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풍랑이 올 때

인생을 살아가는 여정을 항해한다라는 말을 합니다. 고요한 바다 위를 유유히 떠가는 한 척의 배를 상상할 때, 참으로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정경을 그릴 수 있습니다. 특히 바다를 연안으로 하고 있는 뉴욕, 뉴져지 주 근방에선 늘 아름다운 정경을 볼 수 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항해 도중에 어두운 밤 가운데 폭풍우가 몰아친다거나, 바다 아랫숨겨져있던 바위나 얼음 산에 일순간에 부딪쳤다고 했을 때, 그 광경은 참으로 처참할 것입니다. 올해, 가장 힛트했던 영화 중에 타이타닉(Titanic)이라는 영화를 많은 분들이 보셨을 것입니다. 저도 관람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영화를 보면서 많은 감동과 함께, 인간에겐 분명한 한계가 있다 라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 타이타닉호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들의 인생여정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타이타닉이라는 최초의 거대한 호화유람선이 2,227여명을 태운채 대서양에 떠오를 때, 아무도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항해일 것이라고 생각치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1912년 4월 14일, 북 대서양의 그 망망대해에서 빙산에 부딪치는 순간, 그곳에 탑승했던 승객 중 1,500여명이 수장을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타이타닉이라는 배가 지어지게 된 동기는 1898도에 미국의 작가인 Morgan Robertson이 쓴 “타이탄호의 난파”(The Wreck of the Titan)라는 소설을 흉내내어 지었다고 합니다. 그 소설의 내용은 영국의 유명하고 굉장한 부자들이, 물에 절대 갈아앉지 않는 초 호화판의 세계최고의 큰 배를 타고 뉴욕으로 오는 과정 중에 북 대서양 부근에서 빙산에 부딪쳐 난파됩니다. 그런데 그 호화로운 배에는 결국 충분한 구명구조가 준비되지 않아서 거의 모든 승객들이 수장당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소설이 힌트한 후, 10년 후에 영국의 호화여객선 사장인 J. Bruce Ismay라는 사람과, 선박건축회사 사장인 Pirrie경이 합작하여, Thomas Edward라는 분에게 타이탄을 모델로 한 세계최고의 고급호화 여객선 “타이타닉”을 4년에 걸쳐 만들게 됩니다. 그 크기는 여러분들도 영화를 통해 아시겠지만, 그 길이는 882 Feet 길이로 4개 도시의 블록을 합친 것과 같은 길이라고 합니다. 높이는 11층 건물의 높이와 닻만 하여도 20대의 차를 합한 31톤이라는 엄청난 무게였다고 하지요. 이 배가 다지어져 사람들에게 선을 보일 때, 100,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와 인간의 위대성을 찬양하고, 그 호화로움에 탄복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신문지상에서는 이 배를 대서특필하면서 “백만장자의 특별선” “절대 갈아앉지 않는 영구한 배” “세계최고의 호화선”등으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배를 항해할 선장은 당시 최고의 경력과 인기, 안전항해의 경력이 화려한 Edward J. Smith이였습니다. 그는 59세의 나이로 이 배를 마지막 항해함으로서 선장으로서의 화려한 은퇴를 대비했던 분이였습니다.

1912년 4월 10일, 타이타닉은 뉴욕을 향해 그 거대한 항해의 기선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승객들 가운데는 인디아에서 선교사로 오랜동안 일했던 선교사의 아내가, 아들의 풍토병을 고치러 뉴욕으로 의사를 만나러 가는 분도 있었고, 신천지의 황금을 캐로 나선 가난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화유람선 안에서의 유흥과 여가를 선용하기 위해 탑승한 승객들과, 이들을 돌볼 승무원들이였습니다. 승객들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들이나 모두 만족했습니다. 모든 선박안의 기물들이 최고품의 장식과 번쩍이는 새것들, 넓은 공간 안의 수영장, 테니스장, 운동장, 자전거 타기, 전자 낙타타기 놀이등, 호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의 편안함과 사치스러움… 친절한 승무원들.

이 배의 주인인 J. Bruce Ismay씨는 자랑스러운 성주마냥, 백만장자인 승객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그들이 행여나 불편함이 없는지 공손하고 자상한 태도로 묻고 다녔습니다. 승객들의 배에 대한 찬사와 놀라움에 그는 만족하였습니다.

그런데 타이타닉이 항해한지 사흘 후, 미국을 400마일 남겨두고 빙산에 부딪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그 배에는, “타이탄호의 난파” 소설에 나오는 것과 같이 구명선과 구명조끼가 형편없이 부족한 상태로 많은 사람들이 죽게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소설을 따서 초호화판의 배는 지었지만, 소설과 같이 그 배가 난파하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나 똑같은 변을 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떠십니까? 우리의 인생항로는! 우리의 항로는 지금 너무나 순탄하고 바람 한점 없는 유리바다와 같이 맑을지 모릅니다. 우리의 미래 앞에 그 푸른 망망대해가 펼쳐져있고, 우리의 배 안에는 수십년을 먹을 만한 음식이 저장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이상 중에 그리는 그 꿈의 섬에 도착할 날도 얼마남지 않은, 아주 평온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배들로부터 빙산이 앞에 닥칠 것이니 조심하라는 경고싸인이 날아들어옵니다. 마치도 타이타닉 호가 빙산에 부딪쳐 난파되기 전까지 일곱 번의 경고가 라디오실에 조타되었던 것 처럼… 죽음이 앞으로 올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실지로 빙산에 부딪치는 순간까지도 믿지를 않았던 타이티닉호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게 됩니다.

우리는 각자의 배를 타고 항해를 합니다. 타이티닉호와 같이 그런 극적인 장면은 우리 안에 연출되지는 않았어도, 태풍과 위험은 언제 어느 때 불어닥칠지 알지 못합니다. 성경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타고 계셨던 배 안에도 이 광풍이 불어닥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이 함께 갈릴리를 건너고 있던 중, 배의 고물에서 예수님은 베개를 베시고 곤히 잠들어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육신이 피곤하셨던지, 물결이 부딪쳐 배에 가득하게 되어 허둥대는 제자들의 고함소리에도 모른체, 깨어나질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아마도 사력을 다해서 배를 저으며, 광풍소리에 예수님이 일어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배가 까딱하면 물에 잠겨버릴 상태임에도 기척이 없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아마도 섭섭함과 마지막 위기속에서 예수님을 향해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하고 외쳐대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깨어 바람을 꾸짖어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명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였다고, 마가복음 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타셨던 배 안에도 광풍은 몰아치고 삶의 위험은 늘 있었습니다. 하물며, 우리들의 삶이란 늘 풍랑가운데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네가 하나님 잘 믿으니, 너만은 이 풍랑 속에서 살짝 건져주겠다든가, 이 풍랑은 절대 네 곁에 오지 않토록 내가 보장하마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고요히 네 곁에 있음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분은 역사의 풍랑 뿐 만이 아니라, 저의 삶과 여러분들의 삶의 광풍을 언제나 잠재우신 분이시지요.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미래의 광풍까지도 “잠잠케 하고 고요하라”고 명하시는 전능자이시지요.

존 웨슬리 목사님은 감리교 창시자로서, 영국사회와 세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신 분 중에 한분이십니다. 그러나 그 분의 사역초기엔 실패와 좌절 뿐이었습니다. 영국의 최고의 학문의 전당이라는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새로운 식민지인 미국 땅에 와서 선교사로서 일을 하였지만 아무런 효과를 이룰 수 없었습니다. 또한 개체교회에서 사랑하던 여인이 다른 남자에게 결혼해 버리자, 약속을 어긴 이 여인에게 성만찬을 베풀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남편으로 부터 기소가 되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마침내 도망하다싶이 영국으로 돌아가다가, 배 안에서 풍랑을 만납니다. 그는 배 밑에 들어가 떨면서 죽을시간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지 귀에 익은 찬송가(503장)가 들려왔습니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향할 때 주 내게 순풍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죽을 시간이 되니 천사가 데리러 왔나보다 하는 환상 속에 그 소리나는 쪽으로 발을 옮기며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광풍이 불어치는 속에 독일계 모라비언들이 뱃머리에 모여앉아,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하고있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놀라서 “아니, 여러분들은 이 풍랑이 두렵지 않습니까?”하고 말하였습니다.

모라비안 교인들은 “아뇨? 주님이 우릴필요로 하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천국에 갈 것이고, 그렇치 않으시다면, 이광풍 속에서도 살아남게 하시지요!”라며 너무나 평안한 표정으로 말하였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후에 그의 일기 속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그날, 풍랑보다도 저들의 고백이 더 큰 충격을 주었다. 폭풍우 속에서 모라비안 교도들이 참새처럼 찬송을 부르던 모습은 나의 영혼에 새로운 믿음의 세계를 보게하였다’

사랑하는 청취자 여러분! 행여나 지금 풍랑 중에 나 혼자라고 생각하진 않으십니까? 아무도 나의 고통을 모를 것이라고 슬피 외로워 하고 있진 않으세요? 지진이 나거나 빌딩이 무너져 사람이 땅에 묻히게 되면, 911의 긴급구조대가 급파되지 않습니까? 그 분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지하에 어딘가에 감금되어있는 사람에게 “우리가 여기 있으니 안심하라! 당신을 위해 일을하고 있다”라고 알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지하에 묻힌 사람은 비록 구조대가 수일이 지난 다음에야 손이 닿을지라도 결국 죽지않고 살아 남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날에 구조가 될지라도, 외부와의 단절이 끊어졌다고 생각 한 사람은, 그 잠시의 공백상태의 공포 속에서 금방 죽는다고 합니다. 바로 그것이 사람이지요. 우리는 늘 외부와 연결되어야 만이 살 수 있듯이, 하물며 하나님과의 단절 상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타니탄호의 난파”라는 소설을 모델로 했던 타이타닉호는 그 소설과 같이 그렇게 수장되고 말았던 역사의 기록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을 주관하신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역사의 풍랑을 잠잠케 하신 분을 믿기만 하라”고 명하십니다. 거기엔 영생의 길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번 주간에도 삶의 풍랑가운데 함께계신 예수님을 발견하는 한주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윤 완희, 10/7/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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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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