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변하고 있다

얼마 전에 신문기사에서 “한국 여성상이 변하고 있다” (6/16/98,한국일보 N.Y)라는 리포트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관심과 반가움을 불러일으키는 기사였기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면서, 여성들의 현주소를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그 기사에는, 한국의 전통 여성상이던 조용하고 순종이 미덕인 옛 틀을 벗어나 <여성도 할 수 있다>라는 적극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는 신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보고였습니다. 얼마 전 만해도 여성들이 감히 엿볼 수 도 없었던, 남성 고유영역인 각종 전문분야에 까지 여성들의 도전적인 몫이 되어가고 있다합니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여성총경, 해병대 장교, 파일럿, 국제 축구심판, 선장은 물론이요, 여성목사님들만 해도 1, 500여명을 넘어서고 있다는 보고였습니다.

그토록 남존여비의 사상으로 물들어 있다가, 어떻게 이토록 급속도로 여성의 사회참여가 가속화되어 가고 있는가를 3가지 이유로 보았는데, 첫째는 한국이 유엔 여성지위 향상협약에 가입한 이후부터라고 합니다. 여기에 남녀평등을 법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규약이 있다고 합니다. 둘째는 한국에서 여성학이 자리잡은 지 20년을 넘으면서 [여성 주체론] [여성의 남성 동반자론]이 사회각 계층에 새 인식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과거엔 여성이 남성의 어떤 삶의 성취를 위해 보조자로 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여성도 주체자가 되어야 된다는 의식변화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산아제한으로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것이 성공함으로 자녀를 가리지 않고 똑같이 귀하게 기르게 되니 남녀의 벽이 어렸을 때부터 없어지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또한 이런 파급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 된 이후로, [20세기는 여성의 세기이자 문화의 세기]라고 하면서, 여성고용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대통령의 의지 속에서 더욱 가속화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국회의원 수 299명중에 8명의 여성의원들이 진출해 있는 현실은, 어찌 보면 기적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이규택씨가 쓴 한국 여성의 의식구조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여자는 사고력이나 판단력이 있어도 안 되고 감성이나 지성이 있어서도 안되었다. 심지어 보고 듣고 숨쉬는 감각마저도 마비된 여자를 훌륭한 여자로 알기까지 하였다. 옛날 시집갈 때 신부들은 눈에 꿀을 발랐다. 눈까풀이 맞붙어 앞을 볼 수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목화 솜으로 귀를 틀어막고 입에는 대추씨 한 알을 넣어 어금니로 물게 하였다. 듣지도 말고 말하거나 웃지도 말라는 무생물화의 습속인 것이다. 고려초기 때만해도 여자는 생구라는 말로 불리었는데, 생구라는 말은 중국에서 소, 말, 양같이 사람에게 유용한 동물을 통틀어 쓰던 말이었다. 여자도 그 유용한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인 것이었다‘

제가 특별한 여성파워를 주장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과거의 생구로 취급받던 시대에 태어나지 않고, 지금과 같이 남녀평등의 시대에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도 위로 딸 둘을 낳고보니 셋째만은 아들을 낳아야겠다라는 강박관념 속에 있었던 것을 고백합니다. 지금도 가끔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있는데, 제 속에 남아있는 여성차별입니다. 저희 집 딸애가 남자들이 주로 하는 운동이나 일을 하게되면, 자연스럽게 “여자애가 왜 그런 일을 하니?”라는 말을 썼었습니다. 집앞의 잔디나 나무깍는 일들은 주로 막내아들을 시키고, 여자 애들은 집안 청소를 시키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의 무의식세계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와 가정, 교회 등에서 자연스럽게 세뇌된 차별의식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올해로 미국에서도 여성지위향상운동이 시작된지 1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848년도에 뉴욕의 Senaca Falls에서 있었던 여성들의 지위향상 이슈를 보면, 여성의 투표권 권리, 여성들의 평등한 교육기회, 결혼한 여성들의 상속 및 재산보유 가능, 가정폭력으로부터 보호, 강간당한 책임을 여성들에게만 잘못을 전하는 것, 교회나 정부기관에 여성들의 진출을 열어줄 것…둥이 있었습니다. 당시 여성들은 “여성의 공약” (Declaration of Sentiments and Resolution)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창조물로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만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68년 후인 1920년에 이르러서야 여성들도 투표 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 것으로 보아 미국에서도, 남녀평등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각 사회전반에 있어서 많은 갈등과 결단 등을 통해 오늘에 이른 것 같습니다.

현재에도 미국내 여성들과 남성들의 임금차이를 보면, 남성들이 일불 받는 동안, 여성들은 74센츠를 받고있습니다. 또한 남성들의 은퇴연금의 반정도 만이 여성들이 은퇴연금을 받고 있으며, 승진의 기회도 남성들에 비해 훨씬 불리한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과거의 여성들이 여성평등 및 지위향상을 위해 참으로 많은 수고를 했지만, 요근래는 그런 운동이 오히려 별로 관심의 대가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현대의 여성 중 35세 미만의 여성들은, 여성평등이니 여성 지위향상이니 등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자신의 몸매와 개인의 아늑한 삶에만 관심이 있다고 하는, 불평등도 듣게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성들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시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신 일들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믿음의 어머니 사라,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 전에 보내었던 정탐꾼을 살려준 기생 라합,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친 한나, 민족의 위기를 구해 낸 에스더, 예수 님의 어머니 마리아, 예수 님이 고쳐준 혈루병든 여인, 우물가의 여인,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등… 하나님께서는 여성들을 이 땅에 창조하신 후, 그들을 통해 참으로 많은 축복을 하셨습니다. 현재의 교회 안에서도 많은 여선교회 원들의 수고와 기도, 봉사, 눈물로 교회가 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한국여성들이 개화기 이전에 암흑과 같은 삶을 살아 갈 때, 하나님은 서구여성들을 부르시어 한국에 선교사를 보내게 하였습니다. 서구여성들은 뜨개질을 하고 파이를 구워 팔기도 하고, 교회 내에서 중고품 장사도 하면서, 은둔의 나라에 어둠 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던 하나님의 형상들을 흔들어 깨워 오늘의 한국여성들로 자라나게 하였습니다.

지금한창 여성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한국의 남녀동등권이나 여성 지위향상의 중심은 바로 일찍 깨어있던 여성들의 기도 속에 이루어졌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여성금지구역 안에 들어가 여성들이 남성들만의 일을 함께 할 수 있고 나눌 수 있다는 일은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서 여성의 지위향상에 만족한다면, 왠지 서글픈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향하신 뜻인, 고난당하고 있는 세계의 많은 여성들을 위해 선교의 눈을 더욱 크게 떠야 할 것입니다.

유엔에서 발표한 세계환경개발 프로그램의 보고서엔, 16조 달라 에 달하는 자원봉사에 11조 달라 에 해당되는 일을 여성들이 감당했다고 합니다. 또한 세계의 가장 열악한 환경 속에 살고 있는 1.3억만의 인구 중 70%가 여성이며, 129백만의 국민학교 교육도 받지 못하는 인구 중의 3/2에 해당되는 83백만이 여자아이들입니다. 또한 세계 공업국가의 여성임금차이는 남성의 3/2정도에 해당되며, 약 100만 명의 아시아의 소녀들이 창녀로 팔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100 million 아프리카의 소녀들의 할례로 인한 고통은 우리로서는 전혀 상상키 어려운 육체의 아픔을 겪고있다고 합니다. 또한 서 아시아 여성의 임산부중 80%가 극성 빈혈로 어려움을 갖고 아기를 출산합니다.

우리 주변은 어떻습니까? 술과 마약을 하는 남편으로부터, 또는 말의 폭력과 손찌검으로 고통 당하고 있는 우리의 가까운 자매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도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직분 자들의 가정도 있습니다.

이사야의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이사야 40: 4) 라는 말씀은, 아직도 가정과 사회, 국가와 전쟁마당에서 시달리고 있는 여성들에게 큰 용기를 주는 말씀일 뿐 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사명을 주는 말씀입니다.

한국 여성상이 변하고 있다는 기사는 그동안 소극적이던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좋은 뉴스입니다. 이제는 한국 뿐 만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여성들이 “여성도 할 수 있다”라는 믿음과 의지 속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받은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갈 날을 기도합니다. 여성들이 하나님 안에서 일어 날 때, 우리는 가정과 사회,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각 나라마다의 여성상이 변하고, 전보다 좋은 경제적, 사회적 환경이 온다하여도 잊지 말아야 될 것은 가정의 화목과 모성애 만은 변하지 말아야겠다고 확신합니다.

— 윤 완희, 7/8/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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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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