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여느 해보다도 날씨의 변동이 많은 해인 것 같습니다. 수년 전 만해도 천둥번개가 함께 하는 날들은 손꼽을 정도였으나, 요즈음엔 비와 함께 자주 천둥번개를 볼 수 있습니다. 천둥번개가 ‘우르르 꽝’하고 치면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을 느끼게됩니다. 즉 두려움이라고 할까요? 저희 집 강아지도 지하실에 있다가도 이 소리 만 들리면, 눈이 휘둥그레져서 사람에게 쏜살같이 달려와 안기고 맙니다. 모두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안기고픈 마음이지요.
저도 천둥번개가 치면 마음속에 두려움이 곧잘 오곤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그 속에서 피아노 소리를 늘 연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요즈음 나오는 CD에는 이 자연의 소리를 곁들인 피아노 소나타 곡들이나 좋은 경음악, 또는 찬양 곡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빗소리와 천둥소리를 배경으로 한 곡들입니다. 그래서 이젠 비와 천둥이 함께 몰아치는 날이면, 살아있는 생음악 연주를 듣게되는 격이 되니 마치도 자연의 거대한 음악회에 초대된 기분이 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잦은 비와 천둥소리가 한차례 물러간 다음 날엔 텃밭에 나가 채소들을 들여다 보는 재미는 기가막힙니다. 아마 터밭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저의 이 기가막힌 재미가 무엇인지 아실 것입니다. 저희 집엔 터밭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알량한 모습의 서너포기의 오이와, 지난해 씨가 떨어져 저절로 자라난 깻잎과, 수년 전에 뿌리를 심은 부추와 어머니가 뿌려준 상추가 어울려져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이곳 저곳에 이웃집과의 경계선이 있는 드라이브웨이 틈나는 사이에 고추 모종도 심었더니, 요새는 작은 고추들이 하나 둘 눈에 띄게 열리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러고 보니 토마토도 서너 그루가 있어, 토마토를 무겁게 매달고 있습니다. 그 연약한 가지에 그토록 무겁디무거운 토마토를 여기저기 매달고 버티는 인내심은 가히 칭찬 받을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비록 비옥한 땅도 아니요, 누런 모래흙들이 거의 차지해있는 훍이지만, 그 흙을 의지 삼아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채소들이 그저 고맙고 기특할 뿐입니다. 채소들은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하는데, 거의 발걸음을 가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제나름대로 자라나는 모습 앞에, 때로는 부끄러워 질 때가 있습니다.
요즈음 같이, 더위로 인하여 마땅한 음식을 식탁에 내놓기가 어려울 때면 저는 늘 텃밭을 넘겨다보면서 염치없는 구걸을 합니다. 그러면, 언제나 그 품에서 풍성한 사랑을 바구니에 넘치도록 담아줍니다. 때로는 상추 잎을 사정없이 따내면서 마음에 찡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 작은 씨앗 속에 어쩌면 이토록 크고 넓은 가슴이 들어있을까. 어쩌면 이토록 부지런도 할까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깁니다.
사람들은 비가 오면 온다고 짜증을 내고 더우면 덥다고 에어컨을 틀어놓고, 추우면 춥다고 불평을 하면서 나름대로 생태계를 파괴하며 살아가건 만, 상추나 부추, 오이, 고추들은 그 모든 것들로 살을 찌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만들어 주는 것이 새삼 고마울 뿐입니다. 이 텃밭에도 시도 때도 없이 자라나는 잡초들의 불법침입으로 인해, 때로는 야채들이 저들만의 땅과 공간을 빼앗김에도 불구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함께 여유 있게 자라는 모습에서 예수 님의 팔 복을 어느 날 문득 연상케 되었습니다.
밭에서 찾아낸 산상보훈을 함께 나누시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사람이 무엇인가 가지려고 할 때부터 궁핍을 느끼게 되고 욕심으로 눈이 멀어집니다. 가장 좋은 온갖 것들이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허한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비록 초청 받지 않은 잡초라도 넉넉하게 자리를 양보하는 씨들 속에 이미 천국이 저희 것임을 보게됩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심은 대로 싹이 태어나고 기대대로 자라나 이파리들과 열매를 가득 안겨주는 하찮은 야채 하나에서 상처 나고 얼룩진 내 모습을 바라보며 애통케 됩니다. 나의 삶이 하나님의 기대대로 뿌리신 그 모습 그대로 자라나고 있는지, 아니면, 내 멋대로 유린한 삶 속에서, 이미 병들어 있지나 않는지 내 자신을 비쳐 보게됩니다. 비록 상처 나고 유린된 삶 속에도 주님의 손길이 그 병든 자리에서도 함께 안타까워하심을 보고 회개를 합니다. 아침마다 이슬방울 송송히 맺어 자신의 몸을 깨끗이 닦아내는 모습 속에서 영혼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럴 때마다 위로의 손길과 함께 풋풋이 소생하는 자신을 만나게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채소들은 심은 자리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에서 온유함의 실체를 봅니다. 초청되지 않은 불법 자들의 침입과 질서를 무시하고 아무 곳에나 땅을 빼앗는 이 땅의 난폭자들은 언젠가 주인의 손에 뽑히우고 말지만, 주인이 뿌리고 거두는 씨앗은 결국 뽑힘을 당하지 않고 목숨 다하는 날까지 살아가게 됩니다. 주인이 허락한 땅, 우리에겐 천국이 있음을 확신케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채소들은 며칠 만 비가 오지 않아도 금방 온 몸을 땅에 늘어뜨리고 물을 갈망합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애처로운지 모든 일을 젖혀놓고라도 먼저 흠뻑 물을 뿌려줍니다. 그러면, 잠시 후에 곧 기력을 찾아 다시 몸을 꼿꼿이 땅에 세웁니다. 사람의 육신의 만족감과 포만감은 영혼의 부패와 죽음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영적 기갈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이 땅에서 살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갈망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거져주시는 은혜가 삶의 마당에 종일 내려집니다. 영혼의 만족감으로 삶의 충만함 속에 살아갑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흙은 생명을 잉태하지만 또한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산화시키며, 재생시키며 청결케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온화한 품에 모든 것을 안아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킵니다. 도중에 포기하거나 박대하지 않는 품성으로 인해, 하나님은 이것을 빚어 최초의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품성과 가장 가까운 만물 중의 하나인 흙에 당신의 형상을 만드실 만큼 신뢰하고 사랑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서서 긍휼함을 베풀어야 합니다. 어떤 불의가 횡행할지라도 이 땅의 회복 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함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임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청결한 마음이란 두 마음을 품질 않고 신실하고 정직한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를 말합니다. 만약에 오이를 기대했는데 오이에서 호박이 나온다거나 깻잎이 자란다면, 심은 사람은 여간 실망을 할 것입니다. 모든 씨앗은 씨앗이 열어야 만 할 열매가 있습니다. 그 열매를 열기까지는 천둥과 비바람, 뜨거운 햇볕과 어둔 밤하늘을 지나야 합니다. 창조주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마음의 중심은 모든 탐욕과 불성실에서 해방시킵니다. 감히 인간의 눈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땅을 파보면, 땅속이 마치도 지하철의 선로가 얽히고 얽힌 것 같이 나무 뿌리들이 서로 오고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지렁이들과 이름 모를 작은 벌레 종류들이 수없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이 벌레들은 채소에 이로운 것도 있고 해로운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의지하며 서로의 필요를 도와주면서 살아갑니다. 좋은 박테리아를 배양해주면서 식물을 자라게 합니다.
세상에서 화평케 하는 일보다 더 하나님을 닮은 일은 없다고 합니다. 화평이 얼마나 중요한지 예수님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화평을 이루시기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시는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우리는 천국의 상속자입니다. 내가있으므로 갈라진 가정과 교회, 사회, 직장이 화평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불려지는 인정을 받는 일입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을 때, 우리는 삶이 훨씬 가벼웁고 기뻐집니다. 그런데,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내 아들이라 인정받게 될 때 오는 기쁨의 선물은 감히 상상키 어렵습니다. 우리모두는 평화를 만드는 이가 될 수 있는 기질이 있음이 얼마나 큰 놀라움입니까?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호박넝쿨이 조금씩 울타리를 향해 손을 뻗게되면, 새순을 조금씩 자라내라고 권유합니다. 그래야 만이 골고루 순이 뻗쳐 나와 많은 호박을 매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님의 이름 때문에 손해볼 때가 있습니다. 내가 예수 믿음으로 좋은 것으로 부터 양보해야 하고,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육신과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늘 통제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도 회교국들과 북한에서는 예수 믿는 일 때문에 목숨까지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선조들의 핍박받음으로 인해 자손들에게 금보다 귀한 신앙을 자손만대에 물려주게 되었습니다. 비록 육신은 핍박을 받고 빼앗김을 당하며 살았어도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이 한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곳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을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자연의 풍성함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귀를 집중해 보면, 새들의 노래소리와 나뭇잎들의 바람에 산들거리는 소리, 바위 아래 흐르는 샘물의 속삭임, 노루들과 토끼들의 뜀박질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소리들은 이 여름에 들어야 하고 즐겨야 될 하나님의 말씀들입니다. 거기에 우리는 지치고 병든 마음을 씻어야 하고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는 불로초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호사스러움과 향기가, 세상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모든 것들이 가장 하찮아 보이는 자연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 주간에는 상추 속에서 자라고 있는 달팽이를 잊지 말고 잡아주라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텃밭을 나가봐야겠는데, 어떻게 잡아내야 좋을지 조금은 망설여집니다.
– 윤 완희,7/22/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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