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2026년 6월), 하늘의 책장을 한 장 넘기는 시간보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내 영혼이 자신의 첫 번째 언어를 다시 기억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내일이면 넓은 날개를 펼친 비행기가 다시 나를 태평양 너머로 실어 나를 것입니다.
푸른 언덕이 펼쳐진 테네시로, 또 하나의 집이 조용히 나를 기다리는 곳으로. 그 집의 문은 이미 열려 있고, 나무들은 아직도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두 집 사이에서 나는 마흔여섯 해를 살아왔습니다. 한 나라는 추억이 되고, 또 다른 나라는 날마다 먹는 양식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소속됨이란 둘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사랑처럼 더해져 가는 것임을. 처음 한국을 떠날 때, 나는 조국을 떠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나는 조국을 떠난 것이 아니라, 씨앗처럼 가슴 깊이 품고 살아왔음을. 계절마다, 기도마다, 그리고 내가 써 온 모든 시 속에 그 조국이 살아 있었음을.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내 곁을 함께 걸어가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은빛 몸으로 산을 빛의 화살처럼 가르며 달리는 KTX. 서울과 대구, 부산의 땅 밑을 보이지 않는 강처럼 흘러가는 지하철. 그리고 조용한 언덕길을 천천히 오르는 마을버스. 그곳에서는 할머니들이 지나가는 낯선 이에게도 아직 손을 흔들어 주십니다.
모든 여행은 내 발걸음과 처음 나를 품어 준 이 땅 사이의 대화가 되었습니다. 이 나라는 늙은 무릎에게 참으로 친절해졌습니다. 에스컬레이터는 지친 순례자를 들어 올려 주고, 엘리베이터는 서두르지 않는 노년의 품위를 조용히 존중해 줍니다. 한때는 상상할 수 없던 배려가, 이제는 말없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축복에는 그늘도 함께 있습니다. 아이들은 함께 걸으면서도, 작은 화면의 푸른빛 속에서 저마다 상상의 작은 마을에 머물러 있습니다. 얼굴은 빛으로 환하지만, 마음은 서로를 갈망합니다. 거리는 붐비는데, 마음은 조용합니다.
부산역에서는 열차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마치 불확실한 바다를 향해 그물을 던지는 어부들의 외침처럼 들렸습니다. 번영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합니다. 풍요도 내일의 무게를 압니다.
나는 신촌으로 돌아갔습니다. 내가 태어난 노고산으로. 그러나 그 골목들은 더 이상 내 발걸음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사라진 것은 없었지만,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기억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시간이 보존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아름답게 장소를 남겨 두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태종대에서는 절벽이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 앞에서도 묵묵히 서 있었고, 설악산에서는 소나무들이 말 없는 시편으로 여전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속초의 바다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들려주던 그 오래된 언어를 지금도 말하고 있었습니다.
창조세계는 하나님께서 처음 불러 주신 이름을 잊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든 나는 세계를 만났습니다. 철새처럼 거리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언어들. 이제는 한국을 자신의 조국이라 부르는 새로운 이웃들.
그리고 나는, 바로 이 하늘 아래서 태어났지만, 손에는 거소증(영주권) 카드 하나를 들고 돌아온 사람. 역사의 잔잔한 유머를 미소로 받아들였습니다. 고향도 감사하며 찾아오는 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논쟁하고, 국경은 오래된 상처를 기억하며, 역사는 아직도 절뚝거립니다.
그러나 그 모든 소란 아래에서 하나님은 부활의 일을 조용하고도 끈기 있게 계속하고 계십니다. 재는 추수가 되고, 전쟁은 찬송이 되며, 상처 입은 사람들은 살아 있는 산돌이 됩니다.
내일이면 나는 여행 가방을 닫을 것입니다. 몇 권의 책, 몇 가지 선물, 한국의 여름비 향기를 머금은 여름 옷. 김치, 밥, 국. 어머니 부엌의 그 맛은 아직도 기억 속에서 따뜻하고, 고향을 결코 완전히 떠난 적 없는 아들을 오늘도 먹여 살립니다. 무거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감사뿐입니다.
다시 나는 길을 떠나는 사람입니다. 한 집은 내 뒤에 있고, 또 한 집은 내 앞에 있습니다. 길 자체가 내 주소가 되고, 하늘은 가장 오래된 동행이 되며,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여권이 됩니다. 안녕히, 사랑하는 조국이여.
나를 떠난 사람들 가운데만 기억하지 마십시오. 다시 돌아온 사람, 그리고 또다시 돌아올 사람으로 기억해 주십시오. 사랑은 언제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계절이 이 산들 위에 무르익고, 또 다른 바람이 태평양을 건너오면, 우리는 아무 설명도 없이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작별은 사랑이 조금 더 먼 길을 돌아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윤태헌(서울을 떠나며/2026년 6월 30일)
[TaehunYoon, Knoxville Tennessee USA]

[편십자 주:상기 글은 윤태헌 목사의 시 문체를 그대로, 수필문으로 정리하며 제목도 편집했습니다.
윤태헌 목사 부부는 6월 한 달 동안 한국 방문을 마치고(2026. 6. 1~30.),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애틀랜타를 거쳐 테네시 녹스빌에도착했습니다.(7.1.)./노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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