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이야

사랑하는 영주, 영범아!

이 겨울에 너희들의 영혼 속에 불어닥치는 있는 회호리 바람을 무엇으로 막아주고 감싸줄 수 있겠니? 너무나

엄청난 현실 속에 망연자실하게 울고있는 너희들을 떼어 놓고 떠나온 엄마의 갈갈이 찢겨진 심정의 고통을 억제

할 수 없구나! 아버지를 잃은 상처받은 너희들의 가슴이 아직도 파득거리는데, 그 아픔 위에 더 큰 아픔을

얹어주게 되었음에 이 엄마의 애통함을 어찌다 표현하랴!

지금부터 6 년전, 우리가 살던 한국 땅을 떠나올때 너희들은 11살, 9살의 어린 나이였었지. 나와 너희 엄마는 좀더

원대한 삶과 꿈을 갖이고 이 꿈의 나라라 불리는 미국 땅에 새로운 꿈을 심기 위해 설레이며 이땅에

도착했었단다.

그때, 나는 이 땅이 한국에서 상상하던 만큼은 쉽지 않은 나라 임을 몸소 깨닫고 부딪치며 우리 가족의 뿌리를

내리기에 밤낮으로 애를 썼었단다. 이미 세계의 경제가 70년, 80년대초의 호황경제가 아닌,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가 서로 몸부리치는 경쟁 속에 있던 때였던 만큼, 엄마와 아빠는 하루 12시간 이상의 일을 감당하면서 살아야

되었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희들이 건강하게 자라나며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있음을 생각 할때,

하루의 피곤과 어려움이 오히려 보람으로 느껴지며,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단다.

영주야, 영범아! 이 아빠는 어느날, 이 땅 위에서의 꿈을 빨리 앞당겨 봐야되겠다는 갈등 속에 한국신문의

구직란을 넘기고 있었단다. 그때 나의 눈에 들어오는 “석면제거 작업” 이라는 눈에 익지 않은 글이 들어오기에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었단다. 일의 조건은 높은 보수와 함께 작업상의 위험이 있다는 광고였었단다. 이 아빠는

밤잠을 못자며 고만하기 시작하였단다. 너희 엄마에게 의논하면 보나마나 반대 할 것임을 안 나는 엄마에게도 말

할 수 없었단다. 그러나, 천진난만하게 자라고 있는 너희들에게 이 땅에서의 남부럽지 않은 삶을 언약해 주고

싶었단다. 영주야, 영범아! 아빠는 아무도 모르게 생명의 도박을 시작했던거야. 이 아빠는 자신에게 약속했었단다.

그 일은 잠시하고 손을 빨리 놓으리라고! 아빠는 매일 매일 작업장에 나가서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방독면을

입고 석면이 날리는 먼지나는 작업 장에서 일할 때마다 “이젠 오늘로 그만두어야지!” 하고 말하며 견딜 수 있었어.

그러나, 언제부터였는지 그 무거운 노랑빛의 작업복을 입고 벗을 때마다 내 생명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음을

직감 할 수 있었단다. 그동안 설마하고 의심하던 일이 사실로 닥아선 것이었어!

지금부터 약 4년전, 어느날 몸의 이상을 느끼며, 너희들의 곤히 잠들어있는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이 아빠는

모래알이 되어 산산히 흩어져 버리는 “우리의 꿈”을 안고 통곡할 수 밖에 없었단다. 언젠가 너희들을 데리고

바닷가에 나가서 만들었던 바닷가의 “두꺼비 집” 기억하지? 영주, 영범, 아빠, 엄마가 한 여름의 햇볕이 쏟아지는

모래밭에서 만들던 두꺼비집- 너희들의 조그만 손을 모래 밑에 넣고, 그 위에 모래를 힘껏 덮으며 다둑거리며

“두껍아, 두껍아, 새집 줄께, 헌집다오!” 그때, 너희들이 만들었던 그 작은 두꺼비집들이 파도에 일순간에 쓸려갔을

때, 모래밭은 다시 평평한 모습으로 덮혀져 버리고 말았었지! 아빠도 이 땅에서의 꿈을 그토록 야무지게 알뜰하게,

철저하게 준비했었지만 ‘간암’이라는 파도에 모두 쓸려가 버린 것이었어. 내가 그토록 철저하게 의지하던

육신이라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구나! 하는 허무와 절망감에 후회를 했지만, 이미 나의 45년이라는 육신의 시간은

막을 내린 것이었단다.

영주, 영범아! 엄마와 너희들을 이 땅에 떼어놓고 이 아빠의 육신을 먼저 땅에 눞히기란 쉽지 않았단다. 그러나,

이 아빠는 너희들을 떠나오면서, 내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품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게

되었단다. 우리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 갈지라도 우리의 영혼은 영원한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은 천국에서의

기쁨의 재회를 하는 것이란다. 너희 엄마, 비록 땅에서 42년이라는 짧은 생애였으나 믿음으로 승리하여, 나는

지난 주간에 하나님의 품안에서 만남의 재회를 하였단다. 너희들은 기억하지? 아빠없는 너희들이 행여나

그늘질까봐, 너희들을 밤잠 설치며 돌보고 사랑하던 하던, 엄마의 고운 품성과 해맑은 미소, 교회에서

성가대원으로 그 고난 중에도 찬양을 쉬지 않고 남모르게 봉사하던 손길들을…

영주, 영범아! 너희들의 눈물과 아픈 가슴을 주님께 모두 내어 놓거라! 주님은 너희들의 아픔과 허무, 고통을 위해

십자가에서 그렇게 달리시고 부활하시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 28:20)”고

약속하셨단다. 그분은 육신의 부모가 감당 할 수 없는 것 까지도 감당하시길 원하며 돌보고 계신단다. 지금은

너희들이 감히 알수도 없고 이해 할 수 없어도, 어느날엔가 너희들 앞에 계획된 하나님의 설계에 감사 할 날이

있으리라. 이 말을 꼭 기억하거라. 사람은 육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영혼으로 살때, 고귀한 삶의 진실과 꿈은

결코 흩트러짐 없이 영원히 남게 될것임을!

천국에서,

[영주와 영범을 위한 기도]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 이사야 40장 1-3절 –

하나님!

바람이 불어옵니다. 영주와 영범이의 그 허물어진 담벽 샅샅이 살을 에이고 가슴을 찢기 우는 바람이! 사막과 같은 그 허허로운 들녁, 짐승의 울음마져 숨기워져 버린 그 어둔 적막속에 두 남매, 홀로이 남았습니다. 아버지의 꿈, 어머니의 꿈, 깨어진 조각되어 흙 바람 슬픈 노래되어, 꿈의 나라 뉴욕의 퀸즈, 우드사이드 골목길로 흔적없이 사라져 버리었습니다.

그토록 애절하게, 그토록 착하게, 그토록 충성되이 살고자 몸부림치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눈물로 기도하며 살던 당신 딸의 못다한 기도, 눈물되어 우리들의 가슴 언저리에 펑펑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 어둠에 덩그러히 놓여진 영주와 영범에게 우린 어떻게 새벽의 손길을 붙잡으라고 말해야 합니까? 우린 어떻게 “아이야 일어나거라!”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더이상 빼앗길 것이 없는 저 어린 것들을 향해 무엇을 되찾아 보라고 권고해야 합니까?

하나님!

비가 오면 우산 받쳐들고 좇아나와 그 찬비를 가려주던 어머니의 손길이 그리워 빗속을 헤매는 영주와 영범이, 눈이 오면 뜨거운 코코아와 쿠키를 구워놓고 해맑은 미소로 맞아주던 어머니의 향기가 그리워 속절없이 문을 여닫는 아이들의 창가에 겨울새 한마리 쓸쓸히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하시옵소서! 만나주시옵소서! 영주와 영범이의 동토의 시간에 오시옵소서. 당신의 향기로, 당신의 봄기운으로, 그 패여진 골짜기가 평지가 되리라는 당신의 언약으로 오시옵소서! 말씀에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하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눈길이 시든 꽃 위에 머물지 말고, 눈을 들어 수면을 운행하시는 당신의 손길을 보게 하소서.

하나님!

어느날엔가 어린 저들의 영혼에 등불이 환히 걸리는 그날까지, 우리의 기도가 영주, 영범의 어둔 밤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사랑과 관심 속에 새 힘을 얻어 일어설 수 있게하소서. 우리로 하여금 제 아이 남의 아이 가리지 않고, 함께 키워가는 지혜를 닮게하사, 우리 모두 저들의 부모가 되어 깨어진 조각들을 다시 주워들고 함께 쌓아가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이시간 바라옵나니 영주와 영범이의 잃어버린 사랑, 당신의 큰 사랑 안에서 되찾게 하시고, 슬픔과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소서. 치유의 임금, 평화의 임금, 기쁨의 왕, 만민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여 믿사오니, 우리 모두의 영혼 안에 듭시옵소서. 아멘

– 윤 완희 <1995년 12월 11일>

* 조영주(17세), 영범(15세)이는 4년 전에 아버지 조양현(당시 48세)씨를 간암으로 잃고, 어머니 조정임(42세)씨 마져 지난 12/5/95년 잃게 되어, 졸지에 천애고아가 되었다. 아버지 조양현씨는 이민초기에 석면제거일을 하다가 간암을 얻었으며, 어머니 조정임씨는 네일기술자로 일을하며 생계를 이어가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3주동안 의식불명 속에 지내다가 사망하였다. 이민초기의 평범한 가정에서 겪은 슬픈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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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ing

When the one who was here departs,
time hesitates,
then stands still.

The days proceed in their appointed order;
streets, rooms, familiar hours
continue without interruption,
yet each place is emptied
of what once gave it weight.

The one who went away returns—
not yet in flesh,
but in the turning of days.

Three days ago, all things were burdened,
the air dense with unsaid grief.
Two days ago, a quiet stirring,
a pulse beneath the stillness.

Is this longing—
this narrowing of distance,
this strange clarification?

What was far
is now seen plainly,
what was obscured
moves closer,
as if time itself
had learned to listen.

— Tae Hun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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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있던 이가 떠나면
시간은 머뭇거리다,
이내 멈춘다.

날들은 정해진 순서대로 흘러가고,
거리와 방들,
익숙한 시간들은
아무런 중단 없이 계속되지만,
모든 장소는 비워진다—
한때 그것들에게 무게를 주던 것이 사라진 채로.

떠났던 이는 돌아온다—
아직 육신으로가 아니라,
날들의 회전에 의해.

사흘 전에는 모든 것이 짐처럼 무거웠고,
말해지지 않은 슬픔으로
공기가 짙었다.
이틀 전에는 고요한 움직임,
정적 아래에서 뛰는 맥박 하나.

이것이 그리움인가—
거리의 수축,
이상하리만치 선명해지는 감각?

멀었던 것이
이제는 또렷이 보이고,
가려졌던 것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마치 시간 자체가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듯이.

– 윤 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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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st Fearsome Thing in the World”

A few years ago, when the Soviet communist system collapsed and the Berlin Wall fell, the world buzzed with hope that a springtime of peace was finally coming. Many believed that once ideology crumbled, humanity would enter an age more harmonious and joyful than ever before.

Yet as we witness the many terrors shaking the world today, we realize that the forces of Satan have drawn nearer than at any time in the past—only in new forms.

In Japan, even before the nightmare of the Kobe earthquake—which claimed more than 5,000 lives—had faded, the Tokyo subway sarin gas attack (3/20/95), carried out by the Aum Shinrikyo cult, plunged the nation into fear. Poison gas scares erupted in various places, deepening the panic.

In the United States, the 1993 bombing beneath the World Trade Center in Manhattan had barely been forgotten when the Oklahoma City Federal Building was struck by a massive truck bomb (4/19/95). Watching on television as innocent children—who had been playing in the daycare center inside the building—were carried out, their small bodies covered in blood, left my heart in anguish. No matter how many casualties would eventually be counted, the sight of a peaceful city turned into a war zone was beyond belief.

In the past, danger was clearly marked by military borders or ideological boundaries. But now, anyone driven by racial or religious hatred can turn any place in the world into a battlefield of indiscriminate terror. There is no longer any truly safe place on this planet.

Beyond wars and terrorism between nations and peoples, crimes committed through computers now steal or destroy corporate and government secrets, drain money from bank accounts, and lure young people with digital pornography. There is no corner of the world untouched by the reach of evil. Science, chemistry, and biology—meant to advance humanity—have become tools through which the deceiving spirit drives people into chaos, stirring conflict upon conflict, delighting in human fear and suffering.

When people encounter such shocking news, they fall into helplessness and despair. At times they even ask, “Why does God allow these things? Why does He leave humanity in such suffering?” But we must be alert: such complaints are themselves a trap of Satan, meant to make us stumble before God and destroy our love and trust in Him.

As we witness these events—wars, national suffering, and acts of terror—we must all the more fall to our knees, asking God for the strength and courage to entrust our generation and the next entirely into His hands. “Be self-controlled and alert. Your enemy the devil prowls around like a roaring lion looking for someone to devour. Resist him, standing firm in the faith.” (1 Peter 5:8)

No matter how violently Satan rages, there is one thing he fears more than anything else: people kneeling before God. No destructive power, no method of driving humanity into terror can stand against the strength of a single soul bowed before the Lord.

Though many predict that future terrorists will use even more extreme weapons—nuclear, biological, and chemical—we must stand firmly on God’s side and actively join the work entrusted to us. Even a moment away from God’s solid ground, even a step outside the shelter of His wings, leaves us vulnerable to Satan’s fiery arrows.

From the beginning of creation until now, the sins of those who turn away from God have made it seem as though evil rules the world. Yet its power has always failed, and history has always moved forward through God’s victory. Now is the time for each of us to kindle the flame in our hearts and willingly join the unfolding story of God’s triumph.

When our souls come before God—laying down our confusion, shock, and fear—the Lord, the Prince of Peace, will not ignore the innocent lives that perish without cause. Through the psalms of David, God comforts us:

“The Lord is my light and my salvation—whom shall I fear? The Lord is the stronghold of my life—of whom shall I be afraid? … I remain confident of this: I will see the goodness of the Lord in the land of the living. Wait for the Lord; be strong and take heart and wait for the Lord.” (Psalm 27)

– Yoon Wan-Hee (April 24,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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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수년전에 소련의 공산체제가 붕괴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곧 이 세계가 평화의 봄을 맞으리라는

기대로 술렁이었습니다. 이데올로기가 무너지면 온세상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고 조화된 미래가 열릴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갖가지 공포의 요인들을 보면서, 사단의 세력이 새로운

모습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가까이 우리에게 와있음을 실감케 합니다.

일본의 경우 5,000여명이 사망한 고베지진의 악몽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사교인 옴 진리교가 관여된 도쿄 지하철

테러사건(3/20/95)과 여기저기서 터지는 독가스 소동은 일본인들을 공포에 몰아 넣었습니다. 또한 미국은 뉴욕

만하탄에 자리잡고 있는 세계무역센타 빌딩의 지하폭파 사건이(2/26/93) 채 잊혀지기도 전에, 중심부의 한적한 도시인

오클라하마 연방정부 빌딩 차량폭탄 테러 사건(4/19/95)이 일어났습니다. 수십명의 사상자와 가운데, 정부청사 빌딩

안의 유아원에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던 어린생명들이, 피가 범벅이 된채 구조원들의 손에 의해 구해져 나오는

광경을 T.V를 통해 보면서 가슴이 메어졌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상자들이 나올지 몰라도, 평화로운 도시에서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참혹한 광경은 정녕 믿을 수 없었습니다.

과거엔 사상과 사상이 부딪치는 군사경계선이나, 이념이 다른 나라의 경계선을 긋고 위험한 장소를 뚜렷이

구분되었으나, 이제는 인종적이고 종교적인 증오심을 갖은 사람들이 마음 만 먹으면, 세계 어느 곳이나 테러범들의

무차별 전쟁마당이 될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구촌 어디서나 더이상 안전한 장소가 없음을 실감케 됩니다.

또한, 국가와 민족간의 전쟁과 테러는 물론이요, 컴퓨터를 이용한 온갖 범죄행위는, 기업과 정부의 기밀을 빼내거나,

파괴시키는 일을 자행하며, 남의 구좌를 통해 은행 돈을 빼내거나 컴퓨터 포로노까지 등장하여 젊은이들을 현혹시키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 어느 구석에도 악의 세력이 손을 뻗치지 않은 신성한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구축한 과학과 화학, 생물학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 공헌 한 것 같으나, 그것을 이용한 사단의 세력은(미혹의 영)

인간을 아비규환 속으로 몰아넣고 끝장나는 것을 보려하고, 분쟁과 분쟁을 일으키고, 사람들이 당황하여 아우성치며

공포 속에 고통하는 모습을 보며 손뼉을 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충격적인 뉴스를 대할 때마다 무력감과 좌절 속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하나님은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을 허락하시며, 우리 인간을 고통 가운데 내버려두십니까?”라는 원망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을 뜨고 경계해야 되고 주의해야 될 것은, 바로 이러한 원망들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넘어지게 하고,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사랑과 신뢰를 무너뜨리려는 또하나의 사단의 계략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과 민족과 민족의 고난과 전쟁, 테러를 보고 겪으며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세대와 다음 세대를

위하여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달라고 구하며, 무릎 꿇어야 될 것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 (베전 5:8절)

사단이 아무리 날 뛰어도 그가 이세상에서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는 일입니다. 그의 어떠한 파괴적인 힘이나, 공포 속으로 인간을 몰아 넣는 온갖 방법이 다 동원된다 하여도, 한

영혼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힘 앞에는 도저히 당해 낼 도리가 없습니다.

미래의 테러리스트들은 우리 앞에 더욱 심한 극한상황의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등의 대량살상무기를 사용 할 것이라는

예측이 무성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내가 담당해야 만 될 사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되겠습니다. 잠시라도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견고한 땅에서 벗어나거나, 그의 날개 아래서 떠나있을 때, 사단은 온갖

공격의 화살을 불같이 쏟아 부을 것입니다.

창세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죄악성은 마치도 이세상을 정복한 것 마냥 떠들고 있지만, 그

세력은 언제나 빗나갔고, 하나님의 승리로 역사는 진행이 되어왔습니다. 이젠 각자의 심령에 불을 밝히고, 하나님의

승리의 역사 속에 모두 자원하여 참여 할 때입니다.

먼저 내 영혼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당혹스러움과 놀람과 두려움을 솔직히 내어 놓고 아뢰일때,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님께서는 무고한 생명들이 이유도 없이 죽어가는 것을 결국 외면치 않을 것입니다. 시편 27편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여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다윗의 시편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1995년 4월 24일>

– 윤 완희 (尹 完 姬) <1995년 4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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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appy Tears

I hear the mother’s voice, the father’s voice—
bright notes lifting like morning birds,
joyful sounds, unashamed, unhidden.

Even when you take their sleep,
they give it freely,
for what is rest
compared to the wonder of you?

On the first day, or the third—
you open your eyes
to the mystery of dark and light.
You answer the universe
with the small drums of your ears.
Your face moves in gentle ripples,
as it once did
in the warm sea of your mother’s womb.

Hour after hour through the long night
you call them—
your soft cries
the bell that draws them near,
for a hundred days,
and a hundred more.

And still, with every moment,
their happiness rises,
step by step,
as if climbing a ladder toward heaven.

Then the tears come—
not tears of sorrow,
but bright, overflowing tears of joy:
tears that turn grief into gladness,
and gladness back into grief again,
the holy exchange of love
that never ends.

Even when their bodies fall silent,
their watching does not cease.
From above, from beyond,
they lean over the rail of eternity,
still keeping vigil,
still sending down
their happy tears.

– TaeHun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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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눈물

어머니의 목소리,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침 새들처럼 솟아오르는 밝은 음표들,
부끄러움도 숨김도 없는 기쁨의 소리.

네가 그들의 잠을 가져가도
그들은 기꺼이 내어준다.
쉼이란 무엇인가,
너라는 경이로움에 비하면.

첫째 날이든, 셋째 날이든—
너는 어둠과 빛의 세계로
눈을 연다.
너는 귀의 작은 북소리로
우주에 응답한다.
네 얼굴은 잔잔한 물결처럼 움직이고,
그것은 한때
어머니의 태 속 따뜻한 바다에서 그러했듯이.

긴 밤 동안, 시간마다
너는 그들을 부른다—
네 부드러운 울음은
그들을 곁으로 부르는 종소리,
백 일 동안,
그리고 또 백 일을 넘어.

그럼에도 매 순간,
그들의 행복은 자라난다,
한 계단씩,
마치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를 오르듯.

그리고 눈물이 흐른다—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밝고 넘쳐흐르는 기쁨의 눈물:
비탄을 기쁨으로 바꾸고,
기쁨을 다시 비탄으로 돌려놓는,
끝나지 않는 사랑의
거룩한 교환.

그들의 몸이 침묵에 잠들 때에도
그들의 지켜봄은 멈추지 않는다.
위에서, 저 너머에서,
그들은 영원의 난간에 기대어
여전히 망을 보고,
여전히 내려보낸다—
그들의 행복한 눈물을.

– 윤 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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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idden Weapon”

“Ring, ring…” Early in the morning, just as I was about to take the children to school, the phone rang urgently. As in any household, a call to the parsonage before eight o’clock could only mean something pressing. Slightly tense, I picked up the phone. The voice was familiar. But the moment she recognized my voice, she burst out in anger, as if a dam had broken: “How could you do this to me!”

Startled, I asked what had happened. It turned out she was furious because her name had not appeared where she had expected in the program for an upcoming event. Using that as a starting point, she began dragging out other grievances and pouring out criticism.

The children were tugging at me, saying they would be late for school, so I eventually had to end the call. But once I had hung up, the scolding replayed in my mind, and something inside me began to smolder—like a dry branch catching fire—before I even realized it.

When I returned home, it seemed she had called others as well, for advice began coming from all directions: “Samonim, you must handle this carefully. If not, things could go wrong before they even begin.” I couldn’t focus on anything. The clear spring of joy that had been bubbling up in my heart just moments earlier had suddenly turned muddy from that one phone call, and my spirit grew unsettled.

Then, unexpectedly, a memory from more than twenty years ago surfaced—my first ministry assignment in Busan, south Korea. An elderly grandmother had stroked my back and said, “tsk, tsk… Such a lovely young woman—what terrible sins you must have committed in your past life to become a pastor’s wife!” “…Sins? Me?” Wearing the mini-skirt that was fashionable at the time, meeting the congregation for the first time, I was too stunned to respond. She had spent her life in another religion, and to her eyes, the life of a pastor’s wife must have looked pitiful, even tragic—surely the repayment for sins from a previous life. Yet in a way, she wasn’t entirely wrong. Whatever sins my ancestors may have committed, I have come to recognize, again and again, how great a sinner I am. Even today, I can only confess that truth.

A pastor’s wife may not begin her journey with a vow to dedicate her entire life to God, as pastors do. But as the years pass, she inevitably becomes a fellow pilgrim, walking the same spiritual path. That path is, in a word, a wilderness. Yet God has hidden springs of joy and peace throughout that wilderness, and at the needed moment, He causes them to burst forth with surprise and delight. He even grants enough abundance to share with those wandering in thirst.

In the Lord who leads my life, the seeking and the answering have always filled me with a quiet happiness unknown to others. Truly, have I not been richly blessed—receiving jewels of love unique to a pastor’s wife, and the fragrance of affection sweeter than jasmine? The small criticisms that come from time to time have become salt to me, and I now know they are God’s gentle whip, urging me toward humility.

So when my heart darkens or discouragement creeps in, I turn to one hidden weapon: fasting prayer. Not for several days, but a day or two—quietly, without my family noticing. What amazes me is that every time I use this weapon, peace returns to my heart, along with God’s comfort and humility. And like a mirror, it reveals my own frail and unbecoming self.

One senior pastor’s wife once told me that whenever someone disturbs her heart or shares something painful over the phone, she immediately sets aside a week to pray earnestly for that person. And somehow, by the end of that week, the person treats her with an entirely different attitude. This was the weapon she discovered over nearly forty years of ministry. With it, she crossed rugged mountains again and again, and now carries the serene dignity of a seasoned elder.

In our lives, I want to believe that criticism is simply another expression of love. When we fail to meet the needs of those who long for our attention and affection, their criticism becomes a gesture saying, “I’m here—don’t forget me.” How painful and weary their hearts must be.

As this new year begins, I want these criticisms to become salt for my soul, helping me grow into a more mature believer. And so, I sharpen once again my hidden weapons.

— Yoon Wan-Hee, January 20,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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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둔 병기

“따르릉, 따르릉” 이른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막 데리고 나서려는데 전화 벨이 급하게 울렸다. 각 가정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침 8시가 되기도 전에 목사관에 전화 벨이 울리는 것은 긴급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약간은 긴장을 하면서 전화를 집어드니, 목소리가 귀에 익은 분의 전화였다. 그러나 상대방은 나의 음성을 확인하자마자 분에 찬 목소리로 봇물이 터진 듯이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호통을 치었다. 어떨 결에 “무엇 때문에 그러시냐?”고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모 행사에 자신의 이름이 기대했던 곳에 들어있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였다. 그 분은 그 일을 빌미로 다른 여러 가지의 일들을 끄집어내며 비난을 해대었다.

그만 아이들이 학교 갈 시간이 늦었다고 종종거리는 바람에 전화를 일단은 끊었으나, 갑자기 된 야단을 맞고 생각해 보니, 마음 한 쪽에서 마른나무가지가 타들어 가듯이, 나 자신도 모르게 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집에 돌아오니, 이곳 저곳에서 그 분의 전화를 받은 듯 많은 충고가 들어와 있었다. “사모님, 잘 하셔야됩니다. 잘못하면 시작 전에 일을 그르치십니다.” 도대체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마음속에 조금 전까지 만해도 솟아나던 해맑은 기쁨의 샘이 그 분의 전화 한통화로 흙탕물이 된 것처럼 영혼이 혼잡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문득 20여년 전, 부산의 첫 목회지에 갔을 때, 어느 연세 많이 드신 할머니께서 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하셨던 말씀이 불현듯 솟아났다. “쯧쯧쯧, 이렇게 고우신 분이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 사모님이 되셨오!” ‘…? 죄가 많다고요? 누가요?’ 당시 유행하던 미니 스커트를 입고, 교인들을 첫 대면하던 나는 기가 막혀서 샐쪽해 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오랜 세월을 타종교에서 살아오셨던 할머니가 사모들의 삶이, 보기에 처량해 보이고 때로는 가엾어 보였기 때문에 전생의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은 어느 정도 맞는 말씀이었다. 우리 조상들의 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그 후로 늘 자각하며, 오늘도 죄인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모란, 목사님들처럼 자신의 전 생애를 하나님께 헌신하겠노라고 시작부터 서원하고 가는 길은 아니어도, 세월이 흐르매 어느새 구도자의 길을 함께 걷는 동행자가 된 것만은 틀림없다. 그 길은 한마디로 거친 광야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 기쁨과 평화의 샘을 곳곳에 숨겨두셨다가, 필요할 때마다 놀라움과 기쁨으로 터트려 주셨고, 오히려 세상의 물이 없어 헤매 이는 이들에게 나눠주고자 하는 여유조차 주시었다. 또한 나의 삶을 이끌고 계시는 주님 안에서의 구함과 응답은, 남이 알지 못하는 행복과 즐거움으로 늘 채우셨다. 사실은, 사모이기에 남달리 받아온 그 동안의 사랑의 보석들과, 자스민의 향기에 비할 수 없는 사랑의 향취로 영혼은 늘 호사하지 않았던가! 때때로 다가오는 작은 비난들은 내게 소금이 되고, 하나님 안에서 오는 겸손하라는 채찍임을 이제 나는 알고 있다. 그러기에 마음이 어두워지고 좌절해지는 순간이 오면 나는 하나의 숨겨진 병기를 활용한다. 그것은 금식 기도이다. 며칠씩은 아니더라도 하루, 또는 이틀, 가족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놀라운 것은 이 병기를 사용하였을 때마다, 찾아오는 마음의 평정과 하나님의 위로와 겸손이며, 거울 속처럼 드려다 보이는 연약하고 추한 내 모습이다.

어느 선배 사모님은 누군가가 마음을 어지럽히거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화통에 전하면, 그 전화를 놓는 즉시 일주일간을 작정하고 그 분을 위해서 기도로 매달린단다. 그러면, 웬일인지 일주일 후에는 상대방이 전혀 다른 태도로 사모님을 대한다는 말씀이었다. 근 40여년을 목회현장에서 찾아낸 사모님의 병기였던 것이다. 그 병기로 선배 사모님은 험산준령을 넘고 넘어, 이제는 오히려 초연한 노장의 멋이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비난이란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고 자위해 보고싶다. 나의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미처 그 모든 필요를 채워주지 못했을 때 ‘내가 여기있어요!’라고 알리는 손짓과 같은 것- 비난하는 이들의 마음인들 오죽 아프고 힘이들까? 올한해도 이 비난들이 내 영혼에 소금이 되어 더욱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숨겨진 병기들을 다듬어 본다.

윤 완희, 1/20/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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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

To ask is to wound again.
So the question remains unasked,
settled somewhere between the tongue and the heart.

When did forgetting begin?
Was it thirty—
or only the illusion of forgetting,
the face receding, not erased
but waiting in another room of the mind?

I have walked new roads,
learned the discipline of looking away—
the inherited thorns,
the claims of blood.
Half a life has passed
without announcement.

I tell myself I am ready
to lay it down,
to rest.

Yet the soul refuses such economy.

For there is the mother
who buried her future
before the earth received her.
A child more costly than breath,
gone first.

Where does such grief go?
Not into memory,
not into time.

Where, then,
does spring arrive
for a soul held in frost?

If light comes,
it will not announce itself.
It will fall quietly,
from nowhere we can name.

— TaeHun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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