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헌(UMC 원로목사. 서울 방문 중에)
노종해 목사 역 (https://m.blog.naver.com/rochai/224309066090)
내 아내는 내 삶의 신실한 증인이 되어 주었다.
그녀가 내 곁에서 모든 길을 함께 걸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수십 년 동안 모여 앉았던
식탁의 저편 끝에서 늘 귀를 기울여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십 대에는, 정의가 식탁 위에 앉아 있었다.
싸구려 맥주와 불안한 밤들 사이에서.
우리는 행복이 아닌 대의(大義)를 말했고,
어둠 속에서 지켜보던 문들에 대해,
속삭이던 이름들에 대해,
그리고 노크 소리가 들리기 전
어떻게 사라질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의 삼십 대와 사십 대에는,
세상이 조여오는 조류처럼
우리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지어야 할 집들.
키워야 할 아이들.
서명해야 할 서류들.
매달 내야 하는 할부금과
현실적인 기도문으로
번역되어 버린 꿈들.
우리의 오십 대에는,
리더십이 조용히 들어와
우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야망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흉터로서.
권력으로서가 아니라,
감금의 독방과
긴 기다림의 복도에서 길어 올린
기억으로서.
우리의 육십 대에는,
식탁이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들로 더 시끌벅적해졌다—
가로지른 대륙들,
잃어버린 언어들,
그리움의 가방 속에
담아 온 고향의 이야기들로.
우리는 더 오래 웃었고,
식사가 끝난 뒤에도 더 오래 머물렀다.
저녁 빛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다 칠십 대가 찾아왔고,
손주들이
예상치 못한 봄비처럼 당도했다.
작은 손들이, 우리가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수십 년을 바쳐온
바로 그 이야기들을 향해 뻗어왔다.
그리고 칠십이라는 언덕을 넘어섰을 때,
우리는 확신하는 것은 줄어들었지만
더 지혜로워졌다.
내가 걸어온 길 외에
다른 이들의 길에도
기꺼이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모든 돌아옴을
일종의 귀향이라
기꺼이 부르게 되었다.
어쩌면 언제나 그래왔는지도 모른다.
각기 다른 별빛 아래에서
돌고 도는 똑같은 인간의 원(圓).

한 세대가 말하면,
다른 세대가 귀를 기울이고,
우리 모두가 끝내지 못한 이야기를
식탁 너머로 건네는 것.
그리고 가끔은—
기억과 침묵 사이에서,
웃음과 작별 사이에서—
존재가 그 자체보다 더 위대한 무언가로 열린다,
시간을 초월한 어떤 순간으로.
우정이 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고,
사랑이 역사를 이겨내는 곳으로.
그곳에서,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곳에서, 식탁은 여전히 차려져 있다.
여전히 귀를 기울인다.
때로는 인내심을 가지고.
때로는 한숨을 쉬며.
때로는 그녀가 정당하게 얻어낸
불평을 털어놓으며.
하지만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때면,
그녀는 식탁에 그대로 남아,
우리 기억의 수호자가 되어,
그 오랜 우정의 노래를
다시 한번 들어준다.

그리고 가끔은—
기억과 침묵 사이에서,
웃음과 작별 사이에서—
존재가 그 자체보다 더 위대한 무언가로 열린다,
시간을 초월한 어떤 순간으로.
우정은 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고,
사랑은 역사를 이겨내는 곳으로.
그리하여 수많은 계절을 건너온
친구들과의 삶은,
끝난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내 아내는—
이 이야기들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들었으면서.
*윤태헌, 2026년 6월 7일.(한국 방문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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