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심한 감정의 오름내림 속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분들과 삶의 끈을 붙들고 함께 살다보면, 목사관의 기후처럼 다양한 곳은 없다고 생각해 봅니다. 어떤 때는 전화 한통화로 웃음을 졌다가, 때로는 울기도 하고, 때로는 일상의 일을 중단한채 뛰어야 하는 등의 일들입니다. 아침에 어느 가정에 아기를 출산했다는 기쁜 소식이 있는가 하면, 오후에 건강하던 분이 입원했다는 소식이라든가, 누군가가 돌아가셨다는 일들입니다. 멀리서 가까이서 들려오는 삶의 특보들은 언제나 긴장을 갖게합니다.
그런데, 요근래는 별다른 특보가 없는 상황인데도 저는 심한 감정의 오르내림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해도 기쁨이 없고 곧잘 짜증이 나서 애들에게도 그렇고 남편에게도, 누구에게든지 매섭고 차겁게 대하는 일을 얼마동안 하며 지냈습니다. 무엇을 해도 안정이 되지않고 화가 잘나고 필요 이상의 감정을 소비하여 마음적으로 지치고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특별히 누구인가 제게 잘못 한 것도 없고, 또한 나쁜 소식을 들은 것도 아니건만, 마음의 날개는 저공을 하고있었습니다.
청취자 분들 앞에 부끄럽고 사모로서 옳치않은 행동이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저는 그 어둔 시간들을 지내면서, 불완전한 저의 나약한 모습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수년 전만 하여도 왠지 화가나거나 감정을 제대로 조절치 못하면, 씩씩거리고 한차례 울고나면 마음이 시원해지고 위로가 될터이지만, 이제는 나이가 먹으니 어린아이와 같이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새벽마다 나아가 기도를 하지만, 영혼은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채, 심한 신음소리 만을 내다가 되돌아 오곤 하였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타일렀습니다. 너는 곧잘, 남앞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과 믿음에 대하여 말하고, 시험받는 이들을 향해 ‘그리스도 이름으로 승리하라’고 하면서, 막상 네 자신이 약해졌을 때는 왜 적용치 못하고 있는가? 왜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토록 냉정하게 쏘아주는가? 너는 지금 자신을 학대하고 파괴하고 있지나 않는가? 너의 신앙은 모든 환경이 대낮처럼 맑고 청명해야 만이 신앙인으로서 살아 갈 수 있는 자가 아닌가 라는 양심의 소리가 제 심령을 울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감정은 한동안 너무나 부정적인 에너지 속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언제 어느때 비바람을 동반한 소나기로 변해버리고 말 먹구름 자체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 이 말씀은 내 영혼에 눈부시게 찾아 들어왔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사람의 겉모습은 다를 수 있지만, 속 모양은 이렇게 누구나 한계가 있고 부족함이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Energy Motion=Emotion), 그것은 에너지의 동작이라고 합니다. 이 감정의 돌팔구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삶의 생산성이 나올 수 있고, 또한 파괴력이 나올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거의 감정의 표현이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니, 있긴 있어도 자라나온 환경에 따라, 감정의 처리를 차단 당한채, 어떻게 자신의 감정을 처리해야 좋을지 모를 따름이지요.
도대체 인간의 존재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이며 불가불 구원이 필요한 존재인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 윤완희, 11/19/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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