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on 8/7/1987 at KCBN
안녕하세요? 여름이면 신록의 푸르름 속에 많은 배움의 기회가 우리 곁에 풍성한 계절입니다. 아이들은 그 동안 학교교실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여행이나 실습을 통해 배우게되고, 어른들도 휴가를 통해서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접하는 기회가 많아지지요? 배운다는 것- 참으로 좋은 것 같아요.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듯이 새로운 것을 알게되면 그만큼 내 생각과 관심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을 경험케 됩니다. 저에게도 이 여름에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한가지를 나눠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지난 8월초에(7/31/97-8/3) 일년에 한번 있는 미 연합 감리교 여선교학교가 있어 Poughkeepsie, N.Y에 있는 Marist 대학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올해도 약 300여명의 뉴욕주 연회에 속한 여선교회원들이 참석을 하게되었답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죽을 때까지 배우고 배워도 인생의 졸업이란 있을 수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전에 알지 못했거나 깨닫지 못한 것들의 새로운 깨달음은 형언 할 수 없는 기쁨과 만족을 가져오게 되지요.
올해 선교학교에서는 성경과목에 있어서는 “여호수아서와 약속의 땅”이였으며, 나라로는 “브라질”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회면으로는 “폭력사회속의 그리스도인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며, 고통 당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과연 우리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 배우게 되었답니다. 또한 선교학교서 언제나 빠짐 없는 주제 중의 하나는 인종차별에 관한 우리의 의식구조에 관한 것이었답니다.
이번에 성경공부의 과목이었던 여호수아서는, 그 동안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복 사로 해석하던 것을 조금 다른 방면으로 연구하고 공부하였었답니다. 즉 여호와의 이름으로 모인 가난한 주변의 유랑인들이 일으킨 농민봉기 사건으로 보면서, 땅의 소유와 회복, 땅의 보존에 조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 곳곳의 가난한 사람들이 땅을 얻고자 투쟁하는 현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특히 여호수아 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첩자들을 숨겨주었던 가나안 땅의 라합이라는 기생이 살아가던 그 시대와, 현대의 어린이 매춘으로 유명한 태국의 예는, 땅이 없는 민중들이 매춘을 마지막 생계수단의 한 방법으로 삼아온 세계 여러 나라의 공통된 문제점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서로의 땅 빼앗기를 하려고 전쟁이 끝이지 않고 일어나는데 그 한 예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일본과 한국의 독도문제, 남아프리카의 흑백 문제, 미 원주민들의 문제, 라틴 아메리카의 농지 운 동등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미원주민의 경우엔 1620년에 프리머츠에 정착한 청교도들에게 방대한 땅을 빼앗기고 주민들이 학살당하는 바람에 백인들은 엄청난 땅들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인디안 들은 개인이 땅을 소유하는 법이 없이 모든 토지는 부족의 소유였으며, 협의회에서 각 가정에게 필요한 만큼 만 땅을 배정하였었습니다. 저들은 땅을 신성하게 취급하여 자신들의 땅에 얽힌 전통과 종교, 삶의 방식을 보존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미 정부는 미원주민 내부 안의 갈등을 부추기고 백인문화에 순화되도록 강요받으며 악용한 결과, 미국의 수많은 민족 중에서 가장 가난하고 처절한 환경의 민족으로 전락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땅의 공정한 분배의 모델을 여호수아 서에 갖고있는 청교도들은 하나님이 유업으로서의 땅의 관리보다는 오히려 땅을 개인소유로 만들면서 미원주민들의 땅을 대부분 폭력에 의해 약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는 소수의 힘있는 자들이 나라의 땅을 차지함으로 대부분의 국민들은 헐벗고 굶주림을 당하고 있는데 브라질의 경우엔 10%의 백인이 90%의 땅을 차지하여 살고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90%의 유색 인구가 10%의 땅을 갖고 나눠 사는 처참한 현실 앞에 땅은 결국 투자나 소수의 탐욕의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서를 통해 배운 것은 하나님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므로 땅의 공정한 분배와 관리는 도덕적인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당한 토지제도와 자원분배는 정의로운 사회의 토대가 된다는 것이 이 성경공부의 주제였습니다.
요근래 통일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중에 북한의 땅에 관한 관심들이 벌써부터 많아지고 있습니다. 과연 남한의 부동산 투기업자들이 북한 땅을 사들이려고 할텐데 북한 땅에 투기 붐이 일어 날 것인가? 아니면 통일 정부는 정의로운 토지 분배를 위해 어떻게 힘 쓸 것인가등이 벌써부터 관심이되고 있습니다.
선교학교에서 또한 중점을 두는 것은 세계 선교의 문을 열어주고, 나라와 인종에 대해 배우게 되고, 사회 역사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여성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감당하고 있답니다. 특히 이 학교에서는 가장 예민하게 취급하는 문제로서 인종차별주의를 어떻게 극복하여 서로가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화합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를 가르치는 일입니다.
흔히 일본인들은 일본에 살고있는 제일 교포를 향해 더럽고 추한 민족이라는 선입감을 갖고 대한답니다. 그래서 재미교포가 그곳을 방문하여 한국말을 쓰면 제일교포인줄 알고 무시하다가 영어를 구사하면 금방 그 태도가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미국에 살건 일본에 살건 간에 한국인들처럼 깔끔하고 정이 많은 민족을 찾기란 쉽지 않은 것을 저들은 모르는 것입니다.
또한 한국인들 중에 한국에 살고있는 화교를 향해 더럽고 인색한 민족이라는 선입감 속에 저들을 대합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대범함과 섬세함, 자국 국민끼리 서로 돕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문만 열고 나가면 여러 민족들과 살아가야 만 하기 때문에 어떤 민족에게 선입감이나 적대감을 갖고있게 되면 절대적인 손해를 보게 된답니다. 적대감의 내면 속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의 내적인 변화를 원치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와 차이점이 나쁘다는 무의식에서 벗어나 서로를 용납하는 일은 성장의 지름길입니다. 차별주의는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질서의 장애가 될 뿐입니다. 우리와 다르다는 것은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갖고 있기에 서로에게 좋은 것을 배울 수 있으며 삶을 더욱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랍니다.
이번 선교학교에 초대된 할렘의 50여명의 흑인복음 무용단으로 부터 특별히 큰 인상을 받게되었습니다. 할렘의 St. Mark 교회 교인들로서 어린 소녀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함께 공연을 하였습니다. 흑인 무용단들은 수년 전에 6명의 소녀들로서 복음 무용단을 구성하여 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일을 감당하고 있는데 현재는 100여명의 단원들이 매주 목요일이면 아침저녁으로 연습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들의 빠른 동작과 열정적인 복음성가에 맞춰 추어지는 춤속에 저들만이 갖고있는 특별한 재능과 은사를 발견 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작년엔 우리 한국어린이 무용단원들의 아름다운 부채춤에 매료되던 저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에 배운 인종차별문제에서 다룬 문제 안에는 소수민족차별, 나이차별, 성차별등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가운데 사람이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듭나지 않고는 올바른 삶을 살수 없음을 닷한번 느끼게 되었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불림 받았다 함은 사회의 아픔을 치료하는 자로 불림 받았으며, 미래를 향해 꿈을 꾸며 계획하는 자로 불림을 받은 이들’이라고 외친 어느 강사의 말씀이 귀에 쟁쟁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처럼 배운다는 것- 역시 사람의 눈을 크게 뜨게 하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라 볼 수 있음에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윤 완희, 8/7/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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