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에 매달린 아침이슬 방울들을 발끝으로 헤치며 먼동을 맞으러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산 안개 뽀얗게 아침호흡을 뱉어 놓으면, 어느새 잠이 깬 산새들이 첫 날갯짓을 ‘푸드득’거리며 높은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여름 산의 에너지는 곳곳의 폭포수를 통해 넘쳐흐른다. 수백 년을 비바람에 시달린 거대한 고목과 이제 돋아난 풀잎 속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벌레들 속에도, 나 뒹구는 돌멩이 하나에도 그 생명의 약동은 어제나 오늘이나 찬연하다.
어릴 적,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 인적이 없는 서울의 장춘공원 숲을 무던히도 헤매었다. 겁이 많고 남 앞에서 늘 수줍어 할 줄만 알았던 10세의 소녀가 여름 숲에서 발견한 것은 넉넉한 가슴이었다. 그리고 그 가슴 안에는 생명의 안위 감과 자유, 신비가 가득찬 아름다움이었다. 제멋대로 자라난 풀들과 우거진 향기 섞인 꽃들과 나뭇잎, 괴괴한 낙엽 썩는 냄새, 바람결에 쩌렁쩌렁하게 들려오는 새들의 휘파람 소리는 어린 영혼을 언제나 용납하고 환희로 맞이해 주었다.
좁은 숲길을 숨이 차도록 오르내리다가 피곤해져서 연약한 다리를 쉬면서, 어느 높은 바위 위에 앉아 숲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미래에 무엇이 될 것인가 하며 막연한 꿈을 꾸어보기도 했다. ‘소나무가 되어볼까? 잣나무가 되어 볼까? 아니면 새는? …여기 우뚝 서있는 바위는? 정처 없이 이산 저 산을 휘젓고 다니는 바람은 어떨까? 아니야, 계곡을 가르고 시원하게 달리는 시냇물이 될 거야!… 아니야! 난 이대로가 좋아!’ 하는 생각에 미치면 행여나 산이 나를 붙잡아 둘까 보아, 한 마리의 다람쥐처럼 정신없이 달음질쳐 내려오곤 하였다. 내려오는 길에 수목이 빽빽이 들어선 계곡을 만나게 되면 잠시 시리도록 차가운 물에 발과 손, 얼굴을 씻은 후에 아카시아 이파리와, 도토리 이파리를 물에 띄워 흘려 보내곤 하였다.
동네에 들어서면 온 몸에 뭍혀온 숲의 향기와, 손에는 보랏빛 달맞이꽃과 개아제비를 꺾어 들고 있어 산을 안고 온 기분이었다. 세상에 큰 나무도 많고 아름다운 꽃들도 많이 있어도, 숲속의 가장 낮은 틈바구니에서 가녀린 얼굴을 내밀고 피고지는 이름 모를 풀꽃들과의 사랑맺음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지금도 여전히 여름 숲속은 내 영혼에 동무가 되어준다. 숲과 내가 마주 설 땐, 난 언제나 감동으로 울고 만 싶어진다. 길을 잃어버렸던 아이가 어느 길모퉁이에서 팔을 벌리고 선 어머니의 품속에 뛰어 안기듯이!
얼마나 많은 날들을 인생의 가지 못할 숲에서 나는 방황하였는가? 얻지도 말고 소유해서도 안될 것들을 위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내 진정한 삶의 자리를 회피하였던가? 어느새 50여년을 바라보는 나이테를 안고 휘여지고 굽어진 내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내가 서있는 이 땅! 아직도 꿈의 나라라 불리는 거대한 아메리카대륙의 숲속에 나는 이렇듯 다시 서서 가슴 설레인다. 그러나 이제 신께드리는 산만한 기도를 정리해야 만 될 때가 왔음을 여름 숲은 말하고 있다. 내 영혼은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오! 나의 소원을 아뢰옵나니, 이 땅에 한 모금의 샘물 되게 하소서. 깊고 깊은 계곡에 인적이 오가지 않는 곳일지라도 내 영혼 작은 옹달샘 되어 산맥을 적시고 목마른 산 짐승들의 안식처가 되게 하옵소서.’
여름 숲은 하나님의 가슴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산실이다. 그곳엔 태초의 숨결이 때묻지 않은 채, 폐허된 가슴을 용납하고 궁핍한 영혼을 배부르게 하는 신비가 있다. 상처가 있을 때에는 성스러운 치유로, 기쁠 때에는 풀꽃의 향취로, 낮은 곳에도 높은 곳에도 생명의 교향곡이 넘쳐 흐르는 곳, 여름 숲은 언젠가 찾아가야 할 우리 모두의 성소이다.
— 윤 완희, 7/9/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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