼로는
계속 말하고 있다.
폭발에 맞서서가 아니라,
그 폭발을 통과하며.
활은 천천히
현 위를 지나간다.
마치 슬픔 자체가
음악을 배운 것처럼.
그리고 나의 심장은
또 다른 첼로와 공명하기 시작한다—
마흐디 알-사힐이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
하렛 흐레이크에서
하차투리안의 안단티노를 연주하고 있다.
부서진 건물들이
아직도 전쟁을 기억하고,
창문들이
산산조각 난 아침들의 기억을 붙들고 있는 곳.
아—
그 소리는
미사일보다 더 멀리 날아간다.
국경보다 더 멀리.
아이들에게 서로를 두려워하는 법을 가르치는
제국들보다 더 멀리.
첼로의 소리는
기도 속으로 스며드는 슬픔처럼
몸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갑자기
나는 십자가 아래 무릎 꿇은 마리아를 본다.
황금빛으로 그려진 모습이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 안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자녀의 고통으로 인해
심장이 꿰뚫린
한 어머니로서.
그녀의 눈물은
역사 속을 조용히 흘러가며
상처 입은 육체를 찾아다녔다.
여전히 상처를 향해 움직이며,
여전히 내면으로부터 치유하고 있다.
분리를 거부하는 사랑을 위한
낯설고도 거룩한 이름.
첼로 위의 숨결.
상처를 향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
부서진 도시들을 향하여.
슬픔에 잠긴 난민들을 향하여.
폭격당한 병원들을 향하여.
지쳐버린 어머니들을 향하여.
그녀의 숨결 아래
조용히 앉아 있는 외로운 영혼들을 향하여.
마치 이동하는 세포들이
다친 조직을 찾아가는 것처럼.
어쩌면 이것이 거룩함인지도 모른다.
고통의 세계를 피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
타인의 아픔이
우리 안에서 치유되기 시작하도록 하는 것.
첼로는 계속 연주된다.
이란은 떨고,
베이루트는 기억하며,
마리아는 십자가 아래서 운다.
그리고 오늘 밤 어디선가
그리스도의 몸은
여전히 조용히 세상 속을 움직이고 있다—
부서진 모든 것을 향하여,
아직도 조화를 갈망하는 곳을 향하여,
평화를 갈망하는 곳을 향하여,
사랑을 갈망하는 곳을 향하여.
— 윤태헌, 2026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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