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일구며

봄을 싣고온 비가 서너차례 뿌려진 후, 집 앞뒤의 잔디밭은 진초록 빛과 향취를 마음껏 토해내며 환희의 찬가를 부른다. 물오른 가지마다 겨울내 숨기고 있었던 그 보송보송한 얼굴들이 하루가 다르게 들어 올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괜시리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한 해의 목사관 생활이 아무리 바쁘고 눈코뜰새 없어도 봄이면 작은 터밭을 일구어 채소를 가꾸고 꽃들을 키우는 일은 내게있어 빠트릴 수 없는 년중 행사의 하나이다. 뿌린대로 자라고 심은대로 거둬들이는 자연과의 묵계는 내게 무한한 기쁨과 정신적인 쉬임을 갖게한다. 올해는 새 목사관 주변에 무엇을 심을까 궁리하던 중, 일년생 화초보다는 한번 심어두면 해마다 피어나는 넝쿨 장미와 포도나무를 심기로 작정하여 묘목을 주문하였더니, 몇주만에 소포가 도착하였다. 흥분한 마음으로 도착한 포장지를 뜯으며, 빨강색과 노랑색 흰색의 넝쿨장미가 어우러져 목사관을 덮은 모습을 상상한다. 그 진한 향기가 어느새 창문을 넘나드는 것 만 같아 콧노래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모양새가 거칠고 왜소해 보이는 포도나무 묘목을 옮기며 주렁주렁 열려질 탐스러운 포도송이들이 어느새 두손으로 움켜쥘 것 만 같아 솔로몬 왕의 정원이 부럽지가 않은 부유한 마음 으로 가득찬다.

일년에 한번 흙을 일구는 일은 경쾌한 일이다. 발에 힘을 주어 힘껏 삽질을 한 후 흙을 뒤엎을 때면, 늦잠을 즐기던 분홍색 지렁이들의 혼비백산한 꿈틀거림은 안스럽기도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지렁이 뿐 만이 아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미생물들이 갑짜기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에 놀라 칙칙한 어둠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들을 볼땐 흙속에 생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생물체 하나하나까지도 돌보시며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자상하신 손길을 엿보게 된다. 흙을 통한 하나님의 미래의 약속은 언제나 틀림없다. 한알의 씨앗의 생명체가 일만년 이상을 간다는 과학자들의 증거가 아니더라도 흙속에 묻어두신 생명체의 신비는 산천초목에 축복의 잔으로 이미 넘쳐 흐르고 있다.

그동안 수년간을 일년생 꽃들과 채소들을 목사관 주변에 심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까지는 만족할 만큼 아름다운 꽃송이를 피운다거나, 탐스러운 열매들을 거두지를 못했다. 정성을 기울여 돌보았어도 겨우 미안하지 않을 정도의 연약한 꽃송이들과 열매 없이 잎파리만 무성하다만 호박이나, 뒤늦게 연 익지않은 토마토의 시퍼렇고 뻣뻣한 떯은 맛들은 봄부터 여름내내 정성을 기울여 물을 주던 나에게 적잖은 실망을 주곤하였다. 그리곤 혼잣말로 늘, ‘이 땅은 거친 땅이야! 전혀 거름기라곤 없는 척박한 땅이니 열매가 있을수 없지!’ 하며 실망했다. 어느날, 교인 가운데 “초록의 엄지 손가락”이란 별명이 붙은 분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 분에게서 비법을 배웠다. 그 분의 집에는 늘 싱싱한 채소와 아름다운 꽃들이 무성하여 이웃들도 여름이면 그분의 밭에서 자란 채소들과 꽃들을 한번쯤은 선물 받기가 일쑤였다. 그분의 말씀은 가을이되면 이미 내년엔 무엇을 어디에 심을지 미리 구상을 하여 씨들을 주문한단다. 그리고 여름내내 영양분을 빼앗긴 땅을 위해, 초겨울에 퇴비를

사다가 골고루 흙과 섞어 뿌린다음 겨울내내 충분히 쉬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봄이 오면 햇볕이 많이 필요한 식물들과, 햇볕이 종일 내려쬐지 않아도 잘자라는 식물들을 구분하여 그 땅에 심어 주고 정기적으로 물과 비료를 충분히 주면 별 어려움없이 잘자란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주님을 믿노라면서 말씀과 기도가 없어, 거두지 못할 열매들과 꽃피우지 못할 일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헛수고와 땀을 흘리었던가? 황폐한 내 삶의 정원에 이것저것 심고, 굶주린 심령 위에 풍요를 기대한들 무엇을 거둘 수 있으리요? 하루에도 수 많은 전화와 만남은 우리를 언어의 홍수속으로 밀어넣는다. 그러나, 진정한 언어와 서로간에 진정 꼭 필요한 말들과 축복의 말은 얼마나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가?

올해도 봄은 이상한 신비를 담고 우리를 찾아 주었다. 집안에 만 있던 사람은 따스한 햇볕 아래 걷기를 원한다. 사람마다 사랑하고픈 뜨거운 열정이 솟는다. 축축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서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사랑의 노래를 불러보고 싶어한다. 온 누리에 새 생명의 출발을 알리는 이 봄, 나의 인생의 봄은 몇번 남아 있을까? 손꼽아 세어보며 분주한 일상에서 나의 “삶의 터밭”을 돌아본다. 그리고 흙속에 숨어 있는 생명의 신비와 보화를 캐듯, 내속에 숨어 아직도 겨울 잠을 자고 있는, 하나님의 신비를 이 봄엔 캐어 내리라. 그리고, 이 봄에 내 생에 가장 아름답고 탐스러운 그 한송이의 꽃을 기다리며 봄을 일구어 본다.

– 윤 완희, <1994년 4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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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od Shepherd of a Small Flock”

In Memory of the Late Rev. Jae‑Sik Jang

“Please forgive the small amount… I send this offering with the hope that it may help in some way. I pray that God’s great grace and blessing will restore Rev. Jang’s health, and that joy may fill his family, bringing glory to God.” — An anonymous believer in New York

“We were saddened to hear the news of Rev. Jang’s condition. We pray for the Lord’s healing work to be upon him.” — Korean American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Thank you for giving your precious time and effort to help Rev. Jang. Your care and devotion will surely be a source of strength to him and his family.” — Northern Illinois Conference

“We pray that the healing gifts of Jesus Christ will rest upon Rev. Jang.” — General Board of Higher Education and Ministry

“When Rev. Jang was suffering, we prayed that God would lessen his pain, and if possible, grant the miracle of recovery. With this small offering, our family continues to remember him in prayer.” — Rev. H.

Last December, a request for prayer and support for Rev. Jae‑Sik Jang—who had been diagnosed with leukemia—was sent to United Methodist churches across the United States by the Korean Caucus of the New York Annual Conference. Though many had never met him or even heard his name, the news of a young pastor’s struggle stirred hearts across the country. Love poured in like a flood—letters, offerings, and prayers from every direction. Through this outpouring, we were reminded that we are indeed one body in Christ, and that the world is still a profoundly beautiful place.

Rev. Jang’s leukemia was discovered the previous summer. Normally healthy and full of energy, he visited a clinic for what seemed like a lingering cold—only to receive the devastating diagnosis. He was immediately admitted to Yale University Hospital in New Haven, Connecticut.

When the Korean Caucus of the New York Conference first heard the news, many pastors were unfamiliar with his name. Rev. Jang was a full member of the Alabama Conference, serving a mission church under the Northeastern Jurisdiction. Yet the shared conviction that pastors must care for pastors quickly united the group. At the November meeting, the caucus decided to organize a benefit concert to help cover medical expenses, especially since his insurance was set to expire in October 1999.

Finding musicians on short notice was not easy. But Rev. Jae‑Sook Lee—who had been ordained as a Permanent Deacon earlier that year—immediately volunteered. Before entering ministry, she had been an opera singer, a graduate of the Boston Conservatory, a choral conductor, soloist, and prima donna. Honoring her father’s dying wish, she had chosen the path of ministry, and she understood suffering and calling more deeply than most. Out of gratitude to God for calling her into ministry, she offered to perform at the benefit concert at her own expense. As a soloist, she poured herself into the event—singing, organizing, and tirelessly gathering support—deeply moving all who attended.

On that cold winter evening, church members and pastors from New York, New Jersey, Connecticut, and beyond gathered with one hope: the healing of a young pastor. Their prayers warmed the night. Through letters and offerings from churches large and small across the nation, nearly $35,000 was raised—an extraordinary expression of love.

But who can delay the call of God? Just two days after the benefit concert, on December 14, Rev. Jae‑Sik Jang answered the Lord’s call and departed this world at the age of forty.

Who was Rev. Jang?

According to The Centennial History of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es in America, Vol. 3, he was born on September 25, 1959, in a Christian family in Daegu. He received probationary membership in the Tennessee Conference in 1991. He came to the United States in 1987 and is survived by his wife, Jung‑Mi Park, and their daughter, I‑Rang (age 10). He graduated from Yonsei University (B.Th., 1986), Vanderbilt Divinity School (M.Div., 1990), and Harvard Divinity School (STM, 1995–1997). His ministry included service at Nashville Korean Church (1987–1990), Birmingham Korean UMC in Alabama (1990–1991), and from 1991 until his passing, Grace Korean UMC. He also served the North American Christian Scholars Association as general secretary, treasurer, and clerk. His ministry philosophy was “faith working through love” (Gal. 5:6), and he had a deep interest in contextual and comparative theology. His dream for ministry in the new millennium was to develop a “cultural ministry” rooted in Korean heritage and local sensibilities. His writings include What Did You Go Out into the Wilderness to See? (Meditations on Matthew) and The Sea of Galilee.

Those who knew him describe him as a pastor of rare purity and sincerity. Fairfield, Connecticut—an hour from New York City—had very few Koreans, and Sunday worship drew about twenty‑five adults. Yet Rev. Jang served his small flock with the devotion of a shepherd caring for a hundred. He invested deeply in education, service, and mission training, faithfully following the theology and spirit of John Wesley. He especially encouraged women’s ministry, sending members to mission schools and leadership trainings, believing that women’s leadership would help heal a broken world. His life reflected the life of Jesus—quiet, humble, and steadfast. Truly, he was a great shepherd of a small flock, leaving a lasting imprint on the hearts of those he served. In a world full of leaders, he showed what true leadership looks like.

All the love and support gathered from churches across denominations was delivered to his wife, Jung‑Mi Park, and their daughter, I‑Rang. To the New York Conference and to every church, pastor, and believer who opened their hearts in prayer and generosity, we offer our deepest gratitude. The pure and beautiful life of this young pastor—who answered God’s call with sincerity and faithfulness—will echo in our hearts for a long time.

Rev. Tae‑Hun Yoon, January 16, 2000, President, Korean Caucus of the New York Annual Conference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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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목장의 선한 목자

– 고 장재식 목사를 기리며…

“제번 하옵고… 작은 것이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보내드립니다. 장목사님과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 속에 건강이 회복되시며, 가족들에게는 큰 기쁨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길 기도합니다… <뉴욕의 무명씨>

“지상으로 장목사님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주님의 치유의 역사가 있으시길 기도합니다… <미주 한인예수교 장로회>”

“장목사님을 돕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 애쓰시는 모습 감사하옵고, 그 위하는 마음과 모습자체가 장목사님과 가족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북일리노이즈 연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 하시는 치유의 은사가 장 목사님 위에 함께 하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총회 고등교육 성직부>”

“장목사님이 투병하실 때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해주시고, 가능하시면, 쾌유의 기적을 보여주시기만을 이 작은 정성과 함께, 저희 가족들의 기도 속에 늘 기억합니다. <H 목사>

지난해 12월, 전국 미연합감리교회 앞으로, 백혈병을 앓고 있는 장재식 목사의 쾌유를 위한, 사랑의 기도와 후원 요청이, 뉴욕연회 한인교회 협의회로 부터 전해지게 되었다. 비록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던 젊은 목회자의 투병 소식을 접한 이들의 가슴은, 안타까움으로 저들의 사랑을 전하는데 주저함 없이, 전국곳곳에서 봇물처럼 전해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사랑의 손길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하나의 연합된 몸임을 확인 할 수 있었으며, 세상은 아직도 참 아름다운 곳임을, 우리 모두는 체험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고 장재식 목사님의 백혈병이 발견 된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평소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목사님이, 감기기운이 영 개운하게 낫지를 않아, 가볍게 병원을 들렸다가, 주치의로부터 백혈병이라는 청천벽락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후, 곧 바로 코넷티컷의 뉴헤이븐의 예일 대학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뉴욕연회 한인교회 협의회에서는, 처음 장재식 목사님의 투병소식을 접하게 되자, 대부분의 목사님들에게는 낯선 이름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장목사님은 알라바마 연회 정회원이였으며, 교회는 동북부 선교구에 속한 선교교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목회자는, 목회자들이 돌봐야 된다는 합심된 마음은, 작년 11월달 협의회 모임에서 안건으로 수렴이 되었다. 그리고, 협의회에서는 장목사님의 보험이 만료되는(10/99) 시기를 속히 맞추어, 의료비를 도울 수 있는 후원음악회가 결정이 된 것이었다.

짧은 시일 안에 음악인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지난 해 6월에 목사안수(Permernant Deacon)를 받으신 이재숙 목사님이 선뜻 응하게 되어, 음악회를 속히 추진하게 되었다. 특히 이재숙 목사님은, 목사안수 받기 전에 오페라 싱어로서, 보스턴 음악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합창지휘자, 독창자이며 오페라의 프리마돈나로 활약하시던 성악가이셨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목사의 길을 택하신 이재숙 목사님은, 과거의 훈련과 아픔, 고난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시는 분이었다. 이 목사님은 자신을 불러 목사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장목사님의 후원음악회에, 자비로 선뜻 연주하시게 되었음을 고백하셨다. 특별히 독창자로서, 음악회 준비의 여러 가지 미비한 가운데서도 몸을 아끼지 않고, 후원금을 모으는 일과, 진행에도 헌신적인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음으로,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음악회에는, 뉴욕과 뉴져지, 코넷티컷등의 인근각지에서 모여든 교우들과 각 교회의 목사님들은, 젊은 목회자의 쾌유를 위한 안타까운 기도와 바램 한가지로 그 추운 겨울저녁을 뜨겁게 녹여나가게 되었다. 그 결과, 전국각지의 작은 교회, 큰 교회서 전해진 정성과 사랑의, 기도를 담은 편지와 후원헌금은 약 $35,000로 요근래 보기 드문, 후원헌금을 모금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누군들 지체할 수 있으랴! 안타깝게도 후원음악회가 있은 지, 이틀만인 12월 14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장재식 목사님은, 40세의 짧은 생애를 접은 신 채, 우리 곁을 서둘러 떠나게 되셨다.

장재식 목사님- 그분은 누구였는가? 고 장재식 목사님의 소개를 <미주 한인감리교회 백년사 제 3권>을 인용하면, 목사님은 대구의 기독교 가정에서 1959년 9월 25일에 태어났다. 미연합감리교회 테네시 연회에서 1991년도에 준회원 안수를 받았다. 1987년부터 미국에 거주하였고 가족으로는 박정미 사모와 이랑(딸. 10살)이가 있다. 장목사님은 1986년 연세대 신학과, 1990년 밴더빌트 대학 신학부(목회학 석사), 1995-1997 하버드 대학 신학부(STM)를 마쳤다. 목회 활동으로는 내쉬빌 한인교회( 1987-1990), 알라바마 버밍햄 한인연합감리교회(1990-1991)에서 시무 한바 있으며, 1991년 – 사망직전까지 그레이스 한인연합감리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다. 사회봉사 및 후세교육의 일환으로 북미주 기독학자회 총무, 회계, 서기직을 역임했다. 목회철학은 “사랑으로 역사 하는 믿음” (갈5:6)이며, 토착화 신학과 종교신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2천년대 목회의 꿈은 문화목회를 이루는 것으로, 한국문화와 토착정서를 접목한 목회를 하기 원했다. 저서로서는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마태복음 명상록)” “갈릴리 바다”가 있는 것으로 소개 되어있다.

장목사님을 가까이 알고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게되면, 그 분은 목회자로서 너무나 맑고 진솔한 삶을 사신 분으로 평가되고 있다. 코넷티컷의 페어필드(Fairfield, C.T) 지역은, 뉴욕 시에서 한시간 정도 들어가는 지역으로서, 한인인구가 거의 없는 곳이었다. 주일예배에는 약 25명 정도의 장년교우가 참석하는 교회를 시무 하셨다. 자신에게 주어진 목장을 섬기는 일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목회 하는 가운데, 교우 한 사람 한사람을, 일당백으로 섬기며, 교육과 봉사, 선교훈련 뿐만이 아니라, 요한웨슬리 목사의 신학과 노선을 철저하게 따른 분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목사님은 여선교회원들을, 연회의 선교학교와 각종 임원 훈련 등에 빠짐없이 보내어, 여성들의 선교사역을 통해, 병들어 가고 있는 인류사회를 이끌어 나가도록, 여선교회원들의 교육과 의식변화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셨다. 평소의 삶 속에, 예수님의 생애를 닮고 따르려는 그의 삶은, 분명 작은 목장의 큰 목자로서의, 남은 이들의 가슴에 큰 파문을 그리시며 떠나 가셨다. 지도자는 많으나 정녕 진정한 지도자의 삶이 무엇인가를, 묵묵히 삶으로 보여주셨던 고 장재식 목사님.

그 동안 교회와 교파를 초월한 모든 이들의 사랑의 손길은, 고인의 유가족인 박정미 사모님과, 딸, 이랑이게 전해졌다. 한 젊은 목회자를 위해 사랑의 가슴을 열고, 기도와 헌금으로 후원해 주신, 뉴욕연회를 비롯한 전국의 모든 교회와 성도님들, 목사님들께 정중한 감사를 드린다. 한 영혼이 하나님 앞에 소명을 받고, 진실과 성실로 응답하며 살았던 그 맑고 아름다운 모습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오래도록 공명 될 것이다.

윤 태헌 목사, 1/16/2000, (뉴욕연회 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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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a Rainy Morning

As if everyone had left,
the neighboring campers,
a couple,
vanished.

Without a word of farewell,
rain drops fell
onto the crowded tents,
making an unexpectedly loud sound.

Surely they, too,
must have departed
from the sky
without a word of greeting.

Our conversations were always like that.

When someone leaves,
it is only then
that we notice
the friend who has arrived—
a habit unique to humans.

The cloudy sky,
occasionally breaking,
does not mind
as I quietly shift my place.

And so
the vast heart of God
welcomes arrivals and departures alike—
an endlessly silent
morning rain.

—Yoon Tae-Hun, August 18,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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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아침에

모두들 떠나 듯

옆자리 캠퍼 부부가

사라져갔다

인사도 없이

줄줄이 들어찬 나누들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무척이나 요란한 소리를 낸다

그렇게 하늘에서

인사도 없이 떠나왔으리라

우리의 대화는 늘 그랬다.

떠나가면

이미

찾아온 친구를

그제서야 맞아 들이는 건

사람 만이 하는 습성

간간이 열린

흐린 하늘은

흐흐는 내가

소리없이 자리를 옮겨가도

섭섭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넓은 하나님의 가슴은 언제라도

오고 가도

늘 품속

소리없이 내리는 아침이어라

– 윤 태헌, 8/18/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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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Valentines”

A hidden Valentine of the twentieth century—
its root descends
into a winter day of the third century,
February fourteen,
where Saint Valentine of Rome
fell in silence,
refusing the machinery of war,
binding men instead
to love,
to marriage,
to fragile households of hope.

Time does not move forward.
It circles.
It descends.
It waits.

September 13, 1980—
across the narrow waters of the Korea Strait,
Kim Dae-jung returned,
and stood before the tribunal of fear.
The sentence: death.
The echo: history holding its breath.

November 9, 1967—
Dongbaekrim.
A courtroom heavy with accusation.
Jeong Ha-ryong, Yun I-sang, and four others—
their names suspended
between life and extinction.
December 3rd:
life imprisonment,
a postponement of silence.

History does not lose meaning.
It only waits
to be spoken by tomorrow.

“What then,”
asks Jeong Ha-ryong,
“must we do—
for the future?”

From the potato stones of Gangwon,
through Gyeonggi and Seoul,
to Paris—
through interrogation, exile,
and the echoing corridors of Europe—
the Legion of Honor
rests lightly upon his shoulders,
as though apology itself
has learned to bow.

And afterward,
stepping into the quiet hallway of time,
he draws light—
sketching the twentieth century
in trembling lines,
where suffering becomes witness,
and witness becomes prayer.

Today,
Kim Dae-jung,
Jeong Ha-ryong—
their lives are soil,
dark, broken, fertile.
We stand upon them
without knowing
the depth beneath our feet.

On the Korean Peninsula,
a sacred current flows—
from Sindansu,
through Hongshan,
through blood, text, field, and stone.
Politics and scholarship collide.
Commerce and leadership strain uphill.
Contradictions carve valleys
deep enough
to hide entire generations.

Yet still,
the river insists.

Toward a united Korea,
a rational and moral turning—
reconciliation
moving like irreversible water
from Manchuria’s plains
to Hallabong’s crest,
until even the earth
learns the grammar of peace.

Here—
now—
in this small pause of history,
the hidden truth breathes:
the intertwined roots
of Kim Dae-jung
and Jeong Ha-ryong.

Not memory,
but seed.

Not past,
but promise.

TaeHun Yoon, February 1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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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발렌타인

20세기의 숨겨진 발렌타인—
그 뿌리는
3세기 한겨울의 하루,
2월 14일로 내려간다.
로마의 성 발렌티노,
그는 전쟁의 명령 앞에서
침묵으로 쓰러졌고,
사람들을
죽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결혼으로,
연약한 희망의 가정으로
묶었다.

때론 시간이 앞으로 가지 않는다.
그것은
되돌고,
가라앉고,
기다린다.

1980년 9월 13일—
대한해협을 건너
김대중은 돌아와
공포의 재판정 앞에 섰다.
선고: 사형.
메아리:
숨을 멈춘 역사.

1967년 11월 9일—
동백림 사건.
무거운 고발의 공기.
정하룡, 윤이상, 그리고 네 사람—
그 이름들은
생과 소멸 사이에
매달렸다.
12월 3일:
무기징역,
침묵의 유예.

역사는
의미를 잃지 않는다.
다만
내일이 말해주기를
기다릴 뿐.

“그렇다면,”
정하룡은 묻는다,
“우리는
내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강원의 감자바위에서,
경기와 서울을 지나
파리로—
심문과 추방,
유럽의 긴 회랑을 건너
프랑스 정부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이
그의 어깨 위에
가볍게 놓인다,
마치
사과가
고개를 숙인 듯.

그리고 그는
역사의 고요한 복도로 들어가
빛을 그린다—
20세기를
떨리는 선으로,
고통이 증언이 되고,
증언이 기도가 되는
그 자리에서.

오늘,
김대중과
정하룡—
그들의 삶은
어두운 흙,
부서진 흙,
그러나
비옥한 흙.
우리는
그 위에 서 있으면서도
발아래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한반도 위로
성스러운 물결이 흐른다—
신단수에서,
홍산 문화를 지나
피와 글과
밭과 돌을 통과하여.
정치와 학문이 충돌하고,
경제와 지도력이
산등성이를 오른다.
모순과 갈등은
세대를 숨길 만큼
깊은 골짜기를 판다.

그럼에도
강물은
멈추지 않는다.

통일된 한국을 향하여,
이성적이며 도덕적인 전환—
화해는
거스를 수 없는 강이 되어
만주의 평원에서
한라봉의 능선까지 흐르고,
마침내
온 세상 땅마저
평화의 문법을
배우게 하리라.

여기—
지금—
역사의 작은 멈춤 속에서
숨겨진 진실이
조용히 숨 쉰다:
김대중과
정하룡,
그 얽힌 뿌리.

기억이 아니라,
씨앗으로.

과거가 아니라,
약속으로.

— 윤 태헌
2026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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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from the Campground

A roar
came running from very far away,
crossing ridge after ridge,
like someone searching for home,
and crashed into my chest.

Ah—
the scattered houses
embedded far below,
which last night
were starlight.

Carrying their homes on their backs,
migratory campers
settle and resettle—
where is their heart
today?

Where has the sky gone
that was scraped against the ground?

Wives and children left somewhere,
men follow foreign roads alone,
go out to work from dawn,
and when asked in the evening
say only,
“I’m just tired.”

Retired households,
families that return with the seasons—
see you again
next season…

People living
like oil lamps flickering out,
while ridgelines
come running,
clutching one another.

All night
that roar
shook our tent
and wept.

On the road we left behind,
the wind’s edge—
still, gratitude remains
in the heart of God.

—Yoon Tae-Hun, Richmondville, New York, August 15,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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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장의 전망

함성은

아주 멀리서 부터

능선들을 넘어

고향을 찾듯이

내 가슴으로 달려들었다.

아 점점이

저 아래들어 박혀

간간이 보이는 집들이

간 밤에는

별빛들이였다

집을 등에 업고

이리 저리 자리 매기는

철새 캠퍼들의

가슴은

오늘은 어디에 있을가?

바닥에 갈렸던

하늘도 어디로 갔나?

부인과 아이들은

어디에두고

홀로 타향 따라

새벽부터 나가 일하고는

저녁에 물으면

“피곤할 뿐입니다.”

은퇴한 가정의 집

계절 따라 찾아드는 가족

다음 계절에 더시봐요 … …

호롱불이 꺼져가듯 사는 이들

고리를 잡고

달려오는 능선들

밤새

그 함성는

우리 천막을 흔들며

울고 있었던 걸

떠난 길에서

바람결 곁이

그래도 감사는 하나님 마음

– 윤 태헌, – 뉴욕, 리치몬드빌, 8/15/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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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하며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올해도 당신의 은총의 손바닥에 올려졌던 우리의 지나간 날들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영원한 당신의 생명 책에 기록된 나날들, 돌아보며 무릎꿇고 경건한 참회의 기도를 드리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용서하옵소서! 당신께서 깊은 곳으로 그물을 치라 할 때, 알량한 상식과 지식으로 두려워하여 고개를 저었습니다. 결국엔 당신의 풍요 곁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채 빈배를 안고 살아왔습니다. 당신께 감사함으로 제물을 드려야 할 때에 약한 것 상한 것을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갈 길을 모른 채 믿음의 길을 걸라 하실 때 그 자리에서 얼른 떠나지 못하고 주저하다가 세월을 허비하고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필요한 것 찾고 계실 때, 못들은 척, 없는 척, 못 본척 하였습니다. 저희들 세월의 바람 속에 꺾이고 아팠던 시간들, 이제는 당신의 손길에 어루만짐을 원하오니 오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해가 잃어버린 또 하나의 삶의 페이지가 되지 않기를 원하옵니다. 저희를 권고하사 새해엔 방관자의 삶이 아닌, 주인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어둡고 절망적이거나 화려하고 사치한 외형적인 것이 아닌, 어둠 속에서 일어서는 소망과 인내, 검소함과 최소한의 것을 갖고 즐기고 기뻐 할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이 내 삶의 마감일 이라는 깨어남 속에 보람과 기쁨 속에 가치 있는 생애를 살아 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시옵소서, 일출 하는 태양처럼 새롭게 출발하게 하옵소서. 끝없는 창공을 향해 날개를 펼쳐나가는 독수리의 날개처럼 새로운 벅찬 새해를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해마다 이 때가 오면 우리 모두의 가슴은 비장해지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마지막 1997년도의 삶의 책장을 덮으며, 잠시나마 세월의 무상함과 새해에 대한 포부를 그려봅니다.

한 해를 잘 살았으면 잘 살아온 대로 아쉬운 분도 있는가 하면, 또는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아왔다면 또한 이해를 빨리 넘기고 싶은 분들도 계실 터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 우리가 살아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것은 거룩한 일이지요.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것, 미련을 떨쳐보낼 수 있고, 어둠을 몰아낼 수 있고,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것. 그리고 모두가 인생의 출발점에 서서 미래를 향해 ‘출발!’이라는 신호탄 소리를 들으며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일- 사람만이 느끼고 경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삶에 일년이라는 숫자의 마감이 없다면 우리의 미래는 얼마나 허허로울까 생각해봅니다. 하루를 마감하고 한 달을 마감하고, 일년을 마감하고, 일생을 마감한다라는 말은 계수 한다라는 말과 어쩌면 동일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1997년 새해가 밝았을 때, 타임스퀘어(N. Y)에서 내려오는 빅 애플을 함께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환호성을 지으며 박수와 포옹을 하며 새해에 걸어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뜻하지 않게 이 해가 다 마무리 짖기 전에,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보내야 만 되기도 했습니다. 가까이는 가족들이 있으며 세계를 슬픔의 도가니에 몰아 넣었던 아름다움의 화신 다이아나 공주,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였던 테레사 수녀, 살아있는 순교자로 일컫던 안이숙 사모… 그가 젊었던지 노쇠하였든지, 유명하든지 무명하든지 그 분들은 이 해를 다 채우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 채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살아남아 또 한해를 마감하는 시간의 정점에 서게되었습니다.

우리는 묵은해를 바라보며 연민과, 후회의 아듀를 보냅니다. 그리고 내게 주어졌던 시간들을 과연 어떻게 잘 유용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로랄드 그래햄은 AT&T Bell 회사의 유명한 수학자로 세계를 오가는 바쁜 시간 속에서 사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없다고 한번도 불평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답니다. 그는 지나간 40년동안 중국에 대해 대학원 공부를 하였고, 피아노를 배웠으며, 공을 양손으로 돌려가며 던지는 요술을 배웠습니다. 수천 마일을 여행하며 비행기 안에서 많은 글을 쓰기도 했다합니다. 그는 그 많은 일을 하면서 말하기를 “시작을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좌우명을 갖고 산답니다. 사실 시간을 잘못 쓰는 분들이 늘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지만, 시간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이용하는 사람들은 단 한번도 시간이 없다고 불평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미 1997년이라는 시간은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제는 좀더 구체적이고 새로운 계획과 방향을 위해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그러나 “세초부터 새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 11:12)”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눈길은 내일도 변함없이 우리를 주시하고 계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나름대로의 계획과 목적을 세울 수는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계획을 포기하고, 우리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삶을 기다리는 자세로 새해를 맞아야 한다”라고 말한 Joseph Campbell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계획… 이것들로 인해 묵은해에 가졌던 실패를 돌아봅니다. “너는 미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5-6)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 (잠5:21)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 시니라” (잠 16:9) 이 말씀들은 이 해를 마감하면서 다시 한번 돌이켜 보고픈 말씀들이지요.

“하나님은 저를 버리셨나봐요!” 어느 날, 어느 성도님이 오랫동안 소식이 없다가 전화를 주시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묻습니다. “왜냐고요? 전 올해에도 제 마음대로 된 것이 없었어요! 좀 잘해보려 마음을 먹었는데 애 엄마 가 병이 들고 사업이 안되어, 매 꾸려 하니 빚만 늘고… 제가 돈을 잘 벌면 우리 가정도 좋고, 교회에도 헌금을 많이 내서 좋잖아요? 그런데, 올해 제 사업은 엉망이었거든요! 하나님은 저를 버리신 것 같습니다” 라고 하나님께 푸념하는 소리를 하였습니다.

저는 성도님께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버리지 않으시지요! 성경에 여호와의 신이 떠난 사람은 사울 이라는 이스라엘의 첫 왕이었는데, 그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멸시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버렸다고는 기록이 되어있어도,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일은 있을 수 없지요! 오히려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은 찾아오셨고, 예수님의 예화 중에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 99마리를 놔두고 한 마리를 찾아 나서시는 사랑을 기억하셔야되지요!” 저는 성도님께 이 말을 하면서도 그의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참으로 어둡고 추운 시간입니다. 우리의 가는 곳마다 문이 닫혀있는 고통스런 경험과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은 닫혀진 문을 여시고, 막혀진 길에 대로를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연말이라는 시간 참으로 귀한 순간입니다. 삶의 안이함 속에 있는 우리를 깨우사 머잖아 저물어들, 삶의 밤을 기억하고 자고에 빠진 우리를 건지시기 위하여 경종을 주시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새해의 종소리가 이 땅에 울려 퍼집니다. 이름 만 들어도 눈이 부셔옵니다. 가슴이 뜁니다. 신선한 풀잎과 같이 돋아나는 시간들이 교향곡 같이 잔잔하게 묻혀 들어옴을 감지합니다. 이 거룩한 시간에 우리 모두는 평등하게 걸어들어 갈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무리 절망과 아픔 속에 묵은해를 살았을 지어도 새해엔 이 모든 것을 털어 버리고 새영과 새마음을 갖고 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우리는 과거에 묶여있는 나쁜 습관들과 두려움을 새해라는 시간의 정점에 서서 과감히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새해라는 깨끗한 백지 위에, 우리의 삶을 새롭게 그릴 수 있는 은총의 크레용을 주시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잘 사용 만 하면 오색찬란한 그림과 함께, 온갖 여백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꽃의 향기로, 신선한 바람으로 채울 수 있는 멋진 작품을 남길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무슨 크레용을 손에 잡느냐에 따라 우리의 작품은 달라집니다. 절망의 어두운 크레용으로 새해의 흰도와지를 채울 것입니까? 아니면, 소망의 초록과 무지개의 오색으로 새해를 채울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시편 100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1997년을 보내고 1998년을 맞이하는 문전에서 모든 청취자들게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시는 한해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윤 완희, < 1997년 12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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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in Essay by WanHee Yoon, faith-column, Live Broadcasting |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