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나는 타인을 대신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여기 하나의 목소리가 있을 뿐—
되돌아오며,
자기 자신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아직도 자신의 길을 배워가는 목소리.

슬픔 속에서,
그리고 기쁨이라는 짧은 자비 속에서,
넘어짐과 다시 일어섬 속에서,
하나의 길이 있다—

한 번 선택하고 잊어버리는 길이 아니라,
걸음마다 다시 선택해야 하는 길.

그 나머지 것들—
머물지 못하고 스쳐가는 얼굴들,
올랐다가 사라지는 목소리들.

움직이는 물 위에 흩어진 빛처럼,
부서지고, 잠시 모였다가,
다시 부서지는 것들—

그것들은 남지 않는다.

혹 남는다 해도
다른 방식으로 남는다—
내 안에 품어진 무엇으로.

왜냐하면 내 안에는 많은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불러낸 것도 아니고,
떠나보낸 것도 아니다.

한때 걸었던 길들의 흔적들,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메아리들,
부재가 되기를 거부하는 현존들.

그래서 나는 계속 간다—

확신 때문도 아니고,
어떤 분명한 결론 때문도 아니라,

다만 움직임 자체의
조용한 고집으로.

침묵 속에서.
말들 속에서.

반쯤 기억나는 노래의 조각들 속에서,
꿈이 사라진 뒤에도
꿈이 남겨놓고 간 것들 속에서.

길은 단지 내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발 아래 있고,
내 가슴 안에 있으며,
때로는 내 뒤에도 있다.

소유할 수는 없지만
문득 보이는 하나의 무늬처럼,

지도가 필요 없는 방향처럼—

왜냐하면 그 방향은 이미
걷고 있음 자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빗속을 걷는다—

그리고 빗물은 내 안으로 스며든다.

스쳐 지나가는 날씨로서가 아니라,
천천히 떨어져
결국 내 안에 이르는 무엇으로.

나는 빛 속을 걷는다—

그리고 빛은 머문다.

단순한 밝음으로서가 아니라,
내 안에 거처를 정하는 무엇으로,
낮이 저문 뒤에도
떠나지 않는 무엇으로.

그리하여 바깥과 안쪽은
서로의 자리를 바꾸는 법을 배운다—

마침내 그 둘 사이의 경계선이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릴 때까지.

내가 가리킬 수 있는 끝은 없다.

모든 것을 닫아버리는 전환점도 없다.

길이 처음부터 계속 묻고 있던 질문에
답해주는 도착도 없다.

다만 이것뿐—

계속됨.

내가 선택했다기보다
받아들인 하나의 길.

소유할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는 길.

살아내어지는 길—

그리고 살아감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길.

— 윤태헌, 2026년 5월 6일

Unknown's avatar

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This entry was posted in Poetry. Bookmark the permalink.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